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연 Nov 11. 2020

완두콩

똥이 우주다

콩을 심었더니 콩이 나왔다.

콩을 먹었더니 똥이 나왔다.

콩알 몇 개 심었다. 

벚꽃 잎 몇 장도 함께 넣었다. 

아침안개가 꽃향기를 땅으로 데려오자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홀딱벗고새 울음소리에 움이 트고 귀신새 소리에 놀라 별빛 아래 밤새 키를 늘렸다. 

지독한 봄 가뭄, 먼데 개울물 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꽃을 피웠다. 

소쩍새 우는 땡볕 속에 다시 며칠이 흐르자 꽁깍지가 생겼다. 

하나 둘 셋 … 콩알이 생기고 살이 붙더니 드디어 일곱 알갱이가 만들어졌다. 

두 달 보름 남짓, 우주를 품은 콩 한 알이 다시 저 닮은 우주를 만들어냈다.

장맛비 퍼붓는 날 깍지를 벌리고 콩알을 끄집어냈다. 

콩알 몇 개 넣고 밥을 짓는다. 

푸르딩딩 몰캉한 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위를 거치고 소장 대장 지나더니 똥으로 나왔다. 

두 달 보름 걸려 만들어진 콩알이 내 몸을 거치면서 고작 하루 만에 똥이 되었다.

우주를 먹었는데 똥만 나왔다. 

내 몸 어딘가에 우주가 남아있나? 

내 몸 어딘가에 연분홍 벚꽃잎과 꽃향기와 아침안개와 홀딱벗고새와 별빛과 귀신새와 개울물과 긴 가뭄과 뙤약볕과 시원한 장대비가 머물러있나?

콩을 먹고 똥만 내보냈으니 우주여, 내게 머물러 있기를!



* 홀딱벗고새 : 검은등뻐꾸기. 봄날 아득하게 우는데 인간의 귀에 4음절로 들린다. 그 소리가 범인들에겐 “홀딱벗고”로 들린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스님들 귀엔 “빡빡깍고”로 들린다고 한다.


* 귀신새 : 호랑지빠귀. 한밤중과 새벽에 “휘이”, “피이” 하고 가는 휘파람소리를 내며 운다. 으스스하고 괴기스런 소리에 저절로 뒷덜미가 오싹해진다.


#완두콩 #홀딱벗고새 #귀신새 #검은등뻐꾸기 #호랑지빠귀 #똥 #우주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네 가지 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