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아이
수업 후 사용한 기구를 정리하지 않고 아무 데나 두는 학생. 그리고 이를 지도하면 마지못해 정리하는 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화가 나서 잔소리하기도 하고 그냥 내가 정리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 운동장을 순회하며 분실된 기구를 정리하는 것은 체육교사의 역할이 된 지 오래이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정리정돈을 하지 않음으로써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다.'라는 사실에서 오는 부끄러움보다 '그렇게 행동하는 편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쉽고 편리하다.'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렇게 ‘사회화(社會化)’가 되어버린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반면, 이와 반대로 '이타적(利他的)'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본인만 생각하기보다는 주변 친구들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배려하는 아이, 당번이 아님에도 매시간 솔선하여 기구를 정리하는 아이, "선생님 저희 때문에 힘드셨죠, 너무 감사드려요."라고 말하는 아이,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솔선하여 줍는 아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아이들을 보며 난 그들을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아이와 처음 만난 것은 2021년의 어느 화창한 봄날로 기억된다. 첫 체육시간, 학교 화단 앞 공터에서 체육부장을 모집하는데 지원자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렀을 때,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키는 다소 작지만, 눈망울이 똘망똘망한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말하였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나와 그 아이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매 체육시간이 되면 그 아이는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발성이 나올까 싶을 정도의 우렁찬 목소리로 "얘들아~~~!!"라고 외치며 같은 반 친구들을 모으고 줄을 세웠다.
"얘들아~~~!"라는 말에는 누군가를 향한 지시로 보다는 '우리', '함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1학년 1반의 체육시간은 항상 정돈되어 있었고 난 내가 준비한 수업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년 뒤, 그 아이는 전교 부회장이 되었고 난 학생자치부장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 아이와 난 다양한 학생회 활동들을 추진하였고 더 활기찬 학교를 만들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 아이는 학생회 행사를 추진함에 있어 항상 솔선하였으며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의견만을 주장하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하는 아이였다. 또한 무언가 부탁을 하면 "제가요?"라고 농담을 던지면서도 끝내 못 이기는 척 선생님의 일을 도와주는 따뜻한 심성을 지닌 아이였다.
그 아이와 함께 활기찬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은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따뜻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학교를 생각하면 이 밖에도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 끼친 작은 거인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있기에 교실은 아직 따뜻한 공간인 것 같다. 새해에도 작은 거인들을 만날 수 있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