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 와서 찾은 첫 번째, 행복의 실마리
우연히 책 한 권을 마주했다.
'불안과 우울에서 서로 기대며 사는 법'이라는 소주제가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마치 지금의 나를 정확히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책의 주인에게 잠깐 빌려가도 되겠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그 이후 그 책을 돌려줄 기회는 없었다.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다시 책을 돌려주고 싶다.
책은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두 번째 챕터를 읽고 나서였을까. 그쯤에서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지금의 학교를 찾아보고 있었다. 생각이 결정을 앞지른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3주 정도의 단기 코스를 알아보았지만, 여름에만 운영되는 프로그램이었고 내가 갈 수 있는 1월에는 6개월 정규 과정만 신청할 수 있었다. 붙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신청서를 썼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덴마크에 온 지 어느덧 3주가 지났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은 늘 이렇게 조용히 도착한다.
folk high school은 덴마크의 비정규 교육시설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gap year를 갖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다. 잠시 멈추어 시선을 넓히고, 경험을 쌓으며 자신이 원하는 삶과 배움을 찾아가는 시간. 그런 리듬을 배워보지 못한 나에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다 잠시 멈춰 이곳에 와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이곳에는 학점도 시험도 없다. 기본적인 출석과 더불어 사는 삶의 규칙만 지킨다면, 누구나 배움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배움이 경쟁이 아니라 호흡이 되는 곳, 이곳을 설명하는 가장 가까운 말 같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끝내 졸업하지는 못했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알아가기보다는, 지금 돌이켜보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더불어 사는 법을 그 시절에는 더 배웠어야 했던 것 같다. 단단하지 못한 기둥 위에 낯선 언어와 공부를 감당하기에는 스무 살의 나는 너무 어리고 나약했다.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선택했던 컴퓨터공학이라는 전공과 나는 끝내 같은 결을 찾지 못했고, 그렇게 대학 생활은 완성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어떤 선택은 틀렸다기보다, 아직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배움에 대한 갈망이 마음 한편에 늘 남아 있었던 것이.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고독한 선택이었고, 그 고독 덕분에 지금의 길을 찾을 수 있었지만, 완성되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삶에는 끝내 제출하지 못한 과제들이 있다. 이곳은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나 자신의 선택과 힘으로 찾아온 36살의 첫 학교라는 점에서 이곳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세 가지의 바람을 품고 이곳으로 왔다. 행복을 찾고 싶어서,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싶어서, 그리고 덴마크에 살아보고 싶어서. 막상 도착하고 보니, 그중 가장 컸던 건 덴마크에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머지 두 가지는 어쩌면 그 마음에 붙인 또 다른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ㅎㅎ 인생은 종종 이렇게 솔직한 마음을 뒤늦게 들켜버린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덴마크.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그리고 빠르게 그 답의 실마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행복은 거창한 상태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태도에 가깝다는 것을.
매주 네 번, 전교생이 함께 모이는 fellowship 시간이 있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하루의 공지사항을 나누고,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 늘 같은 문장이 붙어 있다. 덴마크에 온 첫날부터 유독 마음에 남았던 말.
“Family is everything.”
피를 나눈 가족도 있고, 내가 선택한 가족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갈망이 큰 사람이었다. 하루의 일과를 온전히 나누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그려가며, 행복과 슬픔을 나란히 나누는 삶. 팀이 되어 살아가는 그 형태를 오래도록 꿈꿔왔지만, 언제나 잡힐 듯 말 듯한 경계에서 놓쳐왔다. 가족은 나에게 가장 따뜻한 단어이자, 가장 아픈 질문이었다.
그 문장이 당장 나에게 어떤 경험을 가져다준 것은 아직 없다.
두 달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정해 인생 첫 덴마크에 도착했고, 지난 3주 동안 나는 끊임없는 외로움과 날 것의 나를 매일 마주하고 있다. 반성하고, 이곳에서도 실수를 반복하며, 그럼에도 그런 나와 다시 마주한다. 그런데도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내가 그렇게 찾고 싶었던 행복의 실마리는, 우선 ‘가족’이라는 것. 어쩌면 나는 평생 그 답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온전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면, 아마 평생 내가 꿈꾸는 가족은 상상 속에만 머무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덴마크에 머무는 이 시간이, 내가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올바른 생각, 그리고 안온한 평화를 품은 사람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삶은 준비가 끝난 사람에게 시작되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