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을 읽고
한때 가장 유명한 개발자이자 인류 사상 가장 부자였던 빌 게이츠는 은퇴 후 인류 사회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선행과 기부, 투자에 큰 힘을 쏟고 있다. 그가 크게 투자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지구온난화와 기후 재앙을 해결할 신기술 분야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분야에 대한 그의 진심이 담긴 책이다. 이런 모습은 좀 존경스럽다. 은퇴 후에도 여기저기 투자하고 선행하며 갓생 사느라 바쁜 지상 최고의 부자가, 자투리 시간을 써 가며 자신의 재산에 비한다면 얼마 벌지도 못할 책을 집필했다. 그런데 그 책이 자신의 업적을 길이 남길 자서전이 아니라고? 인류의 미래를 위한 책이라니?
이 책이 제시하는 바에 따르면, 인류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인류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인류가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가 있다. 그 목표란 바로, ‘0’이다.
왜 우리는 목표 온실가스 배출량 ‘0’에 도달해야 할까? 왜 5% 감축도, 50% 감축도 아닌 100% 전부 감축이어야 할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구온난화는 여전히 진행될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기후 재앙을 일찍 맞닥뜨리느냐, 아니면 나중에 마주하느냐이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인류의 문명은 반드시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주 단순하게 도출된 목표이다. 그 목표를 실현하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들리긴 하지만 말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재앙이 일찍이 예견된 이후, 우리는 지구온난화의 해결에 대해 지금껏 이런 사고방식으로 생각해 왔다. 플라스틱 덜 사고, 재활용 열심히 하고, 여행 덜 가고, 가솔린 차를 전기차로 바꾸고, 이렇게 아껴 쓰면 온실가스의 배출이 줄어들겠지? 그러면 내 노력 덕택에 지구온난화 문제는 해결될 거야. 하지만 막상 전세계적인 온실가스의 배출량은 늘 늘기만 해 왔다. 우리는 2019년 말부터 거의 2~3년을 끌었던 Covid-19 팬데믹 사태를 기억한다. 그 때는 전세계적으로 산업과 교통이 감소하며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온실가스의 배출량이 줄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감소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고작 5%였다고 한다. 그 5%를 줄이기 위해, 인류는 실직당하고, 병사하고, 고립되었다. 일자리는 급속히 감소했고 경제는 침체 상태에 빠졌다. 그 기간은 정말로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여전히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걸.
5% 감축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온실가스 배출량 ‘0’이라는 목표는 대체 뭘까? 그것은 100% 감축이다. 빌 게이츠가 제시한 이 비현실적인 목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팬데믹 사태 때의 데이터만 참고해 본다면 우리는 온실가스를 100%, 전부 감소시키는 데 그 때보다도 훨씬 크고 극악한, 무도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세계의 경제는 침체를 넘어 대공황에 빠질 것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모든 일자리가 금지되어 인류 대부분이 실직할 것이다. 식량 생산이 금지되어 아사자가 속출하고, 의료품을 교통수단을 통해 전달하지 못해 대규모의 전염병이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우리가 해낼 수 없는 일’ 같이 보인다. 그러므로, 빌 게이츠의 그 불가능한 목표치를 달성하는 방식은 우리가 여전히 앞으로 닥칠 기후 재앙을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었던 방식, 즉, 아껴쓰고, 덜 사고, 덜 움직이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빌 게이츠의 온실가스 배출량 '0'에 대한 구상에 있어서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사치와 유흥을 위해서도 온실가스를 배출해 왔지만, 당연히 생존을 위해서도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무시할 수 없다. 식량과 건축, 운송, 그리고 그에 필요한 전력 생산 말이다. 그에 따른 온실가스는 분명히 발생하므로 줄일 수 없다. 줄일 수 없는 온실가스의 양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것을 다시 되돌리는 방법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빌 게이츠의 목표는 발생량 빼기 제거량, 그 순 발생량이 0이 되면 된다.
그 기술이 바로 탄소 포집(Carbon capture)라고 부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현재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많은 난관을 넘고 있지만,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방식이다. 빌 게이츠는 이 기술이 최선으로 발전하면, 비용을 이산화탄소 1톤 당 100달러까지로 보고 있다. 산술적으로 보자면 매년 전세계에서 배출되는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제거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매년 5.1조 달러이다. 이는 세계 경제의 약 6%에 해당한다. 참고로 미국의 1년 예산은 6.9조 달러이다. 이렇게 들으면, 해볼 만한 싸움일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 방식으로 경제가 폭삭 주저앉기를 선택하느니, 그냥 매년 예산을 집행하여 탄소포집 공장을 전세계적으로 대규모로 돌리는 것이다. 그럼 뭐 문제가 끝난 것 아닌가? 지금부터 빨리 탄소포집 공장을 건설하자!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자!
아니, 그게 그렇게 잘 되지 않으니까 문제다. 탄소 포집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직은 가격이 그 정도로 내려가지 않았고(책에는 2021년 당시 미국에서 1톤 당 2600달러, EU에서 1톤 당 4000달러라고 보았다. 2023년 최신 정보를 위키피디아를 참조하면, 1톤 당 1000달러이다. 이를 산술적으로 환산하면, 당장은 세계 경제의 60%를 탄소 포집에 써야 한다), 고체화된 포집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분명 510억 톤의 고체화된 이산화탄소는 어마어마한 부피를 차지할 것이다.) 탄소 포집 공장을 돌리는 데에 화석 연료를 태우는 발전소를 돌릴 수는 없으므로, 제로 탄소 전력 생산도 가능해야 한다. 누가 그 방대한 금액을 지불해야 할지를 정하는 것도 문제다. 당연히 전세계 1위의 예산을 가진 미국이라도 그 금액을 모조리 지불할 수는 없다. 전세계 모든 국가가 6% 내기로 약속한다면, 모두 서로 덜 내고 남이 더 지불하게 만들기 위해 각기 총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탄소 포집 기술이 ‘순 발생량 0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기술이긴 하지만, 그것에만 얽매여선 절대로 안된다.
다음 목표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각 산업군을 하나씩 살펴 보면서 온실가스의 배출 현황을 조사하고 그것들의 배출량을 ‘0’으로 줄이거나, 탄소 포집 기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양으로 줄이는 방식을 조사하는 것이다. 빌 게이츠의 조사에 따르면, 각 산업군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다음과 같다.
이 차트만 봐도, 우리가 덜 먹거나 덜 쓰는 방식으로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플라스틱은 그렇다 치고, 시멘트나 철은 집을 짓는 데 필수적인 것이며 이것을 줄인다는 것은 앞으로는 건물을 흙이나 나무로 지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동물과 식물은 거의 대부분 우리의 식량이 될 것이므로 이를 줄일 수는 없다. 우리가 중소형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트럭과 화물선 등을 통해 필수품의 운송에서 발생한다. 에어컨이나 난방기를 없앨 수 있을까? 더위야 버틴다 쳐도, 난방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고 말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전력 생산이다. 우리는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충전하는 데 전력을 쓰기도 하며, 우린 온실가스 감축에 보태기 위해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스마트폰 사용량을 기꺼이 줄일 수 있다. (줄일 생각 없는데 이렇게 말해서 불편하다고? 그런 우리를 위해 지금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다른 산업군에 대용량으로 쓰이는 전기의 양은 어마어마하며, 전력 생산의 27% 비율은 다른 산업군과 얽혀 있기 때문에 제로 탄소 기술로 전환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전력 생산에 대해서는 이미 해답이 나와 있다. 우리는 화석 연료를 태워서 생산하는 발전소 대신 사용할 태양광과 풍력 발전 기술을 꽤 많이 발전시켜 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이 구상의 핵심적인 사항으로, 핵분열 발전소의 믹스업이 포함된다. 꿈의 핵융합 발전소가 있긴 하지만 이 기술은 나올지 말지 확신할 수 없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제로 탄소 기술’인 핵분열 발전소만이 최상의 선택이다. 핵분열 발전소는 태양광, 풍력 발전조차 가지지 못하는 “가장 값싸고 깨끗하고 언제나 생산 가능한 발전소”이다. 인류의 가장 거대한 위험 요소이자 이대로라면 반드시 일어나게 될 재앙인 기후 재앙의 앞에서, 고작 “일어날 가능성이 눈꼽만큼도 되지 않고 철저한 안전 관리를 통해 그 가능성조차 니어 제로로 줄일 수 있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위험성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감내해야만 한다.
시멘트의 생산에 대해서도 기술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멘트는 채굴한 석회암에 열을 가해 산화칼슘과 이산화탄소로 분리하여 생산하며, 여기에서 이 화학 반응을 우회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다. 이를 기술발전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탄소 포집 기술이 있다. 시멘트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공장 굴뚝에서 ‘포인트 캡처(point capture)’하는 방식은 공기중에 흩어진 이산화탄소를 모으는 ‘직접 탄소 포집’보다 훨씬 쉽다. 이렇게 시멘트 제조 공정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해 시멘트에 다시 주입하는 방식이 이미 개발되어 상용화되었다. 더 좋은 방법은 아예 다른 곳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시멘트를 만드는 방식이며, 탄소 포집과 더불어 연구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술 혁신으로 개발된 탄소 제로 기술들이 기존의 재래식 기술에 비해 반드시 더 비쌀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를 그린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그린 프리미엄 때문에 비싼 기술은 반드시 사장될 것이다. 누구나 값싸게 생산하고 공짜로 몰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길 원하지, 비싼 신기술을 이용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여기에서 빌 게이츠가 담당하는 역할이 있다. 빌 게이츠의 재산을 털어 그린 프리미엄을 대신 내주는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니다. 빌 게이츠는 이 그린 프리미엄을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리하여 제로 탄소 기술들이 재래식 기술보다 약간만 비싼 그린 프리미엄을 갖거나, 아예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도달하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기꺼이 이 기술들을 사용할 것이다.
이제 기업가 정신과 스타트업 방법론으로 무장한 젊은 사업가들이 빌 게이츠의 투자금을 받아 저렴하고 유지 가능한 제로 탄소 기술을 혁신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이들의 머리 속에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지구온난화에 대비하는 방법 따윈 없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깨끗한 제로 탄소 기술로 무장해 지구의 온도 증가를 가까스로 멈추고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쟁취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기업들의 주식을 사들이고 적극적으로 주주의 권리를 행사해 배당금을 받으며 함께 부자가 되어 동반 성장해 나가면 된다. 이것이 바로 덜 쓰고 덜 먹으며 경제를 망치는 방식 아닌, 앙트레프레너십(기업가 정신)으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