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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극과 극의 시선

한삼희의 『위키드 프라블럼』을 읽고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가 과장되어 있다거나, 혹은 심지어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는 이제 미국 대통령까지 지지하는 주력 가설이 되었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는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 가설을 거짓말로 치부하고 파리기후협약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환경운동가까지는 아니더라도,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의, 환경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공약들이 훨씬 더 큰 걱정을 몰고올 것이 거의 틀림없지만.)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며, 거의 절대적인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지지하고, 실제 증거는 차고 넘치며, 게다가 만에 하나 사실이 아닐 지라도 '파스칼의 내기'(신을 믿지 않는 데에 따른 손해가 너무나 막심하기 때문에, 신이 실제로는 없다 해도 있다 가정하고 믿는 것이 낫다) 논법으로 인해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라는 개념 자체는 철옹성이다. 그러나 양심있는 어떤 과학자도 지지하지 않고 석유회사의 더러운 자금에 영향받은 양심을 팔아먹은 과학자만이 지지하는 반대 주장을, 최강대국 미국이 수용한다면, 이 지구는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환경은 파괴되고, 생물은 멸종되고, 해수면은 상승하고, 인간은 농지를 잃고 찬란했던 21세기의 문명을 잃고 쇠퇴할 것이다.


물론 '파스칼의 내기' 논법을 들이댄다면 할말은 없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과학자 중에서도 (물론, 석유회사와 아무 상관없는 과학자들)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실 워낙에 과학계라는 곳이 비판과 검증을 지독히도 요구하니, 빠른 행동과 결단을 요구하는 현 사태에서 증거나 검증 없이 조금은 휙휙 건너뛴 단계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과학자들을 악의 무리로 모는 것은 잘못된 일일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지구온난화 회의론자 중에도 수많은 주장들과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1. 지구온난화는 진행되고 있고, 이 현상은 인간에 의해 일어났으며, 이 사태가 계속되면 우리는 큰 손해를 볼 것이다. (우리가 지지하는 가설)

2. 지구온난화는 진행되고 있지만, 이 현상은 단지 큰 지질학 주기의 일부분일 뿐이며, 이로 인해 손해를 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구온난화는 인간에 의한 게 아니라는 가설)

3. 지구온난화는 진행되고 있고, 이 현상은 인간에 의해 일어났지만, 이 사태가 계속되더라도 손해를 볼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으며, 잘만 한다면 큰 무리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 무해 가설)

4. 지구온난화는 진행되고 있고, 이 현상은 인간에 의해 일어났지만, 사실 지질학적 스케일로 보자면 엄청나게 사소한 사건인데 우리 인간이 노력해서 뭐하겠는가? 어짜피 빙하기 한 번 오면 끝장날 정도로 연약한 게 인간 문명인데. (지구온난화 사소 가설)

5.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에 침묵을 지켜야 한다. (지구온난화 불가지 가설)

6. 지구온난화는 진행되고 있고, 이 현상은 인간에 의해 일어났지만, 미래의 우리 자손이 슈퍼울트라한 과학기술을 통해 해결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구온난화 미래세대에 떠넘기기 가설)


온 지구인이 한데 모여 지구온난화에 의한 급격한 환경 변화를 한시바삐 막아야 하는 이 시점에서 결국 이렇게 다양한 주장들의 겐세이로 인해 환경론자의 입장은 흐지부지해져 버린다. "지구온난화 그거 거짓이라면서? 나는 보이지도 않는 이산화탄소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불편하게 걸어다니느니 나는 그냥 누구나 타는 자동차를 타고 출근하는 것 뿐이라고!" 라고 하는 사람 앞에서 열성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피력해 봤자 우스운 급진 환경론자로 비웃음만 당할 뿐이다. 100년 후 내 후손의 세계가 멸망의 길로 가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내가 자가용 대신 도보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불편하다. 파스칼의 내기가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위키드 프라블럼 - 한삼희 (2016)

이 책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가설과 윤리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중립적 입장으로 잘 정리한 책이다. 어느 한 쪽의 입장에 서서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고, 다양한 입장들을 골고루 대변하고 있는 점이 가치있다. 또한 저널리스트임에도 좋은 과학적 글쓰기를 보여주는 점이 놀랍다. 우리가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 가설 편에 서서 적극적으로 주장을 펴기 위해서는 실제로 반대 주장의 맞는 점과 잘못된 점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쪽 편에 서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만 모으고 정리한 '주장이 강한' 책보다는 이렇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각각의 장단점을 잘 서술한 책을 읽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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