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네비게이션

by 라이트리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도

네비게이션은 화를 내지 않는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그 한마디면 끝이다.

누가 잘못했는지도 묻지 않고,

왜 그렇게 돌았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그냥 다시 길을 계산하고,

새로운 방향을 안내한다.


가끔은 그 목소리가

너무 부럽다.


인생에서 길을 잘못 들었을 때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으니까.


“왜 그 선택을 했어?”

“그때 다른 길이 있었잖아.”

“조금만 더 참았으면 됐잖아.”


사람들은 결과를 놓고 말한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때의 나름대로 최선이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를 때가 많다.


한 번 엇나간 선택이

몇 년을 돌아가게 만들기도 하고,

조금 늦은 결정이

마치 실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네비게이션처럼 차분하지 않다.


“너 또 틀렸어.”

“왜 이렇게 방향 감각이 없어?”

“남들은 다 잘 가는데.”


그 목소리가 제일 시끄럽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네비게이션도 처음부터 완벽하진 않다.

교통 체증이 생기면 바뀌고,

공사가 있으면 우회하고,

때로는 아예 새로운 길을 안내한다.


중요한 건

틀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시 찾는다는 태도 아닐까.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이 말은 사실

“당신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와

비슷한 뜻인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내 삶에도 그 음성을 적용해보려고 한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느껴질 때

“다시 계산해보자.”

관계가 어긋났을 때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몰라.”

계획이 틀어졌을 때

“지금 위치에서 다시 시작하면 돼.”


생각보다

우리는 자주 길을 틀린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또 자주

제자리에서 다시 출발한다.


예전엔

한 번 틀리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한 번 틀린 건

단지 새로운 경로가 시작됐다는 신호일 뿐이라는 걸.


네비게이션은

목적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중간에 몇 번을 돌아도

계속 목적지를 향해 계산한다.


인생도 어쩌면

그럴지 모른다.


내가 포기하지만 않으면

어딘가에서 계속

경로를 다시 찾고 있을지도.


그러니까 오늘

조금 돌아가더라도 괜찮다.

잠깐 길을 놓쳤더라도 괜찮다.

내 안에서

조용히 말해보자.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발을 옮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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