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나와 가치관이 닮은 오래된 친구의 제안으로 함께 ‘동상이몽’이라는 지역 청년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멤버로 모인 친구들은 서로 직업도 생각도 꿈도 달랐지만, 삶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낀다는 점에서 비슷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것은 문화에 대한 추상적인 열정이라고 하면 표현이라면 맞을까.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드로잉을 하자고 결정하고 진행했을 때의 일이다.
이 날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각자 사랑에 대해 그림을 그리고 난 뒤, 서로의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유롭게 수다를 떨었다. 우리의 그림실력은 형편없었지만, 수다 실력만큼은 우리를 따라올 자들이 없었다. 우리가 그린 그림은 공개할 만큼의 수준이 아니라, 창피한 관계로 그림 공개는 접어두고, 수다 내용을 공개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사랑은 계획과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었다면, 일어나는 범죄의 수도 훨씬 적을 것이다. 사랑은 연애를 하지 않아도 할 수 있고, 쌍방이 아닌 일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가슴 아픈 것이기도 하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만큼 상대가 사랑해주지 않을 때 내면의 상처와 갈등은 시작된다.
사랑을 주제로 시작된 수다는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날은 미혼의 스물아홉 친구들 넷이 모였었는데(이제는 서른이 된), 우리의 고민은 비슷했다. 그것이 무엇 인고하니, 시간이 흐르면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점점 멀어진다는 것이다. 어떠한 특별한 갈등에 의해서 그런 것보다는 친구가 결혼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면서 서로의 관심사가 달라지다 보니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줄어들면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다들 삶에 안주하게 되는 것 같아. 남편 챙기랴 자식 챙기랴. 꿈 많은 친구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그냥 그렇게 한 가정의 엄마로 살아가더라.”
"우리도 결혼하면 그렇게 될 거야. 그래서 이해해. 그렇게 되기는 싫지만..."
“근데 누군가에게는 한 가정의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었을 수도 있지.”
“그래. 어렵네.”
“아참, 너네는 직장에 특이한 사람들 없어? 꼭 있잖아. 일반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
"나는 일반적인 상식, 예의라는 말이 폭력적인 말인 것 같아. 남들에게 지나친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는 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일반적인 것, 대체로, 상식상’ 이런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다를 뿐이지."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상대적으로 누군가에게는 고리타분한 사람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 상식적인 것도 누군가에게는 강요가 될 수도 있지.'
이런 식의 대화를 2~3시간 정도 나눈 것 같다. 드로잉을 하려고 모였지만, 사랑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얘기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 또래들이 겪는 그런 공통의 고민들도 나누게 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모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고,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또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동상이몽’ 멤버들과 헤어지고 잠들기 전 이불속에서 내 방 천장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 삶의 주체는 '나'이며, 흘러가는 인연들을 내 의지로 다 주어 담아갈 수 없으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순간순간 바뀌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동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된다. 지나치게 과거에 연연하거나, 행복할 미래를 꿈꾸며 사는 것보단 현재에 충실하면서 지금을 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