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삼원색 중 하나는 기록

제주살이 이야기

by 이해달

외로움을 잘 탄다. 사람도 모임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내향인이다. 그래서 한 내향인 80%, 외향인 20% 정도의 비율의 모임이라면 아주 환영이다. 대부분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자수 클래스, 북바인딩 클래스 같은 모임을 가면 이런 비율이 자주 보인다. 가끔 옆사람한테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단, 외향인이 아닐 경우 아, 외향인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줬겠구나. 여하튼 처음 만난 자리라면 내향인 비스므리해 보이는 사람한테는 먼저 말을 꺼낸다. 하지만 대화는 잘 이어지지 못한다. 머리를 미친 듯이 굴려 다음 주제를 생각해내야 한다. 클래스 같은 경우에는 배우는 것에 관심 있어서 오기 때문에,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소재이다. 대화는 끝내 이어지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2권이나 있지만 책을 낸 사람인데도 말을 못 한다. 첫 책에서도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 그걸 쓸 당시가 거의 4~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그래도 그나마 내가 조금 말이 트였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일기를 쓴 직후였던 때였다. 내 고민들을 솔직하게 적어내고, 나의 당시 관심사로 도배되어 있었을 다이어리 속 하루짜리 일기를 쓰고 나서는 말이 제법 터져 나왔다. 조리 있게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무얼 말할지 고민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매년 연간 프로젝트처럼 일부러 거창한 이름을 짓고서 한 해를 이끌고 갈 표어를 정하곤 한다. 이번 2026년은 RGB 프로젝트이다. 보통은 하루를 투두리스트처럼 목록으로 구분 짓고 얼마나 했는지 지워가면서 하루를 평가하지만 나는 하루를 세 가지 색으로 구분했다. 수익창출을 위한 세상과의 연결, 숨을 고르고 나를 돌보는 회복, 휘발되는 하루를 붙잡는 기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루의 삼원색 중 하나인 기록은 연결과 회복만큼 중요한 루틴인 것 같다. 기록이 없으면 하루가 사라지니 그 무수한 하루로 만들어진 나도 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기록이 하루의 삼요소로서 꼭 필요했었다. 생각해 보자. 2019년 5월 4일에 무슨 일을 했을까? 일기장은 고사하고 사진마저 찍지 않은 날이라면 그날은 없어진 날이 되어버리고 만다. 방금 생각해 봤지만 나는 아무 기록이 없어서 그날의 나를 찾지 못했다.


사실 기록의 중요성은 누누이 알고 있지만 쉽지 않았다. 세세하지 않더라도 했었던 일, 감정 한 줄 정도만이라도 적어놓을 걸.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오늘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이었는지. 우리의 제주 생활을 잊지 않기 위해. 나중에 목표한 곳에 올라섰을 때 비약했던 지금을 잘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말을 잘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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