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닥하이 혼자 하는 술
현실을 떠나고 싶은 마음.
어디론가 훌쩍 사라지고 싶은 마음.
하지만 어디론가 떠날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형편일 때.
곁에 있는 지인들에게
"오늘 머하노? 한 잔하까?"
라고 넌지시 카톡창에 손가락을 툭툭 두드려 본다.
1분이 채 지나가기도 전 카톡창에 사라지지 않는 1을 쳐다보며 괜스레 울적한 마음에 핸드폰을 이불에 던져버리고, 쓰레빠를 질질 끌고 편의점을 향한다.
"오늘은 그냥 마 집에서 속닥하이 혼자 한 잔 할란다."
아무도 듣지 않는 혼잣말을 구시렁거리며 낡아빠진 쓰레빠 사이로 삐져나와있는 새끼발가락을 보면서 한 숨을 쉰다.
"띠띠띠"
"12,500원입니다."
카스 맥주 두 캔과 육포 하나를 집어 드니, 돈이 만원이 넘는다.
속이 훤히 비치는 비닐봉다리안에 야무지게 자리 잡은 맥주 두 캔과 육포를 흔들며 집에 돌아와 따끈한 전기장판 위에 아빠 다리를 하고 자리 잡는다. 작은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일 때문에 바빠 밀려둔 예능을 한 번에 몰아서 보기 시작한다.
"칙ㅡ"
시원하게 따진 맥주 캔 꼭다리의 방향을 입이 닿지 않는 쪽으로 돌려놓고서는 급하게 꿀꺽꿀꺽 들이킨다.
"크ㅡ 시원하다."
육포 하나를 집어 들고는 예능 속에 나오는 개그맨을 보면서 깔깔대며 배를 잡고 웃는다.
그렇게 한 입 두입, 맥주 두 캔을 호기롭게 다 비우고 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기 시작하면서 잡생각에 빠져든다.
몇 년 전만 해도 여럿이서 어울리며 술 마시는 걸 즐겼는데, 이제는 혼자가 편하다.
굳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의 비유를 맞춰가며 억지로 인연을 이끌어가며 복잡한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진다.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방식이지만 때로는 서로 의지하고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들이 많다.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의 내부적 갈등과 타인과의 외부적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얽히고설키는 것에 대한 피곤함 때문에 깊은 관계보다는 어렴풋한 인간관계들이 늘어난다.
일이든 사람이든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정을 주지 않는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잘 안된다.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으로 태어난 나의 선천적인 기질과 인생을 살아오면서 상처투성이가 된 또 다른 나의 후천적 모습이 늘 갈등한다.
'믿지 말자.'
'믿어보자.'
'기대하지 말자.'
'그래도 이번은 다르겠지.'
바보 같은 생각만 하는 게.
바로 이게 나다.
혼자 급하게 먹은 맥주와 육포가 뱃속에서 요동친다.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따뜻한 꿀물을 찾는다.
다급하게 배를 부여잡고 쪼그려 앉아 부엌을 뒤지기 시작한다.
"젠장. 꿀이 없네."
속이 울렁거린다.
변기를 향해 달려간다.
"우웩ㅡ"
시원하게 토해내고 결심한다.
'술 끊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