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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를 읽고

특이점이 와 간다,  고작 한 분야에서만

170724


2005년에 쓰여진 이 두꺼운 책의 영향력이 2017년인 현재까지 크게 감쇄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다는 것은 저자인 레이 커즈와일의 미래 예측력에 대해 사람들이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될까? 2016~17년은 인공지능에 대해 커즈와일의 바로 이 책의 신묘한 예언(그렇다. 그 계시적인 논조는 예측이라기보단 거의 예언 수준이다.)이 실현되는 성스러운 기적을 일반인들까지 맛보게 된 시기였다. 유머사이트에까지 ‘특이점이 온 뭐뭐뭐’라는 제목으로 재미있는 짤방이 오를 정도였으니. (리처드 도킨스의 ‘Meme’ 개념이 약간 오용되어 미국 유머사이트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었지만 시의의 적절성에서 더욱 눈여겨볼 가치가 있었다.) 인공지능 혁명에 대해, 일반인이 가장 쇼크를 받은 것은 알파고의 인간에 대한 승리였겠지만, 나로서는 소위 ‘딥 러닝’이라 불리는 알고리즘의 대두 자체에 있었다.


Ray Kurzweil - The Singularity is Near

딥 러닝은 정말 인간의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인가? 물론 이 책에 의하면 그렇고, 심지어 네 자리도, 세 자리도 아닌 두 자리대의 햇수 안에 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한다. 사실 인공지능, 정확히 말하면 기계 학습의 발전 속도는 지금까지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인간의 뇌를 시뮬레이션한다는 기치 아래 탄생했던 뉴럴 네트워크는 컴퓨터 연산의 한계로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는 퍼포먼스로 연구자가 갈수록 줄고 있었다. SVM, 결정나무, 베이즈 등의 대안 기계학습은 스팸메일 분류법과 겨우 자동차번호판을 읽는 수준의 문자해독 능력에 만족하며 이거라도 실용화해서 쓰고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기술적 특이점의 도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도 있었으리라 본다.


망조가 든 뉴럴 네트워크를 몇십년 동안 끌어안고 하드캐리하던 제프리 힌튼 교수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교수가 영년 교수직 제도의 수혜를 입은 테뉴어 교수였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우스갯소리로 지인과 한 적 있다. 힌튼 교수는 ‘Deep Neural Network’, 즉 ‘딥 러닝’ 알고리즘을 발표하고 뉴럴 네트워크의 부활을 알렸다. 이 사건엔 여러 가지 함의점이 있다. 첫째로, 테뉴어는 좋은 제도이다. 특히 어떤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에게는.(절반은 우스갯소리이다) 둘째로, 결국 정답은 (여러 기계학습 방식이 있다 해도 결국 최종 정답은) 인간 뇌 시뮬레이션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커즈와일의 예언 중 적어도 ‘인공지능’에 대한 것 하나는 확실히 맞을 것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특이점주의 중 여전히 회의적인 부분이 있다. 인공지능 분야 외에도 GNR, 즉 유전공학, 나노공학, 로봇공학 분야에 대한 특이점 예언은 아리송하다. 이 분야는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밀도의 집약이 이끄는 분야가 아니다. 유전공학은 내가 아는 게 없어서 그렇지만, 결국 인간의 DNA에 대한 생화학적 이해에 기조하는 학문일 텐데, 여기에 특이점주의의 핵심 개념인 지수적 발전이 있는가? 나노공학 또한 마찬가지인데, 물론 테뉴어를 받고 실패나 성공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연구하는 ‘나노공학의 힌튼 교수’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무언가 예측할 수 있는 건덕지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물론, 이 가정은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로봇의 인공지능 분야를 제외한 하드웨어 부분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드웨어가 굳이, 특히 액추에이터 같은 로봇의 부품들이 지수적으로 증가할 집약적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물론 이럴 수도 있다. 로봇 몸체가 반도체처점 지수적으로 크기가 감소하여 나노의 크기가 되어 인간의 DNA를 훑고 다닌다는 식의…


물론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와는 거리가 꽤 되는 사람이라 이 비판이 정당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실제로 ‘느껴질 수 있도록’ 특이점이 다가온 분야가 인공지능 뿐이라 더 회의적으로 변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정신을 업로드한다느니, 빛의 속도를 바꾼다느니 하는 퓨처라마 같은 이야기는 좀 빼도 특이점 도래의 예언의 정당성에 아무 지장이 없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빼면 책의 두께가 좀 더 날씬해져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특이점주의의 주장을 접하게 될 수 있는 추가의 이점도 생길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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