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피해보려고 최선을 다한 단어.
2년여 동안 잘도 방어하며 살아왔다. 최소한의 삶만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지.
대형마트의 출입을 끊고 인터넷배송으로 식탁이 차려졌다. 병원은 참지못할 정도는 되어야 대기석을 차지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부로 챙길뿐 함께 마주 앉는 방법도 잊은 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열심히도 비껴가려 노력했지만 결국은 나도 철인은 아니었나보다.
3일을 앓았다. 열이 나고 목이 부었다. 아니 목이 붓고 열이 난건가? 하여튼 심하게 아프다.
나는 가끔 숨 쉬기가 힘들어지는 증상이 있다. 약간은 공황장애의 증상처럼 자다가도 숨쉬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숨을 몰아쉬는 버릇이 있다. 사소하지 않은, 내게는 꽤 심각한 이 증상으로 결국 죽을거라는 불안증이 항상 함께였는데.
코로나라는 세기의 역병이 내 몸에 침투하며 밤마다 숨이 꼴딱거릴 정도로 목이 붓고 아프다. 숨을 몰아쉬어보지만 쉽지가 않다. 밤마다 누울 수가 없었다. 피곤해 누우면 숨이 막히고 밤이 참 길었다.
작은 집을 대각선으로 이방과 저방에서 아들과 나는 격리되었다.
아이에게 전염되지만 않으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리웠다. 아플때 이마 짚어주는 손길과 약 챙겨주며 걱정하던 남편이, 머리 쓰다듬으며 안타까워하던 남편이 보고 싶었다.
아프니 어리광이 느는가보다. 아이에게 나는 강한 엄마여야만 하는데.
노부모가 걱정이 태산이다. 먹을 것은 있냐? 많이 아프지는 않냐? 애는 괜찮냐? 모든 대답에 나는 거짓말을 섞는다. 안 아프다. 먹을거 잘 챙겨 먹는다. 괜찮다. 심심하기만 하다.
사실 괜찮지 않지만, 노부모가 아플까 상습적 거짓말쟁이가 된다.
아픈 와중에도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끼고 온 집을 청소한다. 평소보다 더 꼼꼼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전 감염 예방을 위한 나만의 최선이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분위기 바뀐 집을 보며 인상을 쓴다. 아프다며 청소했냐고? 대단하다고 비아냥 섞인 걱정을 한다.
예전에는 내가 아프면 걱정은 모두 남편의 몫이었는데.
아들은 참 정 없구나 싶을 만큼 무심했는데.
이제 그 몫이 전부 아들에게 넘어간 모양이다.
학교에서도 계속 연락이 오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엄마를 귀찮게 한다.
예전이었다면 기특하고 고마웠을텐데.
지금 나는 변한 아들을 보며 속이 상한다.
예상치 않은 의무가 더해진 아들의 어깨가 작아보여 가슴이 아프다.
오늘도 나는 콧물과 가래에 속을 게워내는 기침을 쏟으며 침대에서 뒹구는 중이다.
새 직장에 출근한지 한달도 되지 않은 나는 불안한 일주일의 시간을 격리 중이다.
누워 쉬어도 쉬는 거 같지 않는 일주일.
그나마 이만하길 다행이라 감사하며.
시대를 세상을 욕하며. 조금 하느님도 원망하며.
어찌 이런 지옥같은 일이 있는지 두려워하며.
나는 격리 4일째를 견디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