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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Oct 07. 2016

인신공격을 잘 하는 이는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타인에게 인신 공격성 말과 근본주의적 공격을 잘 하는 이는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 혹은 지식과 명예가  많아도 마찬가지인데, 사실 그가 그 많은 돈과 권력 등을 쌓은 주된 이유도 그것들로 자신의 약한 자아를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철학, 사상, 도덕, 종교 등에의 모든 과도한 믿음과 신념도 그러하다.


타인을 쉽게 인신공격하거나 근본주의적 공격을 하는 이유는, 그렇게 타인을 비하 혹은 오류화, 악마화 시킴으로써 자기 자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욕구 때문이다. 즉 '타'를 죽임으로써 '아'를 살리는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자아는 그렇게 해서 강화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조건들 때문에 나는 강하다, 나는 괜찮다"는 믿음을 얼핏 만들어 주긴 하지만, 엄중히 말해 착각이다. 애초에 자아란 내부와 외부의 그 어떤 조건들과도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실제론 아무런 효과가 없다.


내면에서는 그 효과 없음을 느끼기 때문에, 부족하면 더 쌓으려고 하고 이미 많이 쌓인 것도 더욱더 쌓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바다 표류 중에 갈증을 해소하려고 소금기 많은 바닷물을 계속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 즉 자아의 부족감은 더 심해진다.


기본적으로 내부와 외부에 어떤 조건들을 쌓아서 자아 부족감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방법은 실패한다. 또한 자신과 타인을 힘들게 한다.


약한 자아도 얼마든지 타인 괴롭힘은 가능하다. 아니 약한 자아이기에 타성적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것이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이는 인신 공격이나 근본주의적 공격의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애초에 자아란 그런 부족감, 만족감과 아무 상관없는 것임을 눈치채야 한다. 그리고 자기 개체, 자기 개인으로만 국한시키는 자아의 느낌과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실제론 자아의 경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러므로 약한 자아, 강한 자아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가상(假想)'이다. 다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스스로 그렇게 설정하고 느끼고 믿을 뿐이다. '자아' 자체가 만들어진 가상의 것이다.


사유가 여기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일단 자기 개인, 자기 가족, 자기 집단에만 제한시켜 놓은 '자아의 범위'를 의식적으로 그리고 감각적으로 더 확장시키는 것이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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