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14.
우연히 정말 마음에 드는 공간을 만났을 때, 이 공간을 만든 사람에 대해 궁금해 본 적이 있나요? 유명 디자이너의 상표가 프리미엄 레이블로 통용되는 패션계나 아티스트의 이름이 곧 하나의 ICON이 되는 음악이나 예술계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건축&인테리어에 있어서도 그 공간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막강할 때가 많습니다.
과거에 비해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이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공간을 찾아가 보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 아이템은 스터디를 통해 나의 집, 나의 사무실에 모방해보기도 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관심과 온라인스토어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매장들이 판매보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상징화하고 실제 체험을 통한 잠재적 충성 고객을 만드는 도구로서의 기능이 강화되는 요즘, 많은 브랜드가 스페이스 마케팅 관점에서 공간 디자이너와의 Collaboration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와 협업한 브랜드 공간들을 많이 만나 볼 수 있는데요. 그중 눈에 띄는 공간 몇 군데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지난해 봄 오픈 한 청담동의 설화수 스토어는 국내에서 단일 뷰티 브랜드 플래그십 매장 가운데 최대 규모로 오픈하자마자 그 독특성으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곳은 최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국의 디자이너 듀오 네리&후(Neri&Hu)가 전체 건축 및 실내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네리&후는 건물 전체를 브랜드 전시관처럼 만들어 비록 직접적인 구매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스토어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켜 향후 잠재적인 소비자로 만들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외관에서 얼핏 보이는 황금색 선들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곳은, 아시아 뷰티를 밝히는 등불을 의미하는 ‘랜턴’이 전체 공간을 이루는 컨셉으로 외관부터 내부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디테일로 높은 디자인적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하 1층부터 5층 루프탑까지, 스파, 갤러리, 세미나, VIP 라운지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층은 컨셉을 형상화한 황금빛 브라스(brass) 구조물로 둘러싸여 각기 다른 테마가 담긴 층별 공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아우릅니다.
▲ 1층 Heritage Room: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Heritage를 공간을 통해 느끼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 1F-2F 연결 Stage: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 네리&후가 선별하여 직접 디렉팅했다고 합니다. 공간을 구성하는 디테일이 하나의 컨셉 아래 정교하게 짜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2F 카운셀링 및 기프트 존
설화수에서 이야기하는 이 공간의 목적은, 소비자가 브랜드의 철학을 담은 건축적인 공간을 경험(journey)함으로써 이곳을 떠날 때 오래도록 기억(Memory) 속에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은 과거부터 유명 건축가나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한 마케팅을 지속 진행해왔습니다. 이번에는 설화수의 주요 타깃 층인 중국 고객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중국 출신의 대표적인 디자이너에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를 맡기지 않았겠느냐는 생각도 드는데요. 디자이너의 의견을 존중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모습이 결과적으로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도 한층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tiyw2AyYtU
▲ #네리&후가 직접 소개하는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 디자인 스토리 영상 (출처: 설화수 공식 페이지)
*네리&후(Neri&Hu) 디자인 스튜디오
린돈 네리(Lyndon Neri)와 로사나 후(Rossana Hu) 부부로 이루어진 네리&후 스튜디오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중 하나입니다. 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그들이 디자인함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3가지 주제는 1) 역사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 창출, 2)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살리는 것, 3) 공공장소와 개인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흔히 '플래그십'은 한 브랜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제품을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그 연장선으로 '플래그십 스토어' 역시 기업이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를 공간을 통해 담아내는 즉, 브랜드 대표 공간을 지칭할 때 사용되곤 하는데요. 럭셔리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즐비한 청담동 사거리에서 외형부터 단연 돋보이는 건물이 있습니다. 바로 House of Dior입니다.
약 5년간의 꼼꼼한 준비를 통해 2015년 탄생한 House of Dior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Christian De Portzamparc)이 건축을 담당하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의 리테일 디자인 전문가인 피터마리노(Peter Marino)가 인테리어와 전체적인 아트워크 디스플레이를 맡아 오픈 때부터 화제가 된 곳입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House of Dior은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층마다 다양한 Art piece들과 함께 건물 전체를 하나의 갤러리를 만들어, 방문객들이 디올의 브랜드 정신을 복합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합니다.
▲ House of Dior 외관: 많은 패션 명품 브랜드들 속에서도 디올은 ‘변치 않는 우아함’이라는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만들고 있는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외관은 상자 속에서 꺼내는 드레스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고 합니다.
▲ 1F_외부의 곡선을 그대로 살린 내부 디자인(패브릭 장식을 수작업으로 제작)과 작가 ‘이불’의 샹들리에
▲ 대리석을 가공한 3F 엘리베이터 홀 마감: 피터 마리노는 재료의 Texture를 살리는 인테리어로 유명한데요. 디올이 추구하는 우아함을 시각화하기 위해 대리석, 알루미늄, 크리스털, 아트 월 작품 등 고급 재료들을 적재적소에 적용하여 럭셔리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 5층에서 운영하는 Dior Café : 5층에 위치한 카페는 한때 청담의 it place로 떠올라 자연스럽게 플래그십 스토어의 방문을 유도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House of Dior이 인상 깊은 점은 프로모터들이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에게 건물의 디자인을 같이 설명하며, 디올이 이 공간을 얼마나 세심하게 공들여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데요. 이러한 운영 전략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프리미엄을 전달하여 방문한 고객들에게 확실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었습니다. 직접 경험한 ‘체험’을 중시하고,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 나를 동일시하는 요즘 세대의 니즈를 생각할 때, 오프라인 매장만큼 브랜드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내가 당장은 구매하지 못하더라도, 현재 경험한 ‘체험’이 얼마나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이는 향후 그 브랜드의 잠재적 고객을 확보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디올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디올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스페이스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볼 수 있는데요. 성공적인 스페이스 마케팅을 위해 공간 디자인과 콘텐츠, 운영이 얼마나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피터마리노(Peter Marino)
내부 인테리어 및 디자인 디렉팅를 총괄한 피터 마리노는 제냐, 루이비통, 샤넬, 발렌티노 등 많은 럭셔리 브랜드의 스토어 디자인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그는 평소 “난 기술자이기보다는 예술가 관점에서 디자인에 접근하고 있고 하나의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공간에서의 예술적 요소를 중요시 여긴다고 합니다.
현대카드는 다양한 문화 공간 창출을 통한 스페이스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은 트래블 라이브러리인데요. 몇 년 전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를 처음 방문하였을 때, 여기를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누구인지 궁금해 찾아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곳은 상업 공간 전문가 카타야마 마사미치가 이끄는 일본 디자인 스튜디오 원더월에서 현대카드와 함께 공간 디자인을 진행했습니다. 원더월은 유니클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지도를 높였고, 최근 뉴욕의 삼성 837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디자인 컨셉은 ‘Stock of Curiosity(호기심으로 가득 찬 상자)’로, 여행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시간과 영감의 공간’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삼여 년 전 처음 방문한 이 공간이 특별했던 이유는 카드라는 매체와 나의 개인적 경험에서 특별한 파트라 할 수 있는 여행을 이 공간을 통해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공간 컨셉인 ‘Stock of curiosity’는 여행이라는 code를 통해 경험과 감성의 이미지를 확장하고자 한 브랜드의 지향점을 영리하게 풀어낼 수 있는 최적화된 컨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저만 해도 현대카드라는 브랜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곳이었으니깐요.
▲ 트래블 라이브러리 전경(왼쪽), 1층 내부(오른쪽 2컷) 출처: wonder-wall 공식 홈페이지
▲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2층 출처: wonder-wall 공식 홈페이지
블링블링한 공간이 많은 청담동에서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입구를 지나면 전체적으로 따뜻한 공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1층의 café에서는 따뜻한 커피와 함께 다양한 여행 서적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그 옆을 지나면 여행이라는 테마 아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공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이 공간에 들어서면,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라는 코드에 집중하게 만드는 마법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온라인 스토어의 확장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론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가지게 되었지만, 오히려 오프라인 매장이 가지는 현실의 체험과 경험이라는 도구는 다른 어떤 방식보다 강력한 브랜드와 소비자와의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 철학과 가치 전달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영리해진 소비자만큼 브랜드도 영리하게 다가가야 하겠죠? 그런 의미에서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참신한 접근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만난 경험과 체험이 생생하게 기억되니 말입니다. 또한, 이 경험은 전체적인 브랜드의 기획력을 실제 공간으로 구현한 디자이너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더월(Wonderwall _ 카타야마 마사미치) 디자인 스튜디오
음악을 좋아해서 스티비 원더의 Wonder와 60년대 제인 버킨이 나오는 영화 Wonderwall에서 영감을 받고 지었다는 Wonderwall은 철저한 클라이언트 중심의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장소와 브랜드에 따라 클라이언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그에 맞는 디자인을 진행하고자 하며,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유니클로, 나이키, 렉서스 등 스토어 디자인 진행)를 통해 나타내고 있습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는 다른 디자인 영역보다도 지속성이 큰 분야입니다. 막대한 예산과 오랜 시간을 걸쳐 만들어지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인 만큼 잘 만들어진 공간은 쉽게 잊히지 않고, 그만큼 브랜드 화제성이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기업이 브랜드 철학을 잘 표현해줄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검토하고 추진하려고 하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유명 디자이너에게 의뢰를 맡기고도 디자이너의 개성과 감각을 존중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이끌어가려는 기업들도 있는데요. 어떠한 분야에서든지 좋은 결과물은 서로가 존중하고 협업할 때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나온 진정성은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사랑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될 것입니다.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옷을 찾아 입고 팬이 되는 것처럼, 앞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공간을 찾아보고 체험해 보는 재미도 느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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