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카타르시스, 애니가 더 독하다

문동은이 울었을 때, 가츠와 에렌도 울고 있었다

들어가며 — 우리는 왜 복수극에 열광하는가



2023년 초, 한국의 OTT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더 글로리〉는 파트 1, 파트 2 합산으로 전 세계 비영어권 드라마 시청 시간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전 세계 시청자들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학교폭력 피해자 문동은이 17년의 세월을 갈아 넣어 완성한 복수. 그 서사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어떤 집단적 감정의 방아쇠를 당겼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통쾌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분노가 정화되는 그 이상한 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해소하고 있었다.

그 감정에는 이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 즉 '정화'다. 드라마나 비극을 보며 억눌린 감정이 폭발적으로 해소되는 경험. 그런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한 가지 사실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더 글로리〉가 한국 시청자들의 가슴을 강타하기 수십 년 전, 애니메이션은 이미 그 감정을 훨씬 더 깊고, 더 무겁고, 때로는 더 잔인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지금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복수의 문법, 〈더 글로리〉가 만든 방정식



〈더 글로리〉가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히 "나쁜 놈이 벌을 받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복수극의 문법을 정밀하게 설계했다. 첫째, 가해자들이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보호받는 '특권층'이라는 점. 둘째, 피해자가 단독으로 싸우지 않고 또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한다는 점. 셋째, 복수가 충동적 분노가 아닌 수십 년의 냉철한 설계로 이루어진다는 점. 이 세 가지 요소가 조합되어 시청자들은 문동은에게 단순한 동정이 아닌 철저한 감정 이입을 느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저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무의식적 공명. 그것이 카타르시스의 본질이다.

이 방정식을 이미 수십 년 전에 완성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그 이름은 〈베르세르크〉, 〈진격의 거인〉, 그리고 〈나만이 없는 거리〉다.


첫 번째 — 〈베르세르크〉: 칼날 위에 선 17년의 분노



P000292340.jpg


〈베르세르크〉는 1989년 만화로 시작해 1997년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다크 판타지의 교과서적 작품이다. 주인공 가츠(가트)는 태어나면서부터 전장의 병기로 자란 전사다. 그는 용병단 '매의 단'에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동료와 소속감을 얻는다. 그 중심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그리피스가 있었다. 그런데 그 그리피스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동료들을 악마들의 희생양으로 바쳤다. 수천 명이 살해당하는 '이클립스'의 밤, 가츠는 오른손과 왼쪽 눈을 잃고 살아남는다. 이후 가츠의 생애 전부는 단 하나의 목표로 수렴된다. 그리피스에게 복수하는 것.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17년을 기다렸다면, 가츠는 수십 년을 검 하나만 믿고 걸어간다. 그 여정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가츠 역시 복수를 향해 걷는 동안 괴물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인간의 형태를 가진 갑옷을 입을수록 그는 인간성을 잃어간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 복수를 완성한 뒤에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베르세르크는 복수 자체가 피해자를 완전히 구원하지 못한다는 가혹한 진실을 수십 년에 걸쳐 그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가츠의 거대한 검이 허공을 가를 때 전율한다. 그것은 카타르시스다. 이 세계가 얼마나 불공평하고, 강자가 얼마나 무자비하게 약자를 짓밟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칼날 하나가 주는 해방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1997년판 TV 애니메이션의 황금시대 편은 지금 봐도 명장면의 연속이며, 가츠라는 인물이 왜 전 세계 수백만 팬들의 마음에 살아있는지를 이해하게 해준다.


두 번째 — 〈진격의 거인〉: 거인이 아닌 구조가 적이었다


P001319056.png



〈더 글로리〉가 독특했던 이유 중 하나는 가해자 개인을 넘어 그들을 보호하는 '구조'를 함께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박연진의 부모, 교장, 어른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도 이어지는 권력과 돈의 네트워크. 문동은의 복수는 개인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그 시스템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진격의 거인〉의 에렌 예거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거인에게 어머니를 잃은 에렌은 처음에는 거인이라는 '개체'에 분노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그는 더 거대한 진실과 마주한다. 거인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수백 년간 이어진 정치적 억압과 인종 차별, 그리고 특정 집단에게 가해진 구조적 폭력의 산물이었다. 에렌의 분노가 단순한 복수에서 세계 전체를 향한 '지균화'로 확장되는 순간, 시청자들은 불편한 감정과 마주한다. "나는 에렌에게 공감하는가, 아니면 그를 비판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시청자들은 복수극이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과 씨름하게 된다. 복수는 정의인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인가.

〈더 글로리〉를 보며 "문동은이 너무했다"거나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느꼈던 시청자라면, 〈진격의 거인〉에서 그 불편함이 극한으로 증폭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문동은은 당연한 걸 한 것"이라고 느꼈다면, 에렌의 선택에 전율하면서도 결국 그 끝에서 눈물을 흘리게 된다. 어느 쪽이든, 이 작품은 당신을 흔들어 놓는다.


세 번째 — 〈나만이 없는 거리〉: 복수보다 더 나은 선택



83031.jpg


〈더 글로리〉가 보여준 복수의 또 다른 측면은 "만약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이다. 문동은이 복수를 설계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복수 그 자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그날의 교실로 돌아가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을 테니까.

2016년 방영된 〈나만이 없는 거리(僕だけがいない街)〉는 그 질문에 직접 답하는 애니메이션이다. 만화가 지망생 후지누마 사토루는 과거로 시간이 되돌아가는 '리바이벌'이라는 능력을 갖고 있다. 어느 날 어릴 적 친구가 연쇄 살인마에게 희생될 위기에 처했던 과거로 돌아간 그는, 그 비극을 막기 위해 싸운다. 이 작품이 단순한 타임루프물과 다른 이유는, 복수보다 '구출'을 선택한다는 데 있다. 피해자였던 아이를 복수를 통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 그 발상의 전환이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문동은이 "왜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냐"고 절규했다면, 〈나만이 없는 거리〉는 "내가 그때로 돌아가 너를 구해주겠다"는 약속이다.

12화라는 짧은 분량에 압축된 이 이야기는, 한 회 한 회가 〈더 글로리〉의 한 에피소드만큼 밀도 있게 구성되어 있다. 복수극의 팬이면서도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회복에 더 집중하고 싶은 시청자에게 특히 강력하게 추천한다.


복수극에서 카타르시스가 작동하는 이유



심리학적으로 복수극에서 카타르시스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명확하다. 인간에게는 불공정한 상황에 분노하는 본능이 있고, 그 분노가 해소되지 않을 때 심리적 억압 상태가 지속된다.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의 복수극은 바로 그 억눌린 분노를 대리 해소시켜 준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친 불공평함, 아무도 책임지지 않던 그 장면들이 스크린 속에서 응징받을 때, 뇌는 실제 해소와 유사한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그것이 눈물인지 쾌감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의 정체다.

〈더 글로리〉가, 그리고 이 세 편의 애니메이션이 공통으로 건드리는 것은 결국 하나다. "이 세계는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공정함 앞에서 우리는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가츠가 칼을 들고, 에렌이 거인으로 변하고, 사토루가 과거로 뛰어들고, 문동은이 바둑판을 설계하는 것. 이 모든 행위의 본질은 같다. 침묵을 강요받은 자의 반격이다.


나오며 — 애니메이션이라는 그릇이 담을 수 있는 것



〈더 글로리〉를 보며 "이런 드라마가 또 있을까"라고 생각했다면, 그 답이 이미 오래전부터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 알게 되었으면 한다. 애니메이션은 실사가 담을 수 없는 감정의 밀도를 구현해낸다. 가츠의 거대한 검이 공기를 가르는 그 진동, 에렌이 절규하는 그 표정의 왜곡, 사토루가 어린 시절 친구의 손을 잡는 그 온도. 그것들은 실사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오직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만이 가능한 밀도로 표현된다.

복수를 꿈꾸는 자들의 이야기. 그 뜨거운 감정의 계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징어 게임〉좋아하는 분에게 추천하는 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