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기력이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라 생각한다.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져 갈 때면 불이 깜빡이듯, 나의 몸과 마음도 에너지가 없을 때면 의욕을 낮춰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지금 잠시 멈춰 서라고. 어쩌면 내가 지금 가는 길이 가고 싶은 길이 아닌지도, 혹은 지금 내가 너무 무리한 속도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무기력할 때면 잠시 멈춰 서야 한다. 멈춰 서지 못할 수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무기력은 우리를 잠시 멈춰 설 수 있게 해 준다. (서늘한 여름밤, '나에게 다정한 하루' 중)
아,
캠핑용 인산철배터리가 완전 방전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보통의 경우, 방전을 막기 위한 BMS 회로가 작동하는데... 24V를 12V로 강압하여 사용하느라고, BMS 회로를 우회하여 조명등을 직결했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인산철배터리는 방전되면 죽어버린다.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 그래서 배터리가 다 닳기 전에 미리 충전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캠핑카 작업에 빠져 배터리가 다 닳는 줄도 몰랐다니. 조그만 LED 하나 밝힐 기력도 없이 죽어버린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지경이 되도록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얼마나 한심한 주인인가.
무기력을 방치하면,
배터리는 죽는다. 사람도 똑같다. 피스 하나 돌릴 기력이 없는, 빌빌거리는 전동드릴을 보면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교체해 주어야 한다. 다시 기력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또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지지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무기력은 최후의 안전장치, 생명의 마지노선이기 때문이다. 무기력에서 멈추지 않으면, 무기력에서 회생을 시도하지 않으면 배터리처럼 사람도 꺼져 버린다.
무기력은 빨간 신호등이다.
도로에서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차를 모는 사람은 없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적신호를 못 본 척하지 말자. 지금 나의 신호등에 어떤 불이 켜졌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살아야 한다. 무기력의 상태는 배터리가 죽은 것은 아니지만, 미미하게 빠져나가는 대기전력을 방치하게 되면 결국 꺼져 버리기 때문이다. 임종의 순간에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배터리의 영혼이 사라져 버리면, 더 이상 회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음,
그럼에도 다소 예외적인 무기력도 있다. 강으로 들로 아이들과 우르르 뛰어다니며 놀다가, 온 힘 다 쏟아내고 손 끝하나 움직일 기력도 없이 풀밭으로 벌러덩 쓰러지던 그때,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몽글거리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 기분 좋은 무기력.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에너지를 다 쏟아 프로젝트를 끝냈을 때, <아, 이제 끝냈구나>하며 털썩 주저앉으며 느끼던 그 후련한 무기력. 이런 것들은 설사 방치하더라도 사람을 해하진 않는다.
무기력이,
사람을 살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무기력은 우리더러 멈추라 말하고, 그 말대로 멈추기만 한다면 우리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전기차의 회생제동처럼 그 멈춤으로부터 에너지를 회수하기 때문이다. 힘을 내야 할 때 숨을 멈추는 것처럼, 우리의 기력은 '멈춤'에서 나온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특히, 무기력을 호소하는 우리의 청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