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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물리학이 전부 설명할께, 생물부터 도시까지

제프리 웨스트의 『스케일』을 읽고

카오스 이론과 복잡계 이론

제임스 글릭의 『카오스』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을 최초로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으로, 교양과학서 치고는 잘 팔렸는지 ‘20주년 기념판’으로도 재출간된 적이 있다. 내가 어릴적에 읽고도 꽤 감명을 받긴 했으니 대중을 상대로 한 교양과학서 중에는 오래 기억되고 있는 고전 명저라 불러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실제 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들어본 바로는, 최근엔 물리학자들이 카오스 이론보다는 복잡계 이론이라 불리는 것들을 주로 하고 있다고들 한다. 카오스 이론이 나온지 50년 정도 되었는데, 내 생각에 실제 그 정도 되면 팔 건 다 팠을 것이며, 이제야 뭐 나올 건덕지도 없는 상태일 테다. (물론 난 학계의 사람이 아니니까, 아닐 수도 있다. 만약 반박하는 전공자가 출현한다면, 바로 이 주장은 철회 들어가겠다.) 들어보니 복잡계 이론은 카오스 이론은 또 아닌 다른 분야라고 한다. 주제 자체가 좀 다른데, 카오스 이론의 테마가 비선형성, 나비 효과, 프랙탈 등이라면 복잡계 이론은 자기조직화, 지수적 감쇄, 스케일링 등이다. (그래서 뭐가 다르다는 건지?)


용어가 뭔지 몰라도 상관은 없다. 그냥 테마 별로 좌우를 나누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시간순서인 것 같기도 한데, 과거에 ‘카오스’로 이름붙인 것들이 약간 촌스럽게 들리던 즈음에, 연구하던 사람들이 약간 다른 주제로 갈아타면서 ‘복잡성’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연구자의 성향도 동일하고, 방법론도 똑같고, 아이디어고 공유되고, 둘 간에 큰 장벽도 없다. 일례로, 자기조직화한 네트워크망(복잡계)의 지수적 감쇄 발생 요인은 공간에 퍼진 망의 프랙탈 구조(카오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연구자들은 보통 물리학과 출신으로, 물리학 학부 과정에서 주로 연구하는 입자, 광자, 전자기, 공간, 우주, 파동에 대한 것들을 배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복잡계 연구로 넘어오면서 재미있게도 그들의 연구 주제는 지진, 도시, 언어, 기업, 생물이 되는데 이런 식의 물리학 베이스 연구자의 차별적인 주제 확장은 카오스 이론 연구 프로젝트에서도 해온 일이다. 내가 만나본 물리학과 박사과정생 한 분은 물리학과 석사 과정까지 끝낸 후에(물리학 석사 과정이라니, 생각만 해도 그 수학과 공식과 양자역학의 이해 안되는 개념들의 압박이 느껴진다), ‘한국인의 이름 분포 통계’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물리학-카오스 이론’ 혹은 ‘물리학-복잡계 이론’의 연결 쌍은 ‘일반상대성 이론-텐서 수학’ 혹은 ‘양자역학-힐베르트 공간에 대한 수학’과 같은 쌍으로 취급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원래 이론물리학자들이 현상에 대해 이론을 세울 때, 수학자들이 취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수학 이론을 많이 만들어 낸다. 그들의 수학은 수학자들이 보기에 엄밀성이 좀 떨어질지라도, 어쨌든 수학은 수학이라 플라톤 세계의 완전성과 추상성을 갖추고 있다. 그 수학이 현상과 연결되면, 추상성이 사라지며 물리학 이론이 된다. 아인슈타인은 (놀랍게도) 원래 수학을 잘 못했는데, 머릿속에 그린 일반상대성의 현상을 이론화하기 위해 수학자의 도움을 받아 텐서 수학에 대한 체계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카오스 이론이나 복잡성 이론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 이은 제 3의 혁명’(『카오스』 초판본에서 인용)이라거나, ‘복잡성의 대통일 이론’ (『스케일』에서 인용)같은 건 아니라는 소리다. ‘복잡성의 물리학’이란 진짜 물리학이라기보단 단지 통계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수학적 모델을 크게 일컬을 뿐이고, 요정도의 수학적 모델링은 통계학, 사회학, 경제학에서도 많이들 하는 일이다. 물론 양자역학의 수학을 연구한 물리학자들이 모델링을 좀 더 엄밀하고 세부적이고 근본적으로 깊이 다룰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큰 장점일 거고, 그러한 특성 때문에 물리학 출신의 연구자가 ‘복잡성 과학’ 연구 프로젝트를 가동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스케일 이론

마크 뷰캐넌의 『우발과 패턴』에서 ‘자기조직화하는 임계 상태’에 대한 복잡계를 주로 다뤘다. ‘자기조직화하는 임계 상태’는 임계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언젠가 무너지거나 파괴된다. 자연계에서는 지진이나 산불, 사회계에서는 전쟁이나 경제가 대표적인 임계 상태이고, 이 ‘자기조직화하는 임계 상태’의 복잡계적 특성 때문에 무너지는 순간을 모델링하거나 예측하기가 힘들다는 주장이 『우발과 패턴』의 내용이었다.


『스케일』에서도 복잡계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우발과 패턴』처럼 한꺼번에 붕괴되거나 무너지지는 않는 시스템들이고, 혹시 붕괴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예견할 수 있는 시스템인 ‘생물’을 다루고 있다. 어떤 차이점일까? 임계상태의 지각은 작은 붕괴와 큰 붕괴가 지수 분포를 이루고 있고, 다음번 지진이 큰 붕괴로 일어날지, 작은 붕괴로 일어날지, 혹은 언제 일어날지 확률적 추론 말고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생물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데, 80살 사는 사람은 많아도 150살 사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과감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로 다루는 주제는 ‘기울기’이다. 지수 분포의 한 축 혹은 두 축을 변환시켜 곡선으로 굽은 함수 자체를 직선으로 만들 수 있다. 축을 변환시키는 방법을 ‘로그 스케일’이라고 하는데, 변환하면 눈금이 1, 2, 3, 4…가 아니라 1, 10, 100, 1000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직선으로 변환된 함수는 특유의 기울기를 가지게 되는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기울기값 자체가 시스템의 큰 의미를 나타내는 중요한 수치이다.

Scale - Geoffrey West


놀라운 현상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 1에서 시작해 10배씩 늘어나는 로그 축의 특성상 조금만 오른쪽으로 계속 가면 엄청나게 작은 크기의 생물부터 엄청나게 큰 크기의 생물까지 다 포함이 되는데, 이 모든 사이즈의 생물이 같은 기울기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은 생물체의 특성을 다양하게 조사한 결과, 그 기울기는 1/4의 배수로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벼룩부터 고래까지 모든 동물은 심장 박동 수 -1/4, 수명 1/4,성장률의 지수 3/4, 대뇌 백색질과 회색질의 양은 5/4라는 기울기로 표현된다.


그 이유는 생물체 설계시의 물리적 제약이다. 때문에 이 일을 하기에 물리학과 출신이 적절하다. (비단 수학을 잘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생물체는 생물체 내의 공간 구조를 설계할 때 공간을 꽉 채우는 망 구조로 설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구조로 몸 내부를 채우다 보면 필연적으로 프랙탈 구조가 만들어진다. 벼룩도 그렇고 고래도 그렇단 소리다.


그렇다면 1/4의 비밀은 무엇일까? 여전히 물리학 출신의 장점이 드러나는데, 저자인 제프리 웨스트는 ‘공간 3차원+프랙털 1차원’의 비밀로 표현한다.


마법의 수 4는 망이 봉사하는 부피라는 통상적인 삼차원이 망의 프랙털 특성에서 비롯되는 추가 차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확장됨으로써 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4라는 보편적인 수는 사실상 3+1이다.


무슨 소린지 대충은 알겠지만 이해 안가는 부분이 아직 있다. 프랙털의 차원은 여분의 소수를 만들어 내지, 정수 1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해안선 차원은 2차원이 아니라 1.52 차원이다. 생물의 망 설계가 극강의 프랙털성을 보여서 거의 0.9 가까이를 채운다 할지라고 실험을 통해 측정한다면 ‘미만’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 삽입된 표에 제시된 측정값들은 ‘미만’도 있지만 ‘초과’도 있다. 좀 더 나은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리학자의 영원한 오지랖, 대통일의 꿈

생물을 너머 기업과 도시도 이러한 특별한 기울기 분포를 보인다면 얼마나 놀라울까? 실제로 기업의 흥망성쇄와 도시의 인구분포를 그래프로 그려 보면 생물만큼은 아니지만 정제된 일직선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기울기는 어디에서나 조사해도 특정한 수로 수렴한다. 여기에서 물리학자의 큰 오지랖이 시작된다. 생물과 기업, 도시, 그밖에 모든 복잡계는 같은 성질을 띠기 때문에 근본이 되는 물리학적 원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리학자는 언제나 대통일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전기와 자기를 성공적으로 통일해 하나의 식으로 만들어 냈고, (맥스웰의 전자기학)통일된 전자기력을 비롯해 발견된 네 가지의 힘을 차례차례 병합해 나가서, 종국에는 중력과 나머지 힘의 통일을 이루어 내려고 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생물, 도시, 기업도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나타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꾼다.


그러나 나는 이 견해에 반대이다. 이렇게 생물학, 도시학, 경영학을 넘나드는 분야에서 하나의 직선으로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긴 하지만, 이건 단지 통계적 분포일 뿐이다. 일관된 통계적 분포는 물리학적 특성이 아닌 수학적 특성이 비슷하다는 것을 뜻한다. 수학적 특성이란? 물리학과는 상관 없다는 얘기다.  다른 예로 정규분포가 있다. 정규분포는 인간의 키(생물), 도시의 공간적 인구 분포(도시)에서도 나타난다. 정규분포가 어디서든 툭툭 튀어나온다고 그 누구도 이 다양한 분야의 대통일을 꿈꾸진 않는다. 단지 정규분포는 이항분포의 근사라는 수학적 설명만 붙일 뿐이다.


저자는 특히 물리학에 대한 오만한 자부심을 은연중에 드러내는데, 다음과 같은 인용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비교적 소수의 헌신적인 연구자 외에는 생물학계가 전반적으로 노화와 죽음에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서(...)


글쎄, 생물학계에서 노화와 죽음을 죽도록 파는 데가 있는데, 바로 의학계이다. 의학이라는 분야가 생물학으로부터 분리되어 훨씬 더 많은 자본과 인원이 투입되고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저자의 관점은 좀 편협하다.


비록 더욱더 기념비적인 성취를 이룬 뉴턴이나 아인슈타인보다 다윈을 어떻게 더 높이 평가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만 말이다.


다윈이야말로 생물학 내에서의 대통일 이론을 이룬 사람이다. 균류부터 식물, 동물까지 모두 다윈의 진화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학제간의 대통일 이론을 만들고 싶다면, 각 분야 내에서의 ‘대통일 이론’을 존중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이 ‘스케일 이론’에 대한,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획기적인 가치를 깎아먹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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