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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May 20. 2022

영혼 1-휠체어가 있는 거리

맑거나 탁한 영혼에 관한 기록

다행히 뜨거운 햇살이 비켜 간 그늘이다. 전동 휠체어에 등을 기댄 채 길바닥에 앉은 경민은 쉴 새 없이 몸을 비튼다. 손목과 손은 심하게 비틀어져 있고 일그러진 입은 계속 삐죽거린다. 팔, 다리, 엉덩이 할 것 없이 온몸이 틀어져 있다. 앞에 놓인 스텐 국그릇에는 동전 몇 개와 천 원짜리 한 장이 들어있다.


중년 남자 하나가 곁눈질로 힐끗 보며 지나가더니 머뭇거리며 되돌아온다. 저고리에서 꺼낸 지갑에는 지폐가 몇 장 들어있다. 한 장 두 장 세어 보다 이내 몽땅 꺼내 국그릇에 내려놓고는 뒤돌아선다.


총총 떠나는 남자의 뒤통수를 향해 경민이 연신 고개를 끄떡인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사는 불발탄이 되고 만다. 평소에도 심하게 몸을 비트는 경민이 인사를 하는 건지 뭘 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말로 하면 좋을 텐데 애달픈 말은 목구멍 넘어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남자 역시 인사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겸연쩍고 미안한 마음에 인사할 틈을 주지 않고 돌아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인사를 마친 경민이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 그릇에서 돈을 꺼내 가방에 넣는 일이다. 이게 쉽지 않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과 팔로 얇은 종이를 겨우 집어 어찌어찌 손가방 입구를 열고 넣는다. 느리고 조심스러운 일이 끝나는데 족히 1분은 걸린다. 이 작은 일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살점 하나 없이 바싹 마른 몸 상태가 이해된다.


잠시 후 한 할머니가 지갑을 열며 다가온다.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몸을 굽히더니 경민의 손을 덥석 잡는다. 뻣뻣한 손가락을 하나둘 펴고 지폐를 쥐여준 다음 다시 오므린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어깨를 쓰다듬고 등을 다독인다. 입에서는 기운 내 잘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할머니의 체온을 건네받은 경민의 여윈 피가 조금 더 따뜻해진다.


이번엔 제대로 인사를 한다. 허리를 굽혀 눈높이가 맞춰진 할머니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떡이고 입술을 움직여 모양을 만들어 낸다. 눈빛은 빗나가고 말은 목구멍을 넘어오지 못해도 할머니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돈을 손에 쥐여준 덕분에 가방에 넣는 작업이 수월해진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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