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사고
“쿵”
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이대로 빚을 떠안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독일은 교통비가 비싼 편이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 자전거가 필요했다. 어학원에서 친해진 스페인 친구에게 75유로(대략 9만 5천원)를 건네고 받은 중고 자전거로 도서관과 교내 식당을 오가며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바구니까지 달린 자전거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러 다닐 때도 아주 유용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독일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우회전은 오른팔, 좌회전은 왼팔로 수신호를 해야 하는 규칙이 있다. 마트에 진입하기 위해서 우회전 신호를 보내고 입구로 들어가는데 반대편에서 진입하고 있던 자동차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나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자동차 운전자는 연세가 많이 드신 할아버지셨다. 차에서 내리시더니 자신의 실수였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하셨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한쪽 다리에 힘을 실어 몸을 일으키려 하는데,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아 일어날 수 없었다. 옆을 지나가던 독일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 나를 도와 일으켜 주시는 데도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마트 직원은 비상약품이 들어있는 상자와 함께 아이스 팩을 들고 뛰어나와 나의 다리에 올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마트에서 일어난 사고이니 저에게도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어요.”
정신을 조금 차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하니 다리가 아픈 것이 느껴졌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나에게 아주머니는 내 등을 계속 쓸어내리며 나를 진정시켜 주셨다.
“괜찮아. 괜찮아.”
아주머니는 나에게 의사를 물으셨다.
“경찰을 불러줄까?”
이런 상황에 경찰을 부르는 것이 맞는 것인지, 운전자와 해결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다리가 점점 더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경찰을 부르기로 결심했다.
“경찰을 불러주세요.”
그리고는 같이 살고 있었던 독일 친구 중 ‘마리온’이라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마트 주차장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부리나케 달려와 준 마리온은 20살 예쁘장한 소녀였지만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곧이어 경찰이 오고, 마리온은 자신이 나의 보호자라고 하며 곁에 있어주었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은데?”
‘다리가 부러진 만큼 아프지는 않은데..’
경찰들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아픔이 두 배로 느껴졌다. 경찰관은 나에게 의사를 물었다.
“응급차를 불러줄까? 응급차를 부르면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몰랐다. 20만 원이 넘는 금액일 줄은 나중에 집으로 날라 온 영수증을 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다행히 자동차 운전자에게 엄격한 독일 도로교통법 덕분에 운전자 과실 100%로 내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없었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경찰을 부른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운전자와 직접 합의를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 엄마가 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응급실에 실려 갔다. 마리온도 나와 함께 병원으로 가주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목발을 짚고 나오는 나를 마리온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오늘 사실 학교에서 중요한 시험이 있어. 집에서 간호해 주지 못할 거 같아서 미안해.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
순간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중요한 시험이 있었다면, 나는 마리온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방안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던 6주 동안 할아버지 운전자는 나에게 작은 꽃다발을 들고 두 번의 위로 방문을 해주셨다. 그리고는 어떤 자전거가 내 마음에 들지 모르겠다며 자전거 가게에 가서 함께 골라보자고 하셨다.
“또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 튼튼한 자전거로 하는 게 어떠니? 그래도 예쁜 것이 더 좋지? 허허”
유학생활 중 모든 것들이 원리원칙대로 느리게 진행되는 독일의 업무처리 방식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 할아버지의 태도는 나에게 진심 어린 위로가 되었다. 피해보상으로 새 자전거, 어학원 비용, 치료비, 응급차 비용을 모두 받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심이 담긴 사과를 ㅂ다을 수 있어 독일에 대한 이미지가 더 좋아진 계기가 되었다.
나의 담당 경찰관은 내가 운전자와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픈 곳은 잘 치료를 받고 있는지 방문 또는 전화로 수시로 확인해주었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외국인에 대한 배려
학생에 대한 존중
정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자전거 사고를 겪으면서 나는 독일의 높은 시민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사고가 났을 때 자신의 위치에서 긴급으로 대처해야 하는 방법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응급 처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마트 직원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잘못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사과한 운전자의 태도, 목격자로서 정확하게 경찰에게 상황을 일러준 아주머니, 외국 유학생이 겪을 고충을 배려하여 집으로 찾아와 운전자와의 합의가 잘 이루어지는지 끝까지 살펴봐준 경찰관. 그리고 나의 보호자가 되어 준 마리온.
물론 독일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지만, 내가 겪은 독일인들의 대다수에게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이 있다. 그들의 행동과 말에서 무엇이라 정의하기 어려운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독일 교육의 힘
경제적인 여유에서 나오는 마음의 여유일까. 교육의 힘일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은 인격적인 사과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특유의 독일 사회의 분위기는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잘못된 것은 반성할 수 있게 하는 독일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들을 지킬 수 있는 법적인 시스템. 사회적 분위기. 나는 한국의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았다.
'우리는 언제쯤...'
*이 글은 제가 Daum 스토리 펀딩에서 '보통의 삶'글을 연재했을 당시 연재물입니다.
출처 링크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