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곳에서 여유롭게 시작하기
나는 항상 바쁘게 살아왔다. 대학생이 되기 전 까지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밤낮으로 공부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대학생이 된 후에는 학점 관리에 더해서 이력서를 화려하게 만들어줄 다양한 대외 활동과 토익 고득점을 위한 영어공부를 하느라, 그리고 취업을 한 후에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더 나은 일자리로 이직을 위해서.
인생의 매 순간마다 이뤄내야 할 목표가 있었고, 그곳을 목표로 하고 계속 달려왔는데, 슬프게도 목표지에 다 달았을 때 '휴, 이제는 여기서 좀 쉬어도 될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매 번 목표지에는 다음 목표지가 어딘지 푯말이 적혀있고, 그 방향으로 지금 바로 출발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마음에 가쁜 숨을 또 몰아쉬며 억지로 발걸음을 또 옮겨왔다.
아마 그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쉴 새 없이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했고, 목표를 가지고 바쁘게 살아야 잘 사는 인생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던 내가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나게 된 이유 말이다. 물론 여기서 함정은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숨 쉴 틈 없이 바쁘게 살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이긴 하다. 오죽하면 어떤 친구들은 '너는 이제 좀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지 않아? 너무 너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았으면 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나는 참 운과 기회가 좋았던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열심히 노력해서 하면 어떻게든 뭔가 이루어졌었고, 거기에 동기를 얻어서 계속 앞으로 전진하면서 살아왔었으니까.
그러던 내가, 겉에서 보기엔 그럭저럭 기반을 잘 다지고 살고 있던 내가, 그동안 쌓아온 것을 두고 이제 덴마크로 왔다. 사실 아쉬움보다는 짐작할 수 없는 미래가 조금 설레기도 하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많이 다르겠어하는 괜한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제 나도 조금 쉬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수십 년 직장생활을 한 분들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모습이기도 하겠지만, 입시에 지친 학창 시절과 야근, 업무 스트레스가 가득한 10년간의 회사생활로 나의 몸과 마음은 너무 지쳐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일상. 아침에 억지로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워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밀린 이메일과 답이 없는 프로젝트 걱정에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되는 일상. 느지막이 일어나 햇살 드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바닷가로 숲 속으로 산책을 다녀오고, 빈 벤치에 앉아서 산책하는 개들을 한참 동안 무념무상하게 바라보고 앉아있어도 아무 문제없는 여유로운 일상.
덴마크에 오자마자 나는 여유를 찾았다. 럭셔리하고 특별한 그것이 아니라, 그냥 소소한 행복이 있는, 가만히 있어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여유로움.
이제 이 낯선 나라에서 어떤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이 여유로움이 지겨워질 때까지 한번 즐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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