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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Nov 24. 2020

독일 | 베를린 2

햇살 가득한 베를린을 만끽하다


2014년 5월



설레는 재회를 한 우리 커플의 베를린 여행 두 번째 날, 다행히 쌀쌀하고 흐렸던 첫째 날과는 달리 해가 쨍하고 뜬 맑은 날입니다.


오늘은 베를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포츠담에 가보기로 해서 기차를 타고 길을 나서봅니다. 베를린에서 왕복으로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멀지 않은 곳이지만, 또 색다른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지요.


상수시 공원에서 햇살 받으며 한 컷

우리가 찾아간 곳은 포츠담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상수시 공원(Sanssouci Park) 인데요, 건물들이 가득한 베를린과 달리 푸릇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날씨가 큰 몫을 해서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어딜 가든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게 해 주었네요.


공원을 돌아다니기 위해 자전거를 대여하고, 지도를 보며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요. 지도를 들고 앞장선 그가 길을 잘못 안내해서 막다른 길을 들게 되어도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상쾌한 숲의 기운이 그저 서로 바라보면서 키득키득거리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곳이었어요. 수년을 함께 해 온 지금은 운전하며 내비게이션을 잘못 봐서 길을 잘못 들면 서로의 탓을 하며 투닥거리는데 말이에요:)


자주 고장나는 수동 네비게이션

이곳저곳 자전거를 타고 앞장서는 그를 따라갑니다. 지나가다가 가보고 싶은 곳이 보이면 ‘이쪽으로도 가보자~!’ 하고 방향을 틀어도 봅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기분에 따라 즐기는 이런 유연함이 자유여행의 참맛 아니겠어요?


저 멀리 궁전을 보고 먼저 앞장서서 가는 나


상수시 궁전에 다다라서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찬찬히 산책을 즐겨봅니다. 건물 사진을 찍으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하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제2외국어로 배웠던 독일어 교재의 표지에 나온 그 궁전이었네요. 노란 벽과 푸른빛이 도는 지붕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독일어 교재 단골 이미지


상수시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근심이 없다는 뜻이라고 해요. 프리드리히 2세가 근심 걱정 없이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장소로 지어서 이곳에서 만큼은 다른 생각은 내려놓고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고 해요.



그 취지에 맞추어 우리 커플도 이번 휴가가 끝나면 다시 장거리 연애로 돌아가야 한다는 걱정은 잠시 내려두고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여유를 즐겨봅니다.


만난 지 이제 Day 2인데 벌써 헤어질 생각을 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물론 우리 둘 다 마음 한편에는 너무 좋은 이 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릴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었지만 괜히 그 마음 들춰보였다가는 슬픈 분위가 조성될까 봐 조용히 마음속에만 담아뒀는지도 모르겠네요.


여기도 저기도 펼쳐지는 푸르고 상쾌한 숲길


상수시 공원은 언젠가 다음에 또 찾아오고 싶은 그런 곳이었어요. 이렇게 낭만적인 곳에서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서 느끼는 여유라니. 정원의 벤치에 앉아 옆에 앉은 그의 팔짱을 끼고 눈 감고 앉아 볼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내려오는 햇살을 느끼는 기분. 어떤 기분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저 멀리 보이는 분수대와 잘 가꿔진 공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게 여유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중천에 떠있던 해가 슬며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돌아가서 자전거를 반납하고, 이 아기자기한 곳을 그냥 떠나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잠시 앉아 맥주나 한잔 하고 가기로 했어요. 독일에서 1일 3 맥주(혹은 그 이상)를 하지 않으면 그건 배신이니까요.


유럽은 그냥 길거리도 참 분위기가 좋다

맥주만 먹기에는 약간 허기가 져서 작은 안주도 같이 시켜서 맥주 한잔, 안주 한입, 그리고 또 맥주 한잔을 무한 반복합니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고 돌아다닌 후 들이키는 시원한 맥주, 맛이 없을 수가 없네요. 다행히 우리 커플은 둘 다 맥주를 참 좋아하는 애주가들이라서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재미를 놓치지 않고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야외 테이블에서 미세먼지 없이 즐기는 비어타임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온 베를린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어 슈프레 강을 따라 걸어가 보기로 합니다.


이름 있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도 이렇게 강을 따라 걸으니 기억에 남는 여러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여행자인 우리 눈에는 참 멋있어 보이고, 여유로워 보입니다. 그들에겐 그저 매일 지나치는 동네 한편 일 뿐이겠지요. 나에게는 이렇게 멋진, 그림 같은 곳인데 말이에요.

슈프레 강을 따라 걷다보면 보이는 풍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친구와 만나기로 한 펍에 도착했습니다. 아직도 친구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또 맥주를 한잔씩 주문합니다. 한 잔씩 비워내고 나니 친구가 드디어 도착했네요.


솔직히 말하면 독일에 있는 동안 맥주는 정말 쉴 새 없이 마셨던 것 같네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취하기는커녕 정신이 더 또렷해져서 또 한잔, 또 한잔... 사랑하는 그, 그리고 오랜 친구와 함께 마시는 맥주는 이야기꽃을 쉴 새 없이 피어나게 합니다.


큰 맥주잔을 들고 한동안 키득키득 포토 타임

시끌시끌한 펍에서 한바탕 수다타임을 갖고 나서는 야경을 즐기러 나가기로 합니다. 친구가 아주 로맨틱한 장소로 데려가 주겠다고 해요.


밤은 늦었지만 건물 여기저기의 조명이 베를린의 밤을 더욱 빛나 보이게 하고, 조금은 차가운 이 공기를 더 상쾌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어느새 찾아 온 베를린의 밤

도시 저 한편으로는 언듯 보면 서울의 남산타워 같아 보이는 베를린 티비 타워가 보입니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타워라고 하는데, 남산 뷰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그다지 올라가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곳이었어요. 그냥 지금 이 야경으로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베를린을 지나가다 마주친 타워 뷰

친구를 따라 도시를 가로질러 가다가 이렇게 전구가 잔뜩 켜져 있는 곳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춤을 추는 것을 구경하며 베를린은 생각과 달리 낭만적인 곳이구나 하고 생각을 해 봅니다.


왠지 메마르고 차가운 곳인 줄 알았더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낭만을 즐기는 뜨거운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네요.


조명을 받아 더 웅장해 보이는 베를리너 돔

드디어 친구가 말한 로맨틱한 장소, 베를리너 돔 입니다. 은은하게 스며 나오는 조명이 비치는 베를리너 돔이 보이는 잔디밭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습니다. 밤이 늦어서인지 잔디에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지만, 그게 뭐 지금 중요한가요.


세 명이서 나란히 앉아 베를리너 돔을 바라봅니다. 어디선가 길거리 뮤지션이 연주하는 이름 모를 악기의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한참을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지나가다 마트에서 산 하리보 젤리를 우물거리고, 어느 순간 우리 손에 들려있던 레드 와인 한병도 홀짝홀짝 돌려 마시기는 했지만요.


내 평생을 함께할 사랑하는 그와, 내 유년시절을 함께 한 사랑하는 친구, 이렇게 나에게 소중한 두 사람.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음에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던 도시, 베를린.


차가운 공기와 그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햇살로 기억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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