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책』을 읽고

지구온난화에 대해선, 분노와 해결책은 다른 문제

그레타 툰베리라는 소녀를 기억하는가? 지구온난화 이슈와 관련한 UN 연설에서 “How dare you?”라고 일갈하며 자본주의와 현대 문명까지 싸그리 비판하며 어른들에게 통렬한 일침을 놓았던 스웨덴의 소녀 말이다. 당시엔 그녀에 대해 여러 관점의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다. 현대문명의 경제성장까지 포기하면서 환경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판, 열차 바닥에 앉아있는 컨셉 사진을 찍었지만 사실은 그때 1등칸을 예약했었기에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 컨셉 사진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는 비판, 2019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을 때 홍콩의 중국 체제 반대 시위자들을 제치고 선정될 만큼의 인물이었냐는 비판 등이다. 모든 비판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주장들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판 말고는 사실 별 문제도 아닌 것들이다. 컨셉사진은 진정성에서 의심이 갈 수는 있으나, 그녀가 마케팅 팀이 딸려 있지 않은 10대 소녀라는 걸 볼 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겨우 일회용품 종이컵을 사용했다는 건, 지구온난화 이슈에 비하면 사소하다. (물론 그녀는 일회용품 사용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적 주장을 종종 해서 사람들의 속을 긁곤 하지만) 홍콩 시위자보다 그녀가 더 위대한가에 문제에 대해선, 2019년 시점의 이슈였을 뿐이고 그녀 잘못이 아닌 타임지 선정자의 잘못이다.


내 생각은? 당시 나는 유튜브 채널 『김필산의 사이언스비치』를 통해 그레타 툰베리와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을 대조하며, 지구온난화가 화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며 침착하게 데이터에 기반해 대응해야 할 것이라는 나만의 생각을 밝혔다. 물론 툰베리에 대한 거센 비판은 아니었고 그녀의 주장들이 너무 감정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걸 안타까워 하며 제작한 콘텐츠였다. 하지만 썸네일 이미지에 그녀의 화내는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박아넣으며 그녀를 고로시했다는 점에서, 나에게도 너무한 점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반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레타 툰베리를 너무 세게 까지는 맙시다. (...) 그레타 툰베리의 주장에 그렇게까지 틀린 점은 없습니다. 그 주장에 분노와 비난을 담지 말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얘기했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 김필산의 사이언스비치 중에서
그레타 툰베리처럼 환경운동하는 것보다는 침착하게 데이터에 기반해서 환경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 - 김필산의 사이언스비치


그녀가 20세가 성인이 되어 책을 한 권 썼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 책의 표지엔 그녀의 이름을 크게 박아 넣어서 그녀가 쓴 책인 것처럼 홍보되고 있는데, 실상은 그녀가 내용을 전부 쓴 건 아니고 세계의 유명한 과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의 글을 모아서 엮은 책에 가깝다. 하지만 기획력 또한 문장력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의 글을 모아서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홍보하는 책’ 같은 비판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기획이 없었다면 이 책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만약 이 책이 정말로 대단한 책이라면, 책의 훌륭함은 온전히 그녀의 업적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그녀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이용해 지구온난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어 당면한 이슈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책을 썼을 수도 있다.


이 책이 그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면 말이다.


The Climate Book - Greta Thunberg

여기서 내가 또다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혹시라도 불러일으킬 논란을 최대한 피해가고자 하는 나의 밑밥 제시다.)


1. 그녀의 말은 틀린 말이 없다.

2. 나의 현재의 비판은 그녀의 환경운동 자체가 아닌, 책의 구성에 향해 있다.

3. 여전히, 나는 지구온난화 이슈에 대해서 감정보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 자체는 뭐, 좋은 얘기들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사실 - 지구온난화의 데이터, 지구온난화의 제1원인은 인간이라는 명백한 사실, 지구온난화를 통해 일어나는 대기뿐 아닌 바다, 육지, 빙하 등의 이상 변화, 동물과 식물, 생태계의 영향들,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 - 쓰레기 줄이기, 정치인들에게 항의하기, 비행기 안 타기, 그리고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기, 연대하기, 인간의 평등함을 믿기 등등...


다 좋은 얘기들이라 인간들이 그동안 왜 이런 좋은 행동들을 실천도 안하고 멍하니 있다가 지구가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었나 모르겠다. 당연하다. 인간 사회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그레타 툰베리가 모아놓은 주장들은 모두 우리가 지구온난화 초창기 시절, 대략 10년 전부터 들어오고 또 그렇게 해와야 한다고 귀에 딱지가 앉히게 들었던 강령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원칙들을 전혀 지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냥 공허하게 말만 외쳤을 뿐이다. 이제 와서 뭐가 달라졌는가? 전혀.


우리는 이 책에서 툰베리가 말한 거의 모든 것을 10년 전부터 해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우리는 하지 못했다. 그때 못한 걸 지금 와서 굳이 또 해보라 한다면, 난 여전히 이번에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회 구조가 그렇게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시대착오적이다. 이 책은 10년 전에 나왔으면 재밌게 읽어볼 수도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때라면, 어쩌면 우리는 실천하는 시늉이라도 했었을 것이다. (물론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제 이 모든 해결책이 잘 들어먹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상태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


이 책이 제시한 해결책이 틀린 건 아니다. 전부 맞는 말이다. 이것들을 해야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를 멈추고 지구를 다시 되돌릴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주장들을 실행할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는, 그것들을 하려면 우리가 경제발전을 멈추고, 우리가 가진 재화를 모두 무(無)로 되돌리고, 현대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한 달콤한 과학기술의 산물을 모두 포기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면 우리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완벽히 해결할 수 있다. 우리 모두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업에 종사하고, 여행도 하지 않고, 가전제품이나 일회용품도 생산하지 않는다면, 농사 기술이 없어서 도시에 남아야 하는 사람들은 빈곤한 삶을 이어나가고, 우리가 사랑하는 대도시의 멋진 마천루는 곧 슬럼가가 되고, 공사중이었던 초고층 빌딩도 공사를 멈춘 상태로 앙상한 골조만 놔두고, 골목마다 서로의 얼마 남지 않은 값비싼 재화를 도둑질하려 하는 범죄자들이 들끓고, 도시까지 와야 하는 (석유 경제에 의존하는) 운송 시스템이 끊겨 식품이 수송되지 않는다면, 대량의 기아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책에서 말하는, '경제발전을 멈추기'. '탈성장'의 결과로 이러한 미래 말고는 생각할 수도, 경험한 적도 없다. 이 모든 걸 감내한다면, 툰베리의 해결책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살기 싫다. 이렇게 살기 싫다는 걸 말하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냉엄한 국제정세의 현실도 지구온난화 따위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돌아간다. 하루빨리 지구온난화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 지구 전체가 한몸처럼 탄소 감축을 해야 할 2023년 말에도, 전 지구에서는 싸움박질 하느라 한창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이스라엘-하마스 등의 분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중국-대만 (혹은 세계 3차대전)이 다음 전쟁을 예약해 놓았다. 전쟁에 대한 지구온난화 효과의 기여분에 대해서 책에서 밝히진 않았고, 2016년 파리 협정에서도 군사 부분의 통계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니 아무도 군사와 전쟁에 대한 통계를 밝히지 않은 모양이다. 어떤 나라가 순진하게 “지구온난화를 위해 솔선수범하기 위해 군축하겠다”고 선언한다면, 바로 다음 날 적대국이 국경선을 밀고 내려올 것이다. 전쟁에 대한 태도는 놀랍게도 위에서 말한 경제발전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동일하다. 모두 줄이고 싶겠지만 아무도 줄일 수 없는 것이다.


10년 동안 눈치싸움을 거듭하며 새롭게 깨닫게 된 인간의 본성이 추가된 지구온난화 예측에 대해 책은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해결책으로 빌 게이츠의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라는 책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기술발전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바로 탄소포집 기술이다. 이 기술은 공기중에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고체 형태로 저장하고, 공기 중 이산화탄소 비율을 낮추겠다는 해결책이다. 빌 게이츠는 이를 위해 유망한 탄소포집 기술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이 해결책에 따르면, 우리는 아름답고 사랑스런 경제 발전을 어느 정도 지속해도 되고, 각국의 전쟁 지휘관도 적국에 포격을 신나게 발사해도 된다. (농담이다. 전쟁은 하면 안 된다.)


문제는, 툰베리의 책에서는 탄소포집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글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케탄 조시'라는 프리랜서 작가의 글이었는데, 이런 그를 책에 실은 걸 보니 툰베리도 이 주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가 주장의 요지는, 지금까지 시도했던 탄소포집 기술은 전부 실패했으므로 더 이상 탄소포집 기술에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연한 거 아닌가? 한 번도 시연되지 못한 신기술이 그럼 실패하지 성공하겠는가? 이 책이 만에 하나라도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다면, 이 글로 인해 안타깝게도 탄소포집 기술은 지구온난화 해결책 리스트에 우선적으로 지워질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탄소포집 기술을 가능성의 하나로 놔 두고 싶다면, 우리는 이 책을 비판해야 한다.


아닌데? '롭 잭슨'이라는 교수의, 탄소포집기술을 어느 정도 긍정하는 교수의 글도 실려 있던데? 물론 그렇다. (사실 찬찬히 읽어 보면 그다지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 나는 비판의 화살을 다시 한 번 '기획자' 툰베리에게로 돌린다. 책 내용 안에서 주장의 일관성도 맞추지 못한 기획자란 실력 없는 기획자일 것이다. 이왕 툰베리의 기획력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나의 주관적인 감상평을 적자면, 이 책 중에서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툰베리의 글이 제일 재미가 없었다. 그 글들은 지루했는데도 너무 많았고, 장과 장 사이에서 장의 내용을 요약해 주거나 분리해 주는 역할도 하지 못했다.


탄소포집 기술까지 고려한다면, 지구온난화 이슈는 성공이냐 실패냐의 이지선다적 미래가 아니다. 어느 정도 성공하고 어느 정도 실패하는 가능성들이 혼합되어 있는 미래다. 왜냐하면 탄소포집 기술은 이산화탄소의 포집 정도를 경제적 가치, 돈으로 환산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기온이 올라서 보는 손해보다 탄소포집 공장을 돌리는 게 더 싸게 먹힌다면, 인간들은 곧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미래가 그려진다. 지구의 평균 기온은 2도~3도나 오르지만 인류는 가까스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를 막아 내었다. 열대 지방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변했고, 가난한 저위도 지방의 나라는 더 가난해졌다. 하지만 선진국들, 특히 고위도 지방에 땅을 좀 더 가지고 있는 나라들은 그냥저냥 괜찮게 살게 될 것이다.  뭐라고? 이런 미래가 실패가 아니면 뭐겠냐고? 아니다. 그냥 적절히 타협하고 사는 미래일 뿐이다. 모든 국가가 잘 사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글쎄다, 국제정세란 그런 것이다. 20세기 팍스 아메리카나와 세계화의 황금기 시대엔 잊고 살았던, 2020년대에 다시 시작된 무정부 상태로 회귀한 국제정세일 뿐이다. 물론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미래를 성취하기 위해 그레타 툰베리가 제시하는 해법을 열심히 실천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그레타 툰베리의 주장에 완전 반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은 실천할 가치가 있다. 또한, 탄소포집 기술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모든 시도를 해봐야 하며 지금 뭘 따지고 뭘 반대하고 할 만한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감정에 휩싸여 대사를 그르치면 안 된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자면,테크놀로지로 인해 지구가 병들었으니 테크놀로지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래서 탄소포집 기술도 뭔가 탐탁찮게 보는 느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불평등, 경제발전 모두 인간성을 황폐화시키고 자연과 지구를 병들게 한다고 주장하는 느낌이다. 이 모든 주장의 이면엔 '감정'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How dare you?"라고 일갈하던 그녀의 내면에 말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여전히 나의 메시지는 같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침착하게 데이터에 기반해 지구온난화에 대처하자. 테크놀로지, 자본주의, 경제발전 모두 중립적인 것들이며 우리는 거기에 감정을 부여해선 안 된다.어쩌면 이것들이 지구온난화 해법에 꼭 필요한 인류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