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동네, 지는 동네
최근 나의 필름에는 유독 익선동이 많이 담겼다. 거칠지만 아직 때 묻지 않은 동네가 맘에 들어 자주 찾았다. 나의 행동반경은 좁고 반복적이다. 맘에 드는 장소가 눈에 들어오면 질릴 때까지 다니곤 한다. 이곳도 한동안 자주 다닐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공간을 돌이켜보면 작고, 낡았고, 한적했다. 2011년 연남동, 서촌 등이 그랬다.
나는 이러한 동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도시재생이란 늘 좋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십정동 달동네를 가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 선택한 도시재생의 수단이 오히려 동네와 어울리지 않아 발길을 더하기 힘들어진 곳.
처음 가 보았다.
익선동의 음식점, 카페, 술집들은 대부분 이런 느낌이다.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느낌. 서울이기에 이러한 분위기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한적함이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뱅쇼란 음료를 처음 마셔봤다. 뱅쇼(Vin Chaud)의 뱅(Vin)은 와인, 쇼(Chaud)는 따뜻하다는 뜻이 합쳐진 불어라고 한다. 와인에 사과, 오렌지, 계피 등을 넣고 끓이는 음료인 것 같은데,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신맛은... 오래전부터 적응하기 힘들다.
그래도 아주 추운 겨울, 뱅쇼 한 잔 들고 멍하니 창가에 앉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젠 봄이 왔으니 12월에 만나자.
익선동 골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봤다. 골목에 사람이 없는 것이 맘에 든다. 요즘 정말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한다. 좋은 장소에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사진을 보니 그날 사진 찍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열 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여 '열우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십정(十井)동.
인천 십정동 달동네를 찾아 지붕들이 잘 보이는 곳에서 셔터를 눌렀다. 이 사진을 촬영할 당시에는 이 풍경이 십정동 달동네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부식된 철제 지붕과 떨어져 나간 기왓장, 벗겨진 페인트, 복잡한 전봇대 전선까지. 낙후한 달동네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벽화마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촬영지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가면 뭐라도 있겠지'라는 마음에서 찾아갔다.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실패한 벽화마을의 모습만 볼 수 있었다. 벽화마을 구역은 상당히 좁았고, 자칫 그 구역을 벗어나면 어김없이 십정동 달동네의 민낯을 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되어 보이는 집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도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천천히 동네를 걸으면서 몇몇 동네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낯선 나를 본 주민들은 익숙하지만 불편한 듯한 눈빛을 건네었다. 처음 느껴보는 달동네의 기운에 취해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골목을 걸어다녔다.
그러곤 달동네의 민낯을 사진에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 사진을 촬영했다. 그런데 사진을 인화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 다시 사진을 보니 알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이 있었다. 참 사람 마음 알 수 없다. 카메라에 담기는 좋은 동네란 것인가.
십정동 달동네 골목의 모습이다. 왼쪽 사진과 같은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 벽화마을을 조성해 동네를 살려보겠다고 생각했다면, 크게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끌어모으고자 한다면 주변 환경 정리부터 시작했어야 했다. 관광지를 생각하고 찾은 사람들에게 골목에 버려진 물건은 시간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불쾌함일 뿐이다.
골목을 구석구석 다녀본 결과, 십정동 달동네에서는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이 많은 듯 하였다.
곳곳에 연탄재가 쌓여있었다. 연탄을 가지고 생활해보지 못한 나는 잘 모르겠다. 막연히 바라볼 뿐이고, 미디어를 통해 느낌을 유추할 뿐이다.
이날도 지나가다 쏟아지는 햇살과 연탄재가 묘한 느낌을 주어 뷰파인더 속에 넣었다.
달동네의 길고양이.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카메라를 들이대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 보였다. 우리 동네 고양이는 도망가기 바쁘던데. 넌 동네 주민들이 잘 챙겨주나보구나.
상정 문구·슈퍼. 이 슈퍼가 '응답하라 1988' 5인방의 어린 시절 배경이다. 5인방이 이 슈퍼 앞에서 목마를 타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고등학생이 된 시점에서도 종종 배경으로 나오곤 했다. 응답하라 1988의 팬이라면 가볼만 하겠다 싶었다. 실제로 운영 중인 곳.
오른쪽에 살짝 벽화가 보인다. 사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느낀 점이지만, 벽화에 집착하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겠더라.
휴일 오후. 창 밖을 보려다가 눈에 들어온 풍경. 따뜻한 느낌. 난 괜히 이런 느낌에 울컥한다.
우리 가족이 만들어 놓은 이 따스함은 너무 소중하다.
서울역은 나에겐 환승역. 서울역에 머무르는 시간은 극히 짧으니 별다른 느낌이 없다.
그런데 이날은 분주한 사람들을 보고 싶어 찾았다. 만남과 이별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고, 또 괜히 여행가는 기분도 들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예상대로 서울역은 늦은 시간임에도 분주했다. 웃으며 기차를 타러가는 사람들과 웃으며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덕분에 멍하니 바라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 예전에 나에게 말했다. 공항에 가면 기분 전환하기 좋다고. 그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공항은 다르려나.
2월 중순 쯤으로 기억한다. 눈이 오길래 급하게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 사진을 찍었다. 2015년에 시작된 겨울의 마지막을 알리는 눈일 것이라 생각했다.
눈이 내리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는데,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그래도 기념으로 한 장.
근데 일주일 뒤 엄청난 눈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괜히 머쓱.
가끔 한대앞역과 연결되어 있는 육교를 건넌다. 늘 느끼지만 곧게 뻗은 도로가 인상적이다.
캐논 AE-1 / Fuji Color C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