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초대에 응할 준비가 되다

- 슈테판 셰퍼의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을 읽고

by philosophers needlework

슈테판 세퍼의 소설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은 한 남자가 혼자 시골 별장에 내려갔다가 농부 카를을 만나면서 경험한 아주 특별한 이틀을 담았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다. 바쁘게 살고는 있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목표를 향해 달려왔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은 너무나 무겁게 다가온다.

평범한 비즈니스맨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주인공 ‘나’는 주말을 맞아 혼자 시골 별장으로 떠난다. 새벽 5시 12분, 평소처럼 눈을 뜬 그는 정처 없이 숲 속을 걷다가 호숫가에서 카를을 만나게 된다. 카를이 건넨 “당신도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나요?”라는 질문에 주인공은 “아니요, 인생에서 굴러떨어졌답니다”라고 대답한다. 도대체 이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이 소설을 읽으며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는 일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사람이나 일 대신 돈을 벌기 위한 일로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던가?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 왜 스스로에게 더 자주 허락하지 않았을까? 왜 살면서 더 이상 모험을 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고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났으랴?

주인공이 처음 만난 낯선 남자의 권유를 받아들여 옷을 벗고 호수에 몸을 담그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어떤 남자가 당연한 듯 한 번도 몸을 담그지 않던 호수에 들어가고 커피를 마시러 오라는 계획에 없던 초대를 받아들인다. 주인공은 낯선 초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이전에 그런 일들을 제안받았다면 다음에 이어질 언제나 뭔가 해야 할 여러 일들 - 다음 주 화요일에 열릴 회의와 누구에게 이메일을 써야 하는지, 그런 다음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지 등 -때문에 '다음에'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스물다섯 번의 계절’이라는 제목은 카를에게 남은 시간을 뜻하지만 주인공에게도 해당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의 유한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모를 수도 있고 있다 하더라도 가변적이며 각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그 질문을 던질 수는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변화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된다.


우리 가족은 도시와 시골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활기와 정적이 교대로 넘나드는 그곳을 사랑했다. 우리 넷은 이곳이 우리 삶의 리듬이자 우리 가족의 토대, 피난처이자 우리가 빌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럼에도 그때 내 균형은 어딘지 모르게 흐트러져 있었다. 주말이면 자연으로 도망칠 수 있다는 건 특권이었지만, 오늘처럼 이곳에서조차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나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일이 드물었고 그조차 대개 몇 분 가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언제나 일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어서 마음이 고요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행복하게 여겼는데, 경력이 쌓이고 휴대폰을 신형으로 바꿀 때마다 나는 점점 더 어디서나 연락이 닿고 매사에 이용 가능한 사람으로 변해 갔다. 8, 9쪽


나는 이 시골집에 앉아서 감자를 골라 담고 있다. 카를이 호숫가에서 아주 생생하게 알려준 것처럼 나에게는 스물다섯 번의 여름이 남아 있다. 가장 중요한 그 언젠가는 언제나 지금이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지난 이틀은 나에게 그런 확신을 주었다. 용기는 언제나 도움이 되지만 불안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를이 그 사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카를이 휘파람을 불면서 집에서 나왔다. 그런 속담이 있다. 학생이 배울 준비가 되면 비로소 선생이 나타난다. 163, 164쪽

《내게 남은 스물다섯 번의 계절》 슈테판 셰퍼 글, 전은경 옮김, 서삼독 펴냄,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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