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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유 이삭 캉 Feb 21. 2021

Espressivo= 감정을 풍부히 담아서

거울처럼 나를 비춰주다

마음이 고단하고 힘겨울 때 피아노를 치거나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내 힘듦을 받아주고 지지해주는 것 같아 나에게는 엄마같이 따뜻한 존재이다.
어떤 때에는 백일몽(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에 빠져 사는 것을 즐겼다.
특히 음악을 들으며 백일몽에 빠지면 마약이라도 한 듯 고통이 경감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음악으로만 고통을 이겨내는데 한계를 느꼈고 도피하기 위해 백일몽에 빠져 사는 나 자신에게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난 좀 더 장성된 방법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싶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나를 분석하고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리가 필요했고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는데 글쓰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용하고 있는 다이어리를 꺼낸 후 무작정 나의 감정을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써 내려갔다.
문장의 구조, 맞춤법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순간 느껴지고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렸다.
글이 술~술 넘어갔다.
가슴을 억누르고 있던 체증이 확~풀리는 느낌을 아는가?
버려야 할 물건을 버리고 옷장을 깔끔하게 정리할 때의 상쾌함을 아는가?
그 순간의  글쓰기는 나에게  이러하였다.


《거울처럼 나를 비춰주다》

'아무 말 대잔치'처럼 마구잡이로 토해낸 글을 다시 읽으면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뭐가 문제였는지 파악할 수 있다.  마치 내 마음을 거울이 비춰주는 것과 같다.

'네가 이래서 이랬던 거야.'
'니 잘못 아니야. 넌 할 만큼 했어.'
'그 정도면 된 거야.'
글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마음을 풀어주고 정리해 준다.
그리고 보여준다. 거울이 얼굴 상태를 알려주듯이, 내 마음 상태를 알려준다. 내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인지, 병원을 가야 하는 건지, 시간이 흐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마음의 이름표는 무엇인지 등등.....
  그렇게 글쓰기라는 거울을 보며 내 마음을 점검하고
가다듬고 상처 난 곳에 약을 발랐다.



《음악 용어 -Espressivo 감정을 풍부히 담아서》

학교 다닐 때 주야장천 외웠던 음악 용어 중 'Espressivo'라는 용어가 있다.
'감정을 풍부히 담아서', '표정 있게'라는 뜻을 가진 이 용어는 주로 감정을 중시했던 낭만파 시대의 작곡가들이 사용했던 음악 용어다. 난 이 음악 용어를 좋아했고 이 용어를 쓴 곡들을 연주하기를 즐겼다.
다양한 색깔과  표정,  감정을 선율에 담아 표현할 적에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여러 다양한 곡을 연주하면서 감정의 표현이 가능하지만 'Espressivo'는 나에게 특별했다.
'감정을 풍부히 담아서'라는 뜻은 나에게 이렇게 느껴졌다.
'마음껏 표현해도 돼. 울고 싶으면 울고 초연히 받아들이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너의 모든 감정을 쏟아부어도 돼.'

하지만 피아노 레슨 때마다 선생님께 혼이 났다.
"감정을 표현하는 건 좋지만, 캐릭터와 시대에 맞는 감정을 표현해야지.  작곡가의 의도를 왜곡시키지 마."

맞는 말이다.  나는 작곡가의 곡을 재창조하는 연주가일 뿐  감정에 있어 지나칠 필요와 이유가 없다.
피아니스트가 직업인 이상  감정을 자유롭게 내 맘대로 표현하기보다 적당하고 알맞게 빚어나가야 했다.

난 좀 더 자유스러운 마음의 해방을 원했다. 그래서 글쓰기를 선택했다. 글쓰기는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줬다.
마음대로 글로 지껄여도 그 누구도 나에게 '적당히 해라'라고 끼어들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보여주기 싫은 내 모습을 글은 비춰준다.
그런 내 모습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며, 내가 한낱 먼지에 불과한 인간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글쓰기는 들키기 싫은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하고 꽁꽁 묶어둘 수 있다. 비밀을 아는 건 종이 위에 나열된 글자들과
나밖에 없다는 것에 한 줌의 안도감을 느낀다.
글이 나에게 손을 내밀고 난 그 손을 잡고 마음속 거친 물결을 함께 유영한다.  그 유영은 안전감과 평온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래서 오늘도 난 글쓰기를 한다.
Espressivo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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