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 30일,
아들에게 첫 번째 편지를 보내다.
음양오행에서부터
한글 획수와 발음과 청음의 기운까지,
온갖 속세의 이론들을 두루 검토하였으나,
결국 <장자>의 <재유 편>을 읽고,
이름으로 인한 고뇌의 마침표를 찍다.
오, '재유천하(在宥天下)'라,
천하를 없어지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놓아둔다니,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같은 말이리라.
만물을 있는 그대로 있게 하고(在),
그 본성을 이지러뜨리는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 것(宥).
그래 이것이다.
사랑하는 아들, 在宥야.
너에게 보내는 아빠의 편지는
이것으로 족한다.
이름처럼,
있는 그대로의 본성에서,
아무것도 가감하지도 구속하지도 않으며,
자유롭게 성장하렴.
동네 어귀 현수막에 이름이 올라 자랑거리가 되지 않아도,
반짝이는 포장지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빛나지 않아도 된다.
써놓고 부르지 못하는 이름이 아니기를,
부르기만 하고 품지 못하는 이름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 아빠는,
태산이 무너졌는데 숟가락을 찾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며,
'자식'이면 되었지, '자랑'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네가 우리를 찾아온 그 오늘처럼,
기쁨과 축복의 모습으로 환하게 웃어주면 그만이란다.
아들의 이름을 짓다가,
세상의 수많은 이름들을 다 지어먹은 탓인지,
출생신고 후 며칠 동안 배가 고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