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0일이 훨씬 지났다. 이제는 조금씩 무뎌질 때도 되었는데 어째 시간이 갈수록 현실감은 떨어지고 더 고통스러워질까? 숨을 쉬는 모든 순간이.
그가 생각나거나 안타깝거나 미련이 남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의미가 없음을 나도 안다. 이유도 없이 그냥 슬프다. 나는 현실 세계에서 떨어져 나간 다른 생명체 같다. 공기를 부유하며 다니는 쓸모없는 이물질 같다. 그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고 모임을 하고 웃고 밥 먹고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매 순간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나는 이미 남편과 함께 죽었나 보다. 깨방정을 떨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쫓아다니던 내가 죽었다.
눈물을 참아야 하는 나도 싫고, 웃고 떠들다가 이래도 되나 싶은 죄책감이 드는 나도 싫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여간 불편하고 힘든 게 아닌데 살아야 하고 견뎌야 한다는 마음으로 억지로 끌려나가 앉아 있는 내가 싫다.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는데 다들 '뭐 먹을래? 어디 갈까? 뭐 할까?' 물을 때면 곤란하다. 아무렇게나 옜다 이거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대답을 하고 계속될 질문을 모면하기도 한다.
나는 이미 죽었다. 마음이 회복되지 못하니 선고만 받지 못한 사망 상태이다. 남편이 21시간 만에 숨이 멈췄다면 나는 정확히 53일 만에 숨이 끊어졌다. 그런 느낌이 든다. 오늘은 완전히 생경하게 세상이 보인다. 공중 부양하듯 붕 뜬 상태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느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내가 미사에 참례하고 운전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이 자꾸 내게 인사를 한다. 나는 분명 죽어 공중에서 부유 중인데 그들이 아는 체를 한다.
아차, 나의 육체는 아직 심장이 뛰고 있었구나. 죽은 건 영혼이었구나. 육체는 영혼 없이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경치를 눈에 담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오늘 비로소 죽음을 맞은 내 영혼이 내일은 살아날 수 있을까? 모레는? 아니면 글피에는?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아! 그렇다면 사실 남편은 육체만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까? 내가 울 때 옆에서 조용히 함께 슬퍼해 주고 있을까? 육체가 죽은 남편과 영혼이 죽은 아내는 만날 수 없겠지? 평행선으로 우리는 또 그렇게 나란히 가는 걸까? 당신을 느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다면 죽은 내 영혼이 조금은 회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은 육체와는 다를 테니 말이다.
내가 지금 무슨 헛소리냐고?
턱도 없는 소리로 죽은 나를 위로하는 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