특별한 시선

- 조승리의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고

by philosophers needlework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열다섯 살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하여 지금은 완전한 어둠에 갇힌 조승리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쓴 글을 읽고 눈물을 쏟던 어떤 한 사람을 위해서였지만 쓰다 보니 결국은 자신을 위해 쓴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에세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시간의 점들을 모아 쓴 과거와 현재의 기록이라고 작가 소개에 밝혔다.

그녀는 어린 시절 수술비를 감당키가 어려웠던 엄마가 차라리 죽어 버리기를 바랐던 딸이었다. 열두 살의 아이는 얼른 커서 돈을 벌어 자기 때문에 팔려 나간 암소 두 마리를 되찾고 소작 부치던 땅을 엄마에게 사 주고 싶어 경리가 되기를 소원하였다. 언제든 돌아오라는 외조부의 말을 뒤로하고 도시의 장애인 학교에 다녔다. 직업교육을 마치고 선택의 여지없이 마사지사가 되었다.

멸시와 조롱을 견디고 대만을 여행했으며 다음을 준비한다. 친구의 아이를 품에 안으며 부모의 자리를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을 가혹하리만치 냉정하게 돌아본다. 활동지원사 수미 씨와 악의 없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유지한다. 나이를 먹으며 시력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연인도 가족도 잃으며 감정마저 잃어버린 시간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게 흘러가던 어느 날 탱고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 탱고 배우기를 주저하던 노신사에게 용기를 준다.

샘터 공모전에 입상해 시상식이 열리던 날 고등학교 졸업식을 떠올린다. 그때는 상을 많이 받아 연단에 여러 차례 올라갔지만 축하해 줄 가족이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상식 날은 향이 좋은 아주 커다란 꽃다발을 받았다. 아침부터 향기 있는 꽃을 찾아다니고 서프라이즈 하려고 했고 휴가를 내고 축하해 주러 오려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꽃향기에 묻어났다. 그녀는 비극을 양분 삼아 튼튼한 뿌리를 내려 비바람에도 휘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하늘로 향해 뻗고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되고자 하는 꿈을 품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특별한 기대를 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시각 장애인의 에세이라는 점에 일종의 '마이너 프리미엄'을 주고 있었다. 특별한 상황에서 쓰인 글이니 더 의미 있게 읽어야 한다는 무의식적 압박감마저 있었다. 하지만 글을 읽어가면서 내가 얼마나 오만했던가 반성하게 되었다. 조승리의 글은 한 인간이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특별한 시선이었다.

가난했고, 무시당했고, 장애를 가졌음에 겪어야 했던 그런 경험들이 그녀의 글에 깊이를 더했다. 어린 시절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했던 엄마가 차라리 자신이 죽기를 바랐다는 고백, 팔려나간 암소를 되찾겠다는 어린 소녀의 결심, 도시의 장애인 학교에서 겪은 일들. 그 모든 순간들이 단순한 불행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자양분으로 변한다. 작가는 마사지사로 일하며 겪은 어려움도, 활동지원사와의 미묘한 관계도, 탱고를 배우며 발견한 기쁨도 똑같은 진실함으로 담아낸다.

그녀의 글쓰기 능력은 단순히 좋은 문장을 구사하는 기술을 넘어선다. 조승리는 마음으로 본다. 세상의 소리와 냄새, 감촉, 그리고 인간관계의 미묘한 긴장과 따스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것을 정직하게 기록한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깊이 세상을 관찰하는 능력, 그리고 그 관찰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힘. 이것이야말로 글쓰기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조승리처럼 쓰고 싶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자극적인 표현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글. 나의 상처와 기쁨을 부끄럼 없이 나누되, 그것이 단순한 자기 연민이나 자랑이 아닌 누군가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는 글.

비바람에 휘지 않는 단단한 줄기를 갖되, 그 끝에는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꽃송이"가 피어나야 한다는 작가의 바람에서 그녀가 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작가는 성장이란 더 날카롭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해지고 부드러워지는 것임을 알고 있어서 삶의 지랄 맞음들이 쌓여 축제가 된다는 역설 또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사나흘 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노인의 집으로 향했다. 목적이 있는 방문은 아니었다. 그냥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할머니의 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공터가 돼버린 황량한 공간 앞에서 나는 노인이 정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한참을 공터 앞에 서 있다 돌아왔다. 나는 한동안 그때의 감정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정체를 깨달았다. 시력을 잃고, 엄마를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고향을 잃고서야 알았다. 그건 죽은 자를 위한 연민이었고, 산 자가 짊어지고 갈 공허함이었다.

131쪽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조승리 글, 달 펴냄, 2024



매거진의 이전글연약지반 보강공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