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시대, 아날로그가 남긴 온기
요즘 나는 바이브 코딩에 한창이다.
클로드코드로 스크립트를 짜고, 안티그래비티로 흐름을 붙여가며
업무를 자동화, 시각화하는 프로젝트들을
연달아하고 있다.
머릿속은 코드와 프롬프트로 가득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빨리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하다.
배우는 속도는 빨라지는데,
내가 만드는 건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완성은 되는데 쌓이지 않는다.
달릴수록 거리감은 좁혀지지 않는다.
내가 뛰는 게 아니라, 땅이 같이 움직이는 기분.
그때 알고리즘이 노래 하나를 보냈다.
조성모의 〈To Heaven〉.
손이 멈췄다.
그 시절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전부 뿌옇다.
그런데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기억이 선명해졌다.
냄새가 나고 공기가 느껴졌다.
그때의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까지.
음악은 정보를 저장하는 게 아니라
감각을 저장한다.
그래서 노래는 기억을 '꺼내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을 통째로 '불러온다'.
그 노래 앞에서 잠깐,
잊고 있던 내가 보였다.
풋풋했고 서정적이었다.
무언가에 쉽게 설레고 쉽게 울컥했다.
효율을 계산하지 않았고,
최신 버전을 따라잡으려 하지 않았고,
좋은 것들에 오래 머물렀다.
요즘의 나는 매일 달린다.
어제 배운 것이 오늘 구식이 되는 세계에서,
업데이트를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아서.
그런데 달릴수록 외롭다.
그리고 삭막하다.
AI와 함께하는 작업은 빠르고 효율적이다.
클로드코드로 초안을 만들고,
프롬프트를 다듬고, 결과물을 확인하고, 다시 수정한다.
혼자서도 많은 것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쌓인다'는 감각이 약하다.
일은 돌아가는데 마음은 비어 있다.
속도가 없었기에 온기가 남았다.
기다리며 쌓인 것들은 오래간다.
속도가 없는 시간이 꼭 비효율은 아니다.
그 안에는 맥락이 스미고,
사람의 표정이 남고,
책임이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어떤 결과물은 오래 살아남는다.
그 시절이 편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불편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얻으려면
라디오 앞에 앉아 녹음 버튼을 기다려야 했다.
원하는 순간에 들을 수 없었다.
흘러오면 받아야 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그 시절엔 모두가 같은 속도로 기다렸기 때문이다.
뒤처진다는 감각이 없었다.
기다림은 기본값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모든 것이 즉시 온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소비하지만 축적되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흘려보낸 그 노래만이
유일하게 '쌓여 있던 것'처럼 느껴졌다.
마을버스는 천천히 골목을 돌았다.
AI도, 프로젝트도,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잠깐 버스 바깥에 두었다.
오늘 밤만큼은
효율 없이 오래 머물고,
결과 없이 그냥 느끼고,
빠르지 않아도 되는 밤을 살고 싶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
요즘 당신의 일은 끝나기만 하는가 — 쌓이기도 하는가.
그리고 가장 최근에,
아무것도 따라잡으려 하지 않고
그냥 머물렀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오래된 노래 한 곡이
그 순간을 데려다줄 수도 있다.
오늘 밤,
귓속 책갈피 하나를 꺼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