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붉은 악마, 그리고 'CU @ K리그'
증권가의 중심이었던 동네의 맛이 즐거웠던 곳에서 일하던 시절,
나는 강남의 매장에서 전보발령을 받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었고,
우리나라는 살아생전 다시 보기 어렵다는 월드컵 개최로 그 열기가 가득 차 있던 때였다.
직업의 특수성으로 주말이나 휴일보다는 평일에 쉬는 날이 많았으며, 마침 첫 번째 경기인 폴란드전이 열리던 날에 휴무였던 나는 같이 쉬는 언니들과 함께 낮부터 무작정 한강공원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이곳도 시청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테니.
매장에서 멀지 않았던 터라 우리가 모인 걸 알고 매장에선, 당시 인기 메뉴였던 피자디아(피타브레드 사이에 닭고기나 소고기를 양념에 익힌 채소, 치즈와 함께 넣어 구워낸 요리, 일반적인 피자의 형태와 유사하다)를 포장해서 보내주시기도 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든든해진 배에, 기분도 점점 들뜨기 시작했고, 더 많은 사람들까지 한강공원에 계속해서 모여들며 분위기는 한층 더 달아오르고 있었다.
당시 한 방송사에서 커다란 무대와 스크린을 설치해 둔 덕분에 중계 관람 환경도 더없이 좋았더랬지.
그간 월드컵이라 하면 승리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었기에,
어떤 기대감보다는 축제에 대한 막연한 설렘들이랄까?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미 월드컵을 즐기기에 충분한 우리들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드디어 킥오프,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황선홍 선수의 선제골로 대한민국이 경기를 이끌어 가기 시작하더니, 뒤이어 터진 유상철 선수의 추가골로 드디어 월드컵에서 귀한 첫 승을 맛보게 된 것이다.
(K리그의 오랜 팬으로서 고 유상철 감독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단체로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했던 그날의 분위기,
경기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고,
지금이야 방송사들이 상암에 몰려 있지만 그땐 방송도 여의도가 중심이었던 터라, 당시 M본부의 유명한 개그맨들이 차량을 이끌고 거리로 나와 박수에 맞춘 경적을 울리며 인파에 합류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그 밤을 시작으로 대회가 계속되면서 대한민국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수록, 모두가 더 깊이 월드컵이라는 축제에 빠져들며 하나가 되고 있었다.
(동국이형의 방황의 시간은 더 길어지고 있었겠지만......)
성공적인 월드컵의 시간들이 지나고 K리그에서 다시 보자던 퍼포먼스를 보면서,
그들이 말하는 현장에 나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은 너무나 간절했지만,
맛이 즐거운 곳은 나를 계속 즐겁게는 하지 못했던 것 같고,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지금의 내가 그래도 이렇게 원하는 걸 하고 있지 싶다.
축구를 가까이에서 보는 즐거움이란,
이렇게 10여 년이 지나고 매주 반복돼도,
매일 새롭고, 설레는 일.
이번 주말 경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배경사진 출처-yahoo.fin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