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의 말을 꼼꼼하게 기록해놓기
정상적인 상식과 논리가 아니라 실체가 없는 음모론을 믿는 것, 근거없는 유튜브와 가짜뉴스를 더 믿는 것, 상식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준법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법원을 습격하고 폭동을 일으킨 것, 재판을 받는 중에도 판사를 자신들의 적으로 모는 것
이 모든 일이 어떻게 21세기 문명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20세기 초 이미 목도하고, 평범한 악과 전체주의를 철저히 분석한 아렌트의 말을 꼼꼼히 읽고, 그 원인과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계속 정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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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과 다른 사람의 현존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 말의 무능력 = 사유의 무능력 = 현실을 막는 벽으로 둘러쌓여있는 그.
아이히만의 경우는 평범한 범죄자의 경우와 다르다. 평범한 범죄자는 자기의 범죄집단이라는 좁은 한계 내에서만 범죄없는 현실로부터 효과적으로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고,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지 않다는 확신을 느끼기 위해서는 단지 과거를 상기하기만 하면 되었다. 왜냐하면 그가 살았던 세상과 그는 한때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8000만명으로 이뤄진 독일 사회가 동일한 방법, 동일한 자기 기만, 거짓말, 어리석음을 통해 현실과 사실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전시에 독일 국민 전체에 대해 가장 효과적인 거짓말은 히틀러나 괴벨스가 만든 독일 민족을 위한 운명의 전투라는 구호였다. 이 구호는 세 가지면에서 쉽게 자기 기만에 빠지게 해주었다. 그 것은 첫째로 전쟁은 전쟁이 아니라고 암시했다. 둘째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운명이지 독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로 전쟁은 독일인들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이들은 적을 전멸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전멸당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런 종류의 선전 효과는 현대 대중의 주요특징 중 하나를 보여준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명백한 것을 믿지 않으며, 그들이 경험한 현실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을 제외하고는 자신들의 눈과 귀조차도 신뢰하지 않는다. 이 상상이 보편적인 동시에 그 자체에 모순이 없는 어떤 것에 의해 사로잡혔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대중은 자신들의 본질적인 고향 상실감으로 인해 현실의 우연적이고 납득할 수 없는 양상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기 때문에 현실 도피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허구에 대한 그들의 열망이 인간 정신의 능력과 관계가 있다는 것 역시 진실이다. 대중의 현실 도피는 살도록 강요받았지만 실존할 수는 없는 세계에 대한 그들이 내리는 평결이다.
사실주의, 상식 및 모든 세계의 개연성에 대해 대중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그들이 원자화되었고 사회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그들은 상식이 통하게 만드는 틀을 가진 공동체적 관계의 전체영역을 상실했다.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고향 상실의 상황에서 자의적인 것과 계획적인 것, 우연적인 것과 필수적인 것의 상호의존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다. 전체주의 선전은 상식이 타당성을 상실한 곳에서만 상식을 잔인무도하게 모욕했다.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고발의 극악 무도함과 그 내적 일관성에 의해 흐려진 상황에서는, 단순히 추상적인 유죄가능성에 굴복하라는 유혹에 저항하려면 지속적인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성격의 강인함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결코 믿지 않을 동료 인간들에 대한 커다란 신뢰가 요청된다.
전체주의 운동은 권력을 잡고 교의에 따라 세계를 건립하기 이전에 마술을 부려 일관된 거짓말의 세계를 꾸며낸다. 이 세계는 현실 자체보다 인간 정신의 욕구에 더 적합한 것이다. 뿌리뽑힌 대중은 이 거짓말의 세계 속에서 고향처럼 느낄 수 있고, 또 현실적인 삶과 실제의 경험들이 인간과 그들의 기대에 가하는 끝없는 충격을 피할 수 있다. 운동이 권력을 잡고 허구적인 세계의 소름끼치는 정적이 누구에 의해서도, 극히 사소한 현실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도록 철의 장막을 내리기 이전에 전체주의가 소유한 힘은 대중을 현실 세계로부터 차단하는 능력에 있다.
- 전체주의의 기원
우리 사회의 개인의 원자화, 고립, 고향상실을 점검해야 한다. 이미 터전을 잃고 계급도 잃고 소속을 잃은 이들은 쉽게 대중이 된다. 대중은 운동과 하나가 된다.
운동 그 자체가 목적이다. 진실이 아닌 욕구 그 자체와 결합한다. 모든 실재성을 잃는다. 허구의 세계에 사로잡혀 어떤 진실도 믿지 않는다. 전체주의는 이들을 움직여 현실로 차단시키고 운동의 소용돌이를 더 크고 웅장하게 만든다.
실재성을 잃지 않으려면, 인간의 조건에서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타인과, 극도로 다양한 세계의 타인과 조우해야한다. 사적영역이 아닌 공적영역에서 만나야 한다.
전체주의를 철저히 분석했기에 인간의 조건과 같은 책을 쓸 수 있었구나. 아렌트. 대단한 철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