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좋아하는 분에게 추천하는 애니

456명의 절박함, 애니메이션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그리고 있었다


SquidGame3_SpecialTeaser_.jpg



여러분이 〈오징어 게임〉을 본 것은, 사실 애니메이션을 볼 준비가 된 것입니다.




이 말이 낯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드라마를 본 거지,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잠깐, 당신이 〈오징어 게임〉에서 무엇에 반응했는지를 먼저 떠올려보세요.

달고나를 핥던 손의 떨림이었나요. 깐부 할아버지와 기훈이 구슬치기를 하던 그 장면이었나요. 아니면 456명이 쓰러져 가는 동안에도 게임을 멈추지 않는 세상 그 자체였나요.

만약 그것이 단순한 오락적 쾌감이 아니라, 무언가 가슴 깊은 곳을 건드리는 감각이었다면 — 계층의 불평등, 인간의 존엄, 절박함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대와 배신 —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애니메이션이 탐구해온 그 세계의 문 앞에 서 있는 겁니다.

오늘은 그 문을 함께 열어보려 합니다.


첫 번째, 〈카이지〉 — 456명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이야기


151507.jpg

후쿠모토 노부유키 원작 / 1기 2007년, 2기 2011년

〈오징어 게임〉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많은 창작자들이 〈카이지〉를 한국 생존 게임물의 정신적 원류 중 하나로 꼽습니다.

주인공 이토 카이지는 취업도 못 하고, 빚에 쫓기며, 사회의 바닥에서 살아가는 청년입니다. 어느 날 그는 수상한 도박 게임에 초대받습니다. 이기면 빚을 갚고 새 출발을 할 수 있고, 지면 —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잃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도.

〈오징어 게임〉과 〈카이지〉가 공유하는 것은 게임의 형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 인간은 이렇게까지 내몰리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두 작품 모두 게임 자체보다 게임을 설계한 구조, 즉 사회가 어떻게 인간을 소모품으로 만드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카이지가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과 다른 점은, 그가 훨씬 더 처절하다는 것입니다. 기훈에게는 가끔 운이 따랐습니다. 카이지에게는 운조차 시스템이 설계한 함정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카이지를 보다 보면 분노가 다릅니다. 슬픔보다 먼저 오는 것은 분노입니다. 이 구조를 만든 자들에 대한, 그리고 이 구조에 순응하며 살아온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카이지의 유명한 절규, "이건 이상해! 이건 잘못됐어!" — 이 대사 하나가 수백만 명의 시청자를 울렸습니다. 대본에 적힌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속에 있던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1기 26화, 2기 26화. 총 52화지만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습니다.


두 번째, 〈도박묵시록 카이지〉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세계 — 〈라이어 게임〉



e892589850_1.jpg


잠깐 애니메이션을 벗어나서 원작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라이어 게임〉은 마쓰이 유우세이의 만화로, 국내에도 드라마로 리메이크되어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 TV 애니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작품이 한국의 〈오징어 게임〉 탄생에 미친 영향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황동혁 감독 역시 이런 서바이벌 게임 장르의 계보를 의식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계보를 알고 나면, 〈오징어 게임〉이 단독으로 등장한 혁명적 작품이 아니라 수십 년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쌓아온 생존 게임이라는 장르적 토양 위에서 피어난 꽃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토양을 직접 밟아보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적입니다.


세 번째, 〈빈랜드 사가〉 — 복수와 폭력의 끝에서 인간을 묻다


MOnGOuAgea4wKDMQ.jpg

마코토 유키무라 원작 / 2019년

〈오징어 게임〉이 계층의 문제를 다루었다면, 〈빈랜드 사가〉는 인간의 폭력성 그 자체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11세기 바이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아버지를 눈앞에서 잃은 소년 토르핀이 복수를 위해 살인을 반복하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이 게임의 외부에서 고통받았다면, 토르핀은 자기 자신이 폭력의 실행자가 되는 길을 선택합니다.

이 작품이 놀라운 것은, 피 튀기는 전투 장면들 사이에서 조용히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전사에게는 적이 없다." 이 대사는 토르핀의 아버지 토르즈가 남긴 말인데, 이 짧은 문장이 52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이 최후의 생존자가 된 후에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처럼, 〈빈랜드 사가〉의 토르핀도 복수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더욱 공허해집니다. 두 작품은 모두 이렇게 묻습니다. 이기는 것이 정말 이기는 것인가.

시즌 2에서 토르핀이 걷게 되는 길은, 〈오징어 게임〉을 본 후 기훈이 비행기에서 내려 되돌아서던 그 순간과 정확히 같은 감정적 온도를 가집니다. 폭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없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는, 드물게 성숙한 애니메이션입니다.


네 번째, 〈신세계에서〉 — 시스템이 인간을 어떻게 설계하는가

23505.jpg

기시 유스케 원작 / 2012년

이 작품은 덜 알려진 숨겨진 걸작입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의 핵심 공포를 가장 깊이 공유하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합니다.

미래 일본, 초능력이 당연한 세상.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엄격한 시스템 안에서 교육받습니다. 이상한 점은 교육의 목적이 능력의 개발이 아니라, 능력의 통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스템을 벗어나거나 위협하는 존재는 조용히 사라집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VIP들이 게임을 오락으로 즐기는 장면이 섬뜩했다면, 〈신세계에서〉는 그 섬뜩함을 사회 전체로 확장합니다. 게임을 운영하는 주최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사회 그 자체가 게임판이고, 우리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그 규칙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총 25화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처음 5화가 다소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폭로되는 진실들은, 마치 조각조각 흩어진 그림이 한꺼번에 맞춰지는 것처럼 압도적인 충격을 줍니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이 시스템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았다면, 〈신세계에서〉가 그 질문에 가장 진지하게 답하는 작품입니다.


다섯 번째, 〈어클락〉이 아닌 현재 — 〈평화의 왕국〉이 아닌 현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제가 소개한 모든 작품들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카이지〉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빈랜드 사가〉는 복수와 인간성을, 〈신세계에서〉는 사회 시스템의 본질을 각자의 방식으로 파고듭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94개국에서 동시에 공감을 얻었던 이유는, 그것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빚더미에 앉은 사람, 벼랑 끝에 선 사람,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사람 — 이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그 이야기를 수십 년 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라이브 액션보다 더 극단적으로, 더 과감하게, 때로는 더 섬세하게.


마치며 — 문은 이미 열려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한 세 편 중 단 한 편이라도 보게 된다면, 저는 이 글의 목적을 다한 것입니다. 굳이 세 편 모두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당신이 가장 강하게 반응했던 감정이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그것과 가장 닮은 작품부터 시작하세요.

분노가 남았다면 〈카이지〉를, 허무와 성찰이 남았다면 〈빈랜드 사가〉를, 시스템에 대한 공포가 남았다면 〈신세계에서〉를.

애니메이션이 "만화"가 아니라는 것을, 한 편이면 충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글에서는, 〈더 글로리〉의 복수 카타르시스를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표현해왔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넷플릭스 한국 1위부터 10위, 절반이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