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름,

그 새벽에 월드컵을 보지 않았더라면,

by Honey

내 청춘과 낙의 전부였던 축구선수가 있었다.

물론 나의 팬심은 지금도 유지 중이지만......


1998년 6월,

그때의 나는 고3이었고 공부나 하자고 조금 이른 새벽에 일어난 건 절대 아니었다.

오로지 월드컵 2차전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고,

1차전인 멕시코 전에서 하석주 선수가 선제골을 넣고도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아쉬웠던 마음을 가득 안고,

엄마의 매섭지만 애정이 담긴 눈빛을 뒤로한 채 거실에서 2차전 경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H.O.T.나 젝스키스에도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왜 그렇게 축구가 좋아졌을까,

그 작은 시골 도시에 종합경기장이 생겼다고 '울산현대'가 초청 경기를 왔던 기억이 좋아서였을까,

(축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 '꽁지머리' 김병지 선수에게 먼저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오늘은 제발'을 속으로 되뇌면서 네덜란드와의 2차전 경기 킥오프,

하지만 오렌지 군단은 정말 무서운 팀이었다.

(이때 히딩크 감독은 다음 월드컵에서 오늘 상대한 팀을 기적으로 이끌 줄은 아마 상상도 못 했겠지..)

후반 30분이 넘어서며 4골을 실점하고 경기의 승패는 의미가 없어졌다 싶을 때 이미 나는 울기 시작했고,

엄마의 눈빛은 더 매서워지셨으며, 경기에 대한 온갖 서러움까지 더해져 그 순간 교체되어 들어오는 선수에게 집중할 정신적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다 무섭게 터졌던 슈팅 한 방!

'어? 누구야?'


결국 대한민국은 네덜란드에게 5:0 패배를 당했고, 대회 도중 감독이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으며,

그렇게 슬픔의 연속이었던 월드컵에서도 (나만 눈에 띈 게 아닌) '이동국'이라는 보물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시절 거의 유일하게 나와 축구 얘기를 해주던 친구와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을 때,

그 시절을 기억한다며 둘이서 한참을 얘기했었고,

내 모습까지 떠올린 친구는 이동국 선수를 처음 본 날, 등교하면서 호들갑을 떨던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고 했다. 지금의 너는 어쩜 그렇게 여전히 축구를 좋아하고 있냐며..


이 빡빡한 일상 속에서 축구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 된 내가,

만약 그 고3 시절, 새벽에 일어나 월드컵을 보지 않고 평소처럼 잠을 더 잤더라면,

지금의 내 삶이 조금은 더 정상적이었을까?

(물론 지금의 삶도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늘 생각은 합니다만..)


1998년도에 모아둔 축구 노트 스크랩 중, 근데 동국이형, 취미 음악 감상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이 노트는 어쩌다 지금의 전주까지 따라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