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길

개발 혹은 착취

by 풍연

영어 exploit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개발 또는 개척, 이용하다가 하나이고 착취하다가 또 하나입니다.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개발'과 '착취'가 같은 말의 다른 뜻이죠.

서양사람들은 어째서 '착취'하는 것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단어에 집어넣었을까요?


exploit에 담겨진 이중적인 뜻을 헤아릴수 있게 된 건 우연입니다.

어느 해 봄, 해먹을 걸려고 집뒤 야산의 잡목들을 정리할 때였습니다.


놀이를 위해 아무 죄의식없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잡목을 무심코 베어내다가

문득 "개발"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무언가를 개발한다는 것은 곧

그것이 본래 있던 상태에서 다른 어떤 상태로 바꾼다는 것이고

결국 본모습을 파괴하는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나는 개발을 통해 해먹을 걸수있는 공간을 얻었지만

그 자리에서 싹을 틔워 봄 비를 즐기던 죄없는 진달래며 생강나무는

졸지에 생명을 잃고 가지를 잃고 잎을 떨구고 말았습니다.

착취당하고 만 것이지요.


비탈진 산길을 걷다가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사진 산에 저렇게 편안한 길이 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발길들이 거쳐갔을까?

얼마나 짓이겨졌을까?

오늘 내가 편안하게 걷고 있는 이 길도

결국 산과 나무와 풀들을 희생시켜 짓누른 댓가로구나.


참 명사 exploit는 위대한 공적. 업적을 뜻합니다.

"무언가를 착취해 개발을 하고 그 결과 공적을 세운다"

자연을 대하는 서구의 사고가 이 한 단어에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산길》


누군가 첫발을 디뎠다

다음 사람이 따랐다

또 다른 사람이 걷는다

산비탈에 길이 났다


생명이 짓눌러진 길,

좋다며 걷는다


#산길 #착취 #개발 #업적 #explo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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