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도서관에서《프랑켄슈타인》을 찾다가 여러 출판사에서 이 책을 펴낸 것을 알고 놀랐다. 단행본 154권, 전자책 49권이나 되었고 출판사도 35군데나 되었다. 성인과 유아동을 위한 책, 큰글자책, 프랑켄슈타인과 과학·생명공학·건강과 의료를 연결한 것, 과학에세이,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것 등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다. 도서관에 이렇게 많이 비치될 만큼 이 책이 인기가 높다는 반증 같다. 너무나 유명하여 나는 《프랑켄슈타인》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며 연상된 것들을 중언부언 써 보았다.
메리 셸리와 허난설헌
메리 셸리(Mary Shelley, 1797-1851)는 19세에 프랑켄슈타인을 쓰기 시작해 2년이 안 된 1818년 3월에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했다. 그녀의 이력을 알게 되면서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이 떠올랐다.
메리와 허난설헌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에서 활동한 여성 문학가들이지만 겹치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지식인 가정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 16세기 후반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문학 활동이 극도로 제한받던 시기에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오빠들과 함께 한문학을 익혔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이기도하다. 메리 셸리는 18~19세기 영국 낭만주의 시대에 진보적인 지식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허난설헌은 주로 한시를 썼는데 특히 규원가(閨怨歌)와 같은 작품에서 여성의 한과 정서를 섬세하게 표현해 당시 중국에서도 높이 평가받았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으로 근대 SF 소설의 효시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난설헌은 조선시대 여성으로서 극심한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발휘했지만, 남편의 외도와 시모의 구박, 연이은 자식의 죽음 등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메리 셸리 역시 계모에게 핍박을 당했고 자식들을 잃었다. 두 사람 모두 각각의 문학사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당대 여성에게 주어진 한계를 뛰어넘어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름, 존재의 인정과 사회적 정체성의 시작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서는 괴물을 지칭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나온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물을 ‘my creature’, ‘the being’, ‘the daemon’ 등으로 부른다. 주로 ‘the creature’(피조물, 창조물)라고 부르는데 이는 작가가 가장 자주 사용한 중립적인 표현이다. 괴물 자신은 스스로를 ‘Adam’(아담)이라고 부르길 원한다고 말한다. 이는 최초의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화가 났을 때는 자신을 ‘your fallen angel’(타락한 천사) 또는 ‘the devil’(악마)에 비유하기도 한다.
나는 괴물을 ‘이름이 없는 자’라 부르고 싶다. 이름이 있었다면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의 행동은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괴물이 이름을 가졌다면 자신을 하나의 개체로 인식하고, 창조자나 사회로부터 최소한의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에서 그가 “나는 아담이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갈망을 보여준다.
이름이 있었다면 빅터 프랑켄슈타인과의 관계도 달라졌을 것이다. 창조자가 피조물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책임지고 관계를 맺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름이 주는 소속감과 정체성은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순화시켜 분노와 복수 대신 더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물론 이름만으로 외모에 대한 공포와 편견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이름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최소한의 인격체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아졌을지도 모른다. 드 라시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괴물’이 아닌 하나의 이름을 가진 존재로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과 사회적 정체성의 시작점이다. 메리 셸리가 괴물에게 이름을 주지 않은 것은 이런 소외와 정체성의 부재가 가져오는 비극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나누고 다시 합치다
프랑켄슈타인이 여러 다른 사람들의 조각을 모아 괴물을 만드는 장면을 읽을 때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이 떠올랐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 모두 기존의 자연스러운 전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여러 시체의 부분들을 선별하여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조합한 결과물이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본 파편들로 분해한 다음 한 화면에 동시에 재구성했다. 두 경우 모두 통일된 전체성을 거부하고 인위적인 조합을 통해 새로운 존재나 시각을 창조한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본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놀람은 피카소의 입체주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이 느꼈던 혼란과 비슷했을 것 같다. 두 경우 모두 익숙한 형태가 파괴됨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200여 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프랑켄슈타인》이 던지는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급속한 기술 발전 속에서 우리가 창조하는 것들에 대한 책임, 소외당하는 존재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한 인간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시대를 넘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다. 창조하고 책임지며, 타인을 받아들이고 공존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소설의 효시이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철학서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조각난 존재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내가 했던 행동만 보면, 네가 그런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지. 하지만 내 불행에 공감해 달라는 게 아니다. 그 어떤 동정도 내게서 찾기 힘들 테니까. 처음부터 나는 동정이 아니라 선에 대한 사랑과 행복과 애정의 감정들, 그런 것들이 내 삶에 넘쳐 나길 바랐다. 나도 함께하고 싶었던 거지. 하지만 지금 그런 미덕은 내게 한낱 그림자가 되어 버렸고, 행복과 사랑도 쓰라림과 지긋지긋한 절망으로 바뀌어 버렸는데 어디에서 동정을 구해야 했단 말이냐? 고통은 혼자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물론 내 고통은 쉬지 않고 계속되겠지만 말이야. 내가 죽을 때 갖은 증오와 거친 비난이 쏟아져도 괜찮다. 한때 나는 미덕과 명예와 즐거움에 관한 꿈을 꾸며 내 욕망을 달랬어. 그리고 나의 겉모습에 관대하고 내 뛰어난 자질을 아껴 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소망하며 착각에 빠져 있었어. 나는 한때 명예와 헌신이라는 높은 이상을 품고 살았지만, 이제는 악에 이끌려 가장 비천한 동물로 전락하고 말았지. 나보다 더 지독한 죄와 악행을 저지르고 더한 고통을 겪은 사람은 없어. 내가 저질렀던 끔찍한 일들을 돌이켜 보면 고귀하고 초월적인 꿈으로 가득 차 있던 예전의 나를 상상조차 할 수 없어. 하지만 사실이 그래. 타락한 천사가 더욱 악독한 악마가 되는 법. 하지만 신과 인간의 적인 그들에게도 커다란 불행과 환멸 속에서 사는 그에게도 친구와 동료들이 있어. 하지만 나는 혼자다. (…) " 350, 351쪽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글, 구자언 옮김, 더스토리 펴냄,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