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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Nov 08. 2017

교육자로서의 비트겐슈타인 (긍정적인 측면에 대하여)


  교사로 지내던 시절 비트겐슈타인의 모습은 꽤나 부정적인 모습으로 인식되는 듯합니다. 뺨을 때렸다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거나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지요. '하이트바우어 소송 사건'은 말할 것도 없고요.



(뭔가... 애들을 울렸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교육자로서의 면모가 이렇게 부정적인 인상만 남아 전해지는 것은 참 아쉽습니다. 누이 헤르미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나는 루트비히가 가르치는 것을 몇 번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나의 직업학교에서 가끔 오후 시간에 소년들을 정성껏 가르쳤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멋진 일이었다.


  그는 단지 강의만 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 소년들이 옳은 해결책을 찾도록 이끌었다. 한 번은 소년들에게 증기 기관을 만들게 하기도, 또 칠판에 탑을 설계하기도 했고, 또 움직이는 사람의 형상을 그려보라고 했다. 그가 아이들에게 불러일으킨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심지어 가장 재능이 없고 보통 때에는 주의가 산만한 소년들도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답을 만들어냈으며, 모두들 답을 말하거나 발표할 기회를 얻기 위해 매우 열심히 서로 경쟁을 벌였다.


- 비트겐슈타인 평전 / p. 284




  비트겐슈타인 본인은 교육 개혁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의 교육 방법은 개혁 운동의 기본적인 몇 가지 원리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선생이 말한 것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해 혼자 힘으로 사고하게 하는 것 말이지요. 위의 책에서 이어지는 부분을 좀 더 옮겨 보겠습니다.



 아이들은 고양이의 뼈를 조립함으로써 해부학을, 밤에 하늘을 바라봄으로써 천문학을, 시골길을 걸으며 식물의 이름을 맞춤으로써 식물학을 배웠다. 또한 빈으로의 수학여행 동안 건물 양식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가 가르친 모든 것을 통해 아이들에게 모든 것에 호기심을 품고 질문을 던지는 자신과 동일한 정신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이런 교육 방법으로 인해 잘 따라오는 아이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폭군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까요. ^^;;

  특히 수학을 중시해서 매일 아침 수학을 두 시간씩 가르쳤고, 대수는 가능한 일찍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대수를 못 했다고 혼났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문돌이인 나 같은 사람은 비트겐슈타인 선생님한테 많이 혼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지만 말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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