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마음
다시 태어난다면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이생에서 내가 받은 고마움을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서 무조건 보답하면서 살고 싶다. 이생에서 내가 어머니의 고마움에 보답하여 사는 건 너무나 힘들기에, 제발 다음 생에선 내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서 그 무한한 사랑을 갚고 싶다.(송정림,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중)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내 아버지의 아버지로 태어나고 싶다. 어떻게 자식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남의 집으로 자식을 보냈는지, 그 곡절을 알아내고 싶다. 부모 사랑받은 적 없어도 자식에게 사랑 줄줄 알았던, 아니 사랑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더 주어야만 했던, 내 아버지의 통한을 아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 주고 싶다. 받을 때마다 눈물이 났던, 내가 아버지에게 받았던 그 사랑을 꼭 돌려주고 싶다.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애정보다 더 애절하고 뜨거운 사랑을.
아버지는,
끝까지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이라고 김홍식 작가가 그랬다. 세상 모든 사람이 외면할지라도 아버지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고.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결코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효도'란 부모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한 자식의 노력이라 했던가. 그 말이 칼이 되어 내 가슴을 벤다. 그 베인 가슴에서 흘러내린 술을 뿌리고 온 아버지 무덤가에, 붉은 조화가 피어 있었다. 추풍령 공원묘지 봉분 안에서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며 말씀하신다.
'그래 그러렴. 살다가 지쳐 힘을 낼 수 없을 때, 사람 하나 만날 기운조차 없을 때, 내게 오렴. 다른 데 갈 생각 말고 이리로 오렴. 그래서 너도, 나도,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일깨워 주렴.'
어느새 나도,
아버지의 마음을 전해줄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라고 했던가. 눈물 섞인 소주를 즐겨 드시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나는 어떻게 전해야 할까. 무릎 꿀린 어린 아들 앞에서 공사판의 설움과 벌목장의 차별을 풀어놓던 그 마음을. '내가 다 가져간다. 너그들 걱정 다 가져간다.' 설움의 눈물을 단절시키려고, 세상 떠나던 밤에 혼자 되뇌고 되뇌었을 그 속마음을. 아, 나는 아버지의 그 마음을 가슴에만 품고, 아들에게 전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가장 행복한 사람이란 사실만 알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