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카페어니언, 젠틀몬스터 /2016. 12. 13.
유럽에서는 오래된 건축물을 남겨두고 고쳐가면서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익숙한 건축 문화입니다. 파사드(건물의 정면을 지칭하는 용어)만 남겨놓고 내부를 다시 짓는 모습이 마치 사과껍질은 남겨두고 속을 오렌지로 바꾸는 것과 같다는 생각에 재미있게 구경한 기억이 있는데요. 버려진 공간을 활용하여 새롭게 재창조하는 활동은 재생건축, 도시재생 등의 개념의 디자인 분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 재생 활동은 그 자체만으로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는데요. 성공적인 공간 재생을 통해 흉물로 버림받던 지역이 관광명소가 되고, 잊히던 브랜드가 새롭고 참신한 이미지로 쇄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성수동 카페어니언과 젠틀몬스터의 사례로 공간재생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9월 오픈한 성수동의 카페어니언, 요즘 SNS를 도배하는 가장 핫 한 공간 중의 하나입니다. 70년대 지어진 후 약 50여년 동안 슈퍼, 식당, 가정집 등을 거쳐 불과 얼마 전까지 금속부품공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힙스터들이 찾아가는 성수동 카페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이 공간의 특별함은 과거의 기억을 부수거나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들어내면서 현대적 소재를 덧붙여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준공업지역의 분위기 속에서 얼핏 보면 공장으로 지나칠 수 있는 곳에 있는 성수동 카페어니언, 신일금속이라는 글자도 그대로 살려져 있습니다.
공간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증축과 보수가 이루어진 만큼, 새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독특한 구조는 재생공간이 가지는 대표적인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카운터 등 메인 공간이 보이며, 이 공간은 자연스럽게 마당과 같은 중앙의 정원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정원을 지나 또 다른 건물로 들어갈 수 있죠. 정원을 중심으로 완전히 분리된 듯 보이는 공간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독특하게도 옥상을 통해서 모든 건물이 연결됩니다. 그래서 방문객은 마치 숨바꼭질하듯 숨은 공간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된 타일과 허물어진 벽과 가구에 쓰인 메탈의 조합으로 자칫 거칠고 차가운 공간으로만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을 중정에 아무렇게나 자란듯한 식물이 따뜻함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카페어니언은 오픈 이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늘 사람이 꽉 찬다고 합니다. 독특한 스토리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재생공간의 사례이자 성수동의 대표 핫 플레이스인 대림창고와 더불어, 카페어니언과 같은 공간들이 삭막한 이미지의 준공업지역을 새롭고 독특한 문화구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대표 관광 지구인 북촌한옥마을 옆길을 걷다 보면 목욕탕이라는 큰 간판이 눈에 띕니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에 꼭 하나씩은 있던 대중목욕탕을 떠올리게 하는 그곳은 뜻밖에도 선글라스를 판매하는 상업 공간인데요. 이 생경한 조합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 출처 : 젠틀몬스터 공식 홈페이지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1969년 만들어진 목욕탕을 활용해 지난해 5월 계동에 ‘배스 하우스(bath house)‘라는 쇼룸을 오픈 하였습니다.
중앙탕은 1969년 문을 연 상용 목용탕으로, 1968년까지 중앙고 운동부의 샤워실로 사용된 공간을 개조한 것이다. 남겨진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이다. 기존에 자리한 목욕탕의 Origin을 살리고 브랜드의 정서를 담아 창조된 보존의 개념을 재헌하고자 한다. – 젠틀몬스터 설명 발췌
공간의 장소성·역사성을 그대로 둔 채로 상업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는 젠틀몬스터 Bath House는 그 취지에 맞게 여기가 기존에 목욕탕이었다는 것을 과감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벽체는 타일을 떼어난 흔적을 그대로 유지하여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하였으며, 1층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통로는 예전의 건식사우나 요소를 그대로 이용하고 하고 있습니다.
▲ 출처 : 젠틀몬스터 공식 홈페이지
대중목욕탕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지금은 멋진 선글라스들이 놓인 이곳이 과거에 어떤 곳이었는지 상상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또한 내부에 목욕을 주제로 한 설치미술을 배치하여 단순한 상업공간이 아닌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요. 이러한 전략들은 젠틀몬스터의 목욕탕 쇼룸을 단순한 브랜드 상업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오브제나 설치작품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목욕탕 쇼룸은 젠틀몬스터의 과감하고 혁신적이면서 참신한 브랜드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브랜딩 사례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 출처 : 젠틀몬스터 공식 홈페이지
목욕탕을 데울 때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창조한 설치작품 ‘TIME TRANSFORMATION’
재생 공간이 인기를 끄는 요인은 새로운 스토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공간에 묻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단순히 그 공간을 찾는 목적인 물건을 산다든지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행위를 떠나,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느끼고 찾아볼 수 있는 재미를 재생공간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디자인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공간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재생하는 게 훨씬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작업입니다. 기존 벽이나 구조를 얼마나 남길지, 남아있는 요소들이 위험하지 않을지, 현대적인 재료들이 이질감이 없을지, 끊임없이 판단해야 하기에 과정 또한 몇 배로 어렵고 힘든 작업이죠. 그런데도 최근 재생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공간을 다시 살려 재창조함에서 오는 독특하고 새로운 감성의 콘텐츠가 가지는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뉴욕에서는 하이라인파크에 이어 또 다른 도시 재생 공원인 로우라인파크(폐쇄된 지하철로를 이용한 지하 공원)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대대적인 이슈가 되는 잘 만들어진 재생공간을 만나지 않더라도 가끔은 내가 지금 있는 장소가 과거에 어땠을지,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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