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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n 10. 2024

4년 만에 J를 만났다.

Prologue

금방 끝날 것 같던 코로나 시대는 끝날 기미가 없었고, 그렇게 영원할 것 같던 코로나 시대도 서서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막을 내렸다.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사람이 많고 열린 공간이 아닌 곳을 갈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가끔은 잊기도 하지만 그래도 잊지 않은 날이 더 많다. 

해외여행을 가기 시작했던 2023년도 초에 아랍에미레이트에 살고 있는 베프, J가 생전 하지 않던 말을 했다. 친구가 그립노라고. 

J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같은 학과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때는 서로 안 친했다고 생각을 했고 서로가 특이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수학여행 사진을 다시 보다가 항상 J는 내 옆옆 자리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실을 안 J도 적잖이 당황했다. 

대학 때도 대학원 때도 친한 듯 안 친한 듯 그런데 늘 붙어 다니는 그런 친구였다.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늘 고민스러운 일 즐거운 일을 공유하며 함께 짜증 내고 화내고 웃고 지나간 추억을 늘 곱씹으며 박장대소하며 우린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한다고 마무리하던 베프, J는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다. 나보다 덜 감정적이고 덜 화내고 덜 즉흥적이다. 아랍에미레이트에 취직이 되어 이민을 가게 되었을 때도 신나 하며 갔다. 새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출장이 많을 테니 정장 스타일이 필요할 거라며 옷도 한가득 안겨주고는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을 그렇게 또 하염없이 드라이브하며 떠들었다. 그 해 겨울 코로나 시대 직전 2019년 12월에 J를 만나러 아랍에미레이트에 가서는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그러고는 만 4년이 되도록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외로움도 타지 않는 J가 꺼낸 말은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마음껏 이 얘기 저 얘기하며 떠들 친구가 필요하다니. 단단해 보였던 J도 여린 구석이 많았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간과했구나 싶었다. 나는 바로 J에게 내가 올해 꼭 가겠노라 다짐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당장 5월에 가겠다고 하니, 그땐 너무 더우니 참았다 겨울에 오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긴 겨울방학을 따뜻한 아랍에미레이트에서 J가 예약해 준 리조트에서 무념무상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퇴근해서 오는 J를 기다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언제나 꿈꿨던 진정한 휴가를 보냈다. 

J와 함께한 무수한 밤에 우리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함께 공유했다. 

그리고 J는 말했다. "근데, 너의 이야기는 뭐야? 모든 얘기에서 너는 없네." 나... 나...?

나의 대답은, "나는 매일이 똑같아. 느지막이 9시가 다되어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면서 출근을 하고 일하다가 점심을 만들어 먹고 또 일하다가 컴퓨터를 끄면서 퇴근을 하고 저녁을 만들어 먹고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 그리고 집에 와서 책을 읽다가 자. 일주일에 두세 번 요가 선생님이 집에 오셔서 요가를 해." 

"그리고, 잠을 잘 못 잔 지 좀 되었어.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자다가 새벽에 여러 번 깨. 잠이 잠깐 깨는 게 아니라 정신이 또렷하게 차려질 정도로 여러 번 깨. 잠을 깨지 않고 쭉 잔 지가 언젠지 모르겠어."

나의 매일은 너무나 단조로웠다. 공유할 게 없다고 생각했고 여기저기서 누가 그랬다더라 누구는 무엇을 해서 성공을 했다더라 같은 가십거리만 공유했다. 

J와 함께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은 새벽에 나는 잠이 깰 때 곤히 깨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힘들게 가끔은 비명을 지르면서 깬다는 것을 알았고, 새벽에 작은 소리에도 놀라며 깬다는 것도 알았다. 

오랫동안 혼자 잠을 자고 혼자 살아온 나는 나의 수면 습관을 알 수가 없었다. 반대로 J는 머리만 닿으면 깊게 잠들었고 내가 베드벅을 발견한 것 같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J의 침대 주변을 돌면서 베드벅 퇴치제를 뿌려댔을 때에도 전혀 뒤척이지 않고 자고 있었다. (다행히 베드벅은 아니었다. 5성급 리조트에서 베드벅이었다면, 호텔에 화가 많이 날 것 같았다. 물론 운이라고들 하지만.)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나 때문에 J는 출근 전에 호텔에서 씻지 않고 집으로 가서 씻고 출근 준비를 하고는 출근을 하는 힘든 과정을 내내 했다. 나는 어차피 낮에도 자도 되니까 정말 괜찮았는데, 쉬러 온 나를 위한 배려였다. 

짧은 겨울방학이 그렇게 지나갔다. 하루종일 붙어 있기도 하루종일 기다리기도 했던 그 시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갔고 나는 한국에서 J는 아랍에미레이트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하루를 살고 있다. 한참 지난 여행기, 단발이었던 나는 어느새 긴 머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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