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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Dec 05. 2020

여름 1

혼 나는 남자

남자는 신이 났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내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곁에 있는 아들을 채근했다.

손에 들린 빵 봉투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한낮에 세일을 하는 건 흔치 않다.

게다가 남자가 이 시간에 빵집 앞을 지나는 일도 드문 일이다.

한 봉에 3천 원짜리 식빵을 두 봉에 4천 원에 팔고 있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갑을 열고 계산을 하고 빵 봉지를 받아 들었다.


맞은편에서 아내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남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엄마와 함께 걸어 온 딸아이가 먼저 물었다.

“아빠, 뭐야?”

양산을 받쳐 든 딸에게 건성으로 눈빛을 건넨 남자는 여자에게 말했다.

“이거, 저기서 세일 하더라. 두 봉에 4천원....”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눈은 더 간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잘했지?’


손에 든 식빵과 남자의 입과 남자의 눈을 번갈아 보던 여자는 말한다.

“어제 저녁에 샀는데.”

첫 심부름을 성공한 아이처럼 칭찬을 기대하던 남자는 당황했다.

의기양양하던 눈빛이 흔들렸다.

“물어보고 샀어야지! 또 사면 어떡해?”

여자가 말하는 동안 손에 들린 부채가 식빵 위를 어지럽게 왔다갔다한다.

딸이 거든다.

“아빠, 유통기한 확인했어?”


며칠 동안 내린 장맛비가 그치고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여름 오후는 후텁지근한 열기와 눅눅한 습기로 가득했다.

땀인지 습긴지 모를 물기로 남자 얼굴은 진작부터 번드르르해졌다.

“능동적으로 할 때하고, 소극적으로 할 때를 구별하라고,

이런 건 알아서 할 필요 없어요, 네?”

여자는 쐐기를 박고 딸과 함께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물릴 수도 없고 이걸 어떻게 한데? 에휴.”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의 시선이 곁에 있는 아들을 향했다.

녀석의 눈은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들 얼굴은 물기 하나 없이 뽀송뽀송했다.

겸연쩍게 웃고 있지만, 남자의 온몸은 흠뻑 젖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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