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8.
과거에는 사람들이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디를 갈지 (What do you want to eat/buy?)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는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어디를 갈지를 먼저 고민 (What do you want to ‘do’?)합니다. 공간에서 일어나는 활동, 행위, 체험과 경험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gen Z)라는 새로운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공간 디자인에서 일어나는 변화도 더욱더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변화와 함께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과 공간 개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 면에서 체감합니다. 이에 따라 개성 강한 소비자의 감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시작되었는데요. 발 빠른 이들은 이미 시장 개척을 선도하면서, 취향을 저격하는 공간 창조에 힘을 싣고 있죠. 오늘은 공간에서 ‘무엇을 할지’를 제안해 주는 복합문화공간을 만나보겠습니다. 놀이와 취향을 담아낸 복합문화공간에서 여러분의 감성을 충전해보세요.
연남동과 연희동 지역 소상공인 및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재미난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작년 10월에 오픈한 연남장인데요.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규모의 오래된 건물을 특색 있게 리모델링한 연남장은 카페, 레스토랑, 코워킹 오피스, 스튜디오, 편집숍으로 이루어진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과거 유리 공장 및 택시 회사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연남장 건물 외관
공간 네이밍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듯이, 연남장은 기획부터 ‘장’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에 초점을 맞춰서 콘텐츠를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지역 커뮤니티의 역할을 강조하는 동시에, 콘텐츠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달라는 것을 층별로 담아내고자 한 것인데요.
먼저 지하에는 작가, 뮤지션, 디자이너 등 창작자들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열린 문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층으로 올라가면 방문객들이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라운지’가 있으며, 2~3층에는 코워킹 오피스와 같이 창작자들의 작업 공간이 주를 이룹니다. 특히 3층에 위치한 스튜디오 공간은 창작자를 위한 주거 공간으로도 제공되고 있죠. 창작자 및 방문객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유도하는 1층 공간은 ‘살롱’ 문화에서 착안한 컨셉으로 구성되었는데요. 만남의 장소이자 전시, 공연, 강연 등 콘텐츠 활동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재생 공간이 가지는 인테리어적인 매력과 더불어, 방문객의 대화와 토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데요. 다양한 공연들이 일어나는 중심점으로 활용되며, 오픈 당시부터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운지이자 콘텐츠 활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1층 살롱 (출처: 어반플레이 제공)
▲연남장 2층 코워킹 오피스 전경 (출처: 어반플레이 제공)
연남장은 ‘아는동네 매거진’, ‘연남방앗간’ 등의 로컬 콘텐츠를 기반으로 도서, 이벤트, 공간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도시 콘텐츠 기업 ‘어반플레이’에서 기획한 공간입니다. ‘도시에도 OS가 필요하다’는 슬로건 아래 꾸준히 재미난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곳이죠.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적 디자인보다, 경험이 담긴 스토리 중심의 소프트웨어적 프로그램이 나날이 중요해지는 요즘, 그들이 기획한 콘텐츠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공유 문화를 바탕으로 지역 주민들과의 상생을 생각한 연남장은 공간을 매개로 지역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곳입니다. 연희동 218-15번지라는 행정학적 정체성이 아닌, ‘로컬 크리에이터의 놀이터’라는 수식어로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연남장이 공간 콘텐츠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내가 살아가는 동네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번 방문하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유동인구로 단연 독보적인 수치를 자랑하는 명동, 을지로에서도 사람들이 꼭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어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옛 부영 빌딩 지하를 감각적으로 리모델링하여 새롭게 선보인 ‘디스트릭트C 아크앤북’인데요. 서점을 중심으로 엄선된 핫한 맛집들이 둘러싸여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책과 음식, 갤러리와 편집숍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인 것이죠. 서점을 중심으로 형성된 만큼, 책이 문화의 매개가 되는 리딩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레트로 감성의 출입구를 지나면, 가장 먼저 공간의 핵심인 큐레이팅 서점 아크앤북이 눈에 들어옵니다.
▲감성과 지성을 아우르는 복합문화공간 디스트릭트C_아크앤북 외관과 내부
큐레이팅 서점 아크앤북은 ‘위켄드(Weekend)’, ‘데일리(Daily)’, ‘스타일(Style)’,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의 네 가지 테마 아래, 추천 도서와 라이스프타일 제품을 함께 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드 공간을 활용하여 엄선된 F&B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요. 레스토랑과 서점의 경계를 허물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매력적인 문화 공간을 형성합니다. 단순히 책을 구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점 속에서 사람들과 즐기고 놀며 함께하고 싶은 방문객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가지 카테고리로 디스플레이된 추천 도서(좌)와 체험을 유도하는 공간(우)
▲천장을 책으로 채운 아치형 통로(좌)와 스토리를 입힌 도서 검색대(우)는 많은 인스타그래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에는 셀렉트 리빙 편집숍 ‘띵굴(Thingool)시장’의 첫 번째 오프라인 공간이 있는데요. 띵굴시장은 대표적인 생활 편집숍으로 이미 온라인상에서 주부들과 리빙 애호가의 입소문을 탄 띵굴마님이 선보인 브랜드입니다. 띵굴시장은 단순히 판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셀러와 브랜드의 스토리를 알리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는데요. 특유의 스토리와 콘텐츠로 시작 3년여 만에 셀러들에게는 꼭 참여하고 싶은, 소비자에게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켓이 되었습니다.
▲사이드 공간 위주로 배치된 엄선된 맛집과 편집숍
디스트릭트C를 기획한 공간 스타트업 ‘OTD’는 오버더디쉬, 파워플랜트, 디스트릭트Y, 마켓로거스 등의 맛집 편집숍을 성공적으로 선보이며, 국내에 셀렉트 다이닝을 알린 곳인데요. 최근에는 성수동의 지역적 특색을 살려, 공유 공장을 컨셉으로 한 또 다른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을 오픈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OTD에서 공간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먼저 고민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용자가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공간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공간에서 즐기고 싶어 하는지 등이 기획의 밑바탕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철학이 연이어 성공적인 공간을 만든 비결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역성을 살려 공유공장을 도입, 소규모 브랜드 상생을 도모한 복합문화공간 ‘성수연방’
복합문화공간은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간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이 점차 세분화되는 만큼, 다양한 콘텐츠와 이야기로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공간이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 공간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매력을 살려, 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게 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문화역서울 284’인데요. 이곳은 KTX 개통 이후 사용되지 않다가 2012년 4월 과거의 모습을 복원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새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시를 중심으로 공연, 워크숍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재단장하였죠. 과거 식민지 시대의 관문에서 문화와 예술의 플랫폼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웅장한 돔 형태와 아치로 유럽식 건축물을 선보이는 외관. ‘284’는 구 역사가 사적 제284호의 국가지정문화재임을 의미한다
지금의 서울역이 경성역으로 불리던 시절, 역사의 지하 1층에는 사무실이 있었으며, 1층에는 대합실과 귀빈실이 자리했습니다. 또한, 2층에는 이발소와 같은 편의시설과 소설가 이상이 꿈의 공간으로 묘사했던 고급 레스토랑 ‘그릴’이 있었는데요. 복원 이후, 현재 1층은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메인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릴 레스토랑이 있던 2층에서는 공연과 세미나, 워크숍 등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한편, 문화역서울 284는 무료 기획 전시를 비롯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 투어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문화역서울 284의 컨셉에 부합하는 전시를 기획하고, 그에 따른 예술 작품을 일정 기간 선보이며 예술과 시민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더불어 다양한 행사와 공연 등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예술 플랫폼의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커피 문화에 대한 전시가 열려 많은 화제가 되었는데요. 경성역 시절의 근대부터 60, 70년대 청년 문화의 구심점이었던 다방과 커피 문화사를 통해 사회를 읽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전시로, 문화역서울 284가 가지고 있는 클래식한 공간과 커피를 새롭게 해석한 작가들의 콘텐츠가 어울려져 방문객들에게 재미난 경험을 제공해주었습니다. 세심하게 기획된 전시와 함께 옛 근대 문화의 흔적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살펴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릴게요.
▲석조 건축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중앙홀(좌)과 메인 전시장으로 활용되는 3등 대합실(우)
▲방문객을 위한 포토존으로 활용되는 귀빈실(좌)과 현재 전시, 워크숍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 그릴 (우)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하는 복합문화공간의 인기를 한때의 트렌드로만 볼 수는 없을 텐데요.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더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는 목적으로만 특정 공간을 방문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공간 기획자들의 시각까지도 변화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부동산 개발에서 이제 입지 조건과 상권 분석만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들 수 있죠. 이제 성공하는 공간을 개발하고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분석, 라이프에 대한 분석이 필수 요건이 되었습니다. 부동산개발, 건축, 디자인, 시공 등의 각 전문 영역들이 개별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했던 과거와 달리, 공간 기반 전문 영역들의 경계가 더욱더 모호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공간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짐에 따라, 특정 영역에 치우치지 않고 공간을 개발하는 멀티 전문가의 필요성도 함께 커지는 것입니다. 이용자의 취향과 감성을 이해하여야 성공이 가능한 시대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가까운 사람과 서로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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