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고리즘에 감사를
달력이 있는 벽을 바라봅니다. 어느새 그 많던 날들 다 떠나고, 이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달력 한 장이 매달려 있습니다. 아련한 12월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12월의 남은 날들도 내 옆에서 잠시 빛나다 떠나겠지요. 이별의 책임은 떠난 사람이 아니라, 떠나지 않은 사람에게 있다고 했던가요. 2025년 한 해 동안 내 곁에 머물다간 날들에 대한 책임도 물론 저에게 있겠지요. 새해에 오는 날들은 좀 더 책임감 있게 주체적으로 대면할 작정입니다. 이제 '2025년 12월'로 표기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부디 이별과 만남을 잘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도 참 고마웠습니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만남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브런치 만남>이 그저 소중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브런치 작가이면서 구독자로, 구독자이면서 또 작가로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것이 감사하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저의 브런치를 찾아와 읽어 주심에 감사하고, 메아리 없는 댓글도 개의치 않고 혜량해 주시니 감사하고, 여러모로 고마운 수고들 뿐입니다.
그 수고에 대하여, 마지막 잎새 같은 달력 한 장이 떨어지기 전에, 꼭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아, 해피 뉴이어ㄹ~
2. 좋은 과거 365개
12월, 이맘때면 사람들은 지나온 열한 달을 돌아봅니다. 정말 잘 살았어, 후회 없는 날들이었어. 대부분의 우리는 이러지 못하고, 하-- 먹먹한 한숨으로 반성을 시작하지요. 돌아서서 보는 곳에는 언제나 아쉬운 슬픔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법. 조금 더 잘 대해줄걸... 그때 그러지 말 것을...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지도 못했는데 일 년의 뒷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 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행복이라고 했던가요. 나의 어제는 '좋은 과거'였는지. 아울러 지금은 좋은 과거를 만들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좋았던 기억으로부터 오늘을 사는 힘을 얻습니다. 추억이란 그것이 슬픈 것이든 기쁜 것이든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을 의기양양하게 한다고 그러더군요. 슬픈 추억일 때는 고즈넉이 의기양양해지고, 기쁜 추억일 때는 소란스럽게 의기양양해진다고. 사람이 살아갈 힘을 주는 추억이 좋은 추억입니다. 서로 조금씩 욕심을 줄여 좋은 과거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는 언제나 우리 뒤에 있는 걸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과거도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지나간 과거를 싸맨 채 미래로 가져갑니다. 좋은 과거인지 나쁜 과거인지 모른 채. 여기저기서 추억의 보자기가 풀려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버렸습니다. 이제는 나타날 과거도 있을 수 있게 되었고, 떠나간 미래도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 혼돈 속에서 어떻게 현재를 살아야 할까요.
더 이상 과거나 미래 때문에 방황하지 않아야 합니다. 과거를 후회하지도,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말자는 것입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편하고 좋으면 되는 겁니다. 좋은 오늘이 좋은 어제로 바뀐다는 사실과 좋은 현재가 좋은 과거로 축적된다는 믿음. 그 믿음 하나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2월의 뒷모습이 절반쯤 보이는 날에 넋두리 같은 인사 한 번 드려봅니다. 내년에는 좋은 과거 365개만 함께 만들어 보자고 말입니다.
3. 끄트머리 인사
끄트머리 : 맨 끝이 되는 부분, 일의 실마리 【끝+-으머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2025년의 끄트머리, 즉 끝의 머리에 해당하는 날이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종무식을 마쳤다고 퇴근하는 게 아니듯, 오늘로써 삶의 여정이 끝난 건 아닙니다. 벽시계를 보면 '12'라는 숫자가 밑에 있지 않고 꼭대기에 있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끝이 곧 시작이고, 꼬리가 곧 머리인 것입니다. '끝'에 서야 살아온 날들을 빠짐없이 돌아볼 수 있고, '처음'에 서야 살아갈 날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오늘은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맙시다. 그냥 뒤를 향하여 지긋이 눈감고 바라보기만 합시다.
인간의 앞모습은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뒷모습은 쓸쓸하다고 했습니다. 어찌 사람에게만 뒷모습이 있을까요. 이맘때면 세월의 뒷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너무 공격적으로 살지 않았는지, 앞서려는 욕심으로 가까운 이들을 멀리하지 않았는지... 살피게 됩니다. 12월은 뒤돌아서는 달입니다. 뒤처진 이들을 따뜻하게 포옹하는 달입니다. 그리고 느려도 기다려주며 함께 가는 앞모습을 꿈꾸는 달입니다. 그것이 해마다 12월을 맞는 우리의 운명인 것입니다.
1월은 영어로 'January'라고 합니다. 문(door)을 의미하는 라틴어 'Janua'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얼굴이 두 개인 야누스(Janus)는 미래와 과거를 모두 볼 수 있는 '문의 신'이었다고 하지요. 그러니 우리도, 새해라고 앞만 보고 살면 안 되는 겁니다. 가끔은 잘 살고 있는지 뒤도 돌아보고, 뒤처진 이는 없는지 살펴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약소하지만... 새해를 축복하는 의미로 '해'를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찍은 묵은해(2014. 12. 13. 07:36분에 떴던)지만 괜찮으시다면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정동진 겨울 바다를 뜨겁게 솟구쳐 올랐던 녀석인지라, 가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면 봄까지 따뜻할 겁니다. 좀 오래된 해라도 좋다 하시는 분께만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읽어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좀 쉬었다가 새해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