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Oct 09. 2016

내가 죽은 후 이 우주는 그대로일까, 사라질까?

주의. 이것은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다

내가 죽은 후 이 우주, 즉 이 세상은 그대로 있을까 사라질까?


우주라고 했지만 실은 내가 살았던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 환경들 말이다. 결국 그것이 이 우주 안에 포함되므로 단지 이 세상이라고만 하지 않고 전체 우주로 보는 것이다. 또 그게 맞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될까? 내가 죽고 나면 이 세상은, 이 우주는 사라질까 그대로 있을까?


주의할 것은, 이 질문은 '그대로 있음과 사라짐'의 사실 여부를 묻는 게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그에 대한 과학적 답을 구하는 질문도  아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인식 자체'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믿으며, 그 믿음의 결과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어떤 경험들을 하고 있는가 말이다. 또한 답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답을 하든 그를 통해 우리가 빠져 있는 무엇을 눈치채는 것, 그래서 그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이 질문은 어떤 종교나 신비주의 하고도 전혀 관계가 없다. 오히려 가장 냉철하고 엄중한 논리적 사유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접근해야 한다. 판타지는, 여하 간의 것이든 여기서는 거부한다.




아마 우리 중 거의 대부분은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세상, 이 우주는 그대로 존재한다'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사실'이라 여기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사실 여부는 증명될 수 없다. 즉 내가 죽은 후에 이 세상이 그대로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건 증명 불가능이다.  스스로 솔직하다면 말이다.


아무도 '실제 죽어' 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죽은 이후엔 어떤 형식이든 소통이 불가능하다. 혹은 인식이 불가능하다. 어떠한 인식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다. 임사 체험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경험이나 이야기들이 있지만 냉철히 이야기하면 모두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닌 상태'에서 일어나는 일에 불과하다. 우리가 말하는 건 한번 죽은 후 계속 죽은 상태로 있는 '완전한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분이다.


임사 체험 등은, 중립적으로 이야기하면 완전히 죽지 않은 뇌가 경험하는 일종의 꿈과 같은 체험일 혐의가 농후하다. 혹은 당사자가 어느 정도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후에 혼수상태에서의 무의식적 경험들에 여러 가지 사후 느낌과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덧붙여 만들어지는 스토리일 수도 있다.

(사실 임사 체험, 사후 세계 등의 유무에 대한 것은 '사실 여부'라기보다는 '믿음 여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각자 자신이 선호하는 모델을 믿을 순 있다. 다만 있다고 믿든 없다고 믿든 자신과 다르게 믿는 이에게 '(있는 것이 혹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라고 주장할 순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선 그 유무를 따지진 않는다. 이것은 마치 '토끼의 뿔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지 않는 것과 같다. 애초에 따질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자주 드는 증거가, '다른 사람들이 죽은 후에 나와 주위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내가 죽어도 이 세상과 우주는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답이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오류인데, 그것은 '나의 죽음'이 아니다. 타인의 죽음 역시 (지금 계속되느냐 사라지느냐를 따질) 이 우주, 세상 속에서의 이벤트일 뿐이다. 다른 사건들과 같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내가 경험하는 세상에서의 타인의 죽음'이라는 현상이지 나의 실제 죽음과는 관계가 없다. 예를 든다면, 내가 꾸는 꿈속에서 다른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비슷하다. 꿈속에서 타인이 "나 이제 꿈에서 깨어날 거야(혹은 죽을 거야). 잘 있어!"라고 한 후에 사라진다(혹은 죽는다)고 해도 그건 내가 내 꿈에서 깨어나는 것 혹은 나의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나의 죽음' 현상이다.




"그렇다면 '내가 죽은 후 세상이 사라진다'도 마찬가지로 사실 여부가 증명 불가한 것이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다. 당연하다.(그래서 애초에 이 글은 계속됨과 사라짐 자체를 묻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었다.)


'내가 죽은 후에 이 세상, 이 우주는 모두 사라진다' 역시 유무의 증명이 불가하다. 이유는 같다. 실제 죽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죽음 후의 진행 사항을 알 수 없다. 일단 뇌의 작동 멈춤으로 의식 자체가 끊어지는데, 그 후에 어떤 인식이 이어지는지 아닌 지, 이어진다면 어떻게 인식이 되는지 등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누군가가 죽음 후엔 모든 게 멈추거나 사라진다고 여긴다면, 그 또한 그의 믿음의 문제이지 사실 여부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자신은 여하 간의 정보와 경험과 신념을 그렇게 믿을지언정 다르게 생각하는 이에게 '사라지는 게 사실이다'라고 주장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 스스로 솔직하다면 말이다.


(물론 두 가지 경우와 별도로, 우주가 이어지든 사라지든 그 경험의 주체인 내가 죽으면 어차피 나에겐 아무것도 경험되지 않으므로 그 여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이 관점도 타당하긴 하다. 하지만 이 경우조차도 내 죽음 후의 우주의 영속, 비영속 중에 하나를 믿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한계가 있으며, 그것이 그 사람에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그럼 어느 경우든 그 여부를 알 수 없다면 이런 불가지론적 이야기를 왜 할까? 그건 바로 '실용적'인 의의 때문이다. 아니, 이게 실용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이지?


현재 만약 "당신이 죽은 후에 이 세상, 이 우주가 그대로 계속 존재하고 이어질까요 아니면 모두 사라질까요?"라는 질문지 주어진다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사람이 "계속 존재할 것이다.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글쎄, 어차피 알 수가 없는 질문이고 답이기 때문에 어느 편을 선택하든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런 측면이 있다.


내가 죽은 후에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 내가 관계했던 일들, 내가 속했던 사회, 세상, 우주가 그대로 존재하고 이어진다고 믿을 때 우리가 가지게 되는 느낌과 생각과 행동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믿음(이제는 이게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믿음'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확연해졌을 것이다)이 주는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향은 물론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담고 있다. 가령 내가 죽은 후에도 내 아이들, 가족들, 지인들, 친구들, 사회 공동체, 지구 등은 그대로 계속 존재하므로 그들을 위해서 나는 할 수 있는 여러 최선의 일들, 좋은 일들을 하겠다는 식으로 가는 건 긍정적 영향이 될 수 있다. 죽은 후에 사라지든 말든 어쨌든 이러한 태도는 살아 있는 동안에 나 자신과 주위를 좀 더 온전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정적 영향들이다. 말하자면 그 '세계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 때문에 느끼게 되고, 일어나게 되고, 간직하게 되는 여러 가지 불필요한 집착, 욕심, 투쟁, 충돌, 싸움 혹은 부정적 감정들 즉 두려움, 분노, 슬픔, 외로움, 억울함 등이 되겠다.


사실은 우리 인간이 일상에서 그리고 삶에서 가지게 되는 어느 정도 이상의 모든 내부적, 외부적 부정적 경험들은 이 '내 죽음 후의 세계의 영속성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 때문에 생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속되는지 안 되는지 자체를 알 수 없는 혹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유독 영속된다는 것을 믿음으로(사실로 받아들임으로)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것들 말이다.


반대로 미래에 어떤 새로운 문명이 생기거나 혹은 시대적 사조가 퍼져서, '내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다'를 믿게 된다고 해도 역시 그에 따른 긍정, 부정적 후속 영향이 있게 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엔 내가 죽은 후에 이 세상이 그대로 존재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건, 그 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내가 '계속 존재한다'를 믿고 있다면, 그 무의식적 믿음으로 인해 혹시 발생하고 일으키고 경험하고 있는 불필요한 부정적 경험들은 없는지를 선명히 보는 것이다.


드물겠지만 그 반대를 믿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혹은 '세상이 영속하든 안 하든 내가 죽으면 모든 것 어차피 끝나는 것이다'를 믿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믿음 때문에 생기는 불필요한 것들을 눈치채야 한다.


그래서 어느 경우든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조금 더 가볍게 하는 것이다. 왜? 그 근거가 되는 영속성(혹은 단절성)에의 믿음이 '다만 하나의 설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여기든 상관없이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의 의식 혹은 뇌의 내적인 관성의 영향이 커서, 설사 지금 당장 "내가 죽은 후 이 세상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건 하나의 상상이네."라고 여긴다 해도 기존에 있던 생각과 반응의 패턴들이 금방 바뀌진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적 관성' 조차도 의례히 존재하는 하나의 패턴임을 알면 된다. 그래서 그 관성의 영향이 있음을 알아차리면서 그것이 '다만 관성일 뿐'임을 알면서 계속 진행하면 된다. 알아챔, 눈치챔을 말이다.




자, 다시 한번 자문자답해 보자.


"내가 죽은 후에 이 세상은, 이 우주는 그대로 계속 존재할까 혹은 모두 사라질까?"


어떤 답이 자동으로 떠오르나? 당신은 어떤 설정을 믿고 있나?


그리고, 그 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무심결에 믿고 있는 내부의 답에 의해

당신이 불필요하게 가지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만약 그 불필요한 것이 나에게도, 타인들에게도 별무소용이라면 이제 좀 더 가볍게 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인신공격을 잘 하는 이는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