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너무 바빠 내어 줄 시간이 없었지. 언젠가 늙으막에 남은 나의 시간은 당신의 차지일거라 믿었어. 그랬기에 그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라는 가면을 쓰고 할애할 수 있었어. 당신은 언제나 집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렸지. 그렇게 사는게 잘 사는거라고 생각했었어. 당신을 믿었던 거 같아. 언제나 나를 기다려 주리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자신감이었을까?
그때 당신은 외로웠을까?
당신의 것과 지금 나의 이 외로움은 닮았을까?
아닐 걸. 그래도 당신은 내가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렸으니 희망은 있었잖아. 오지않는 나에게 전화걸어 화라도 낼 수 있었잖아, 그랬잖아. 그러니 지금의 나보다는 조금 덜 외로웠겠네 뭐. 나는 돌아오지 못하는 당신 때문에 아프기까지 해. 이게 당신의 복수라면 제대로 한 건 한거였겠군.
미안해해야 하는 거야? 그땐 미안했다고 사과라도 해야하는 거냐고? 그런데 어쩌지. 오늘은 미안한 마음보다 화만 나네. 앞으로의 긴 시간을 나는 어떻게 견뎌야 하지? 나는 어쩌라고 이렇게 혼자 남겨둔 거야?
어떤 책에서 그러더라.
용서라는 건 피해자가 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피해자인 나는 누구를 용서해야 할까?
당신이니? 아니면 하느님? 그것도 아니면 나?
일주일은 아픈데도 일을 하느라 바빴고 그후 일주일은 너무 아파서 앓다가 지나갔지. 그 끝에 돌아온 연휴에 겨우 정신이 들었어. 정신이 들고 보니 왼종일 혼자인 이런 시간이 순간 두렵더라. 그렇게 적막하고 조용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음악도 크게 켜고 티브이도 틀어놨어. 아름다워야 할 음악은 소음이었고 재밌어야 할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 내가 드디어 미쳤나봐. 앞으로 남은 날들도 어제와 오늘처럼 계속해서 이런 날이겠지 싶었어. 오늘처럼 무료할 것이고, 외로울 것이며 여전히 슬프겠구나. 혼자의 시간이 길어지니 잊고 싶었던 당신 생각이 많이 나더라, 그래서 슬퍼. 오늘은 모든 게 다 밉고 싫어져서 당신 생각이 더 간절한 날이었어.
그래서 일꺼야.
나는
세상이
미웠고,
외로웠으며
슬펐어.
결국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