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중입니다

국가대표의 젖줄 K리그를 사랑합시다

by Honey

스무 살에 입사한 회사를 서른 살이 되어 퇴사를 했다.

십 년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생애 첫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그토록 바라던 운전면허까지 해결하고 나니 뭔가 진짜 사람이 사는 삶 같아졌다.

나는 없고 김점장만 남아 이러다 나를 잡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정리한 회사생활이었으니..


퇴사를 할 때의 심정은 '다시는 동종업계에서 일하지 않으리..' 였었지만,

그래도 해 오던 게 있고, 나를 찾는 곳이 있었고, 경력직이어야 돈벌이도 달라지는 세상이기에 나는 또 그렇게 어딘가를 책임지고 가는 사람의 역할을 하게 됐다.


그나마 크게 달라진 점은,

큰 기업에 비해 덜 빡세다는 것? 나 스스로가 덜 조이며 일하니 숨 쉴 시간들이 있었다.

보고 싶던 경기를, 가고 싶던 축구장을 내가 일정을 맞춰 보고, 갈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사람다운 삶인가,


그리고 또 그 사이 나의 팬심 가득한 그 선수는 두 번의 유럽 진출을 했었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실패라고 말하는 순간들이다)

다 만들어 놓은 월드컵은 본선을 앞두고 부상에 울었으며,

지금 보니 마지막 월드컵이 된 그 순간의 반박자 빨랐던 슈팅으로 나를 또 마음 아프게 했었다.

축구 역사를 새로 쓸 것처럼 (결국엔 다시 썼지만) 환호받던 그 선수가 유럽에서 실패한 뒤 다시 국내 리그로 돌아왔을 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난 섞인 목소리와 부정적인 시선들만 보냈었더랬다.




시작은 그랬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그래서 내가 한없이 바라만 보던 선수보다 더 애정하게 된 이 팀을 만나게 된 이유도..

서른이 넘은 (흔히들 한물갔다고 표현했던) 이 노장 선수를 반기는 팬은 당시에 아무도 없었다.

'감독이 제정신이냐'라고 까지들 했으니......


내 고향은 전주가 아니다.

물론 당시엔 사는 곳도 전주가 아니었다.

하물며 살고 있는 도시는 전주보다 훨씬 더 컸고 당연히 축구팀도 있었다.

(한 때는 그곳의 프로 경기에도 월드컵경기장 몇 만석이 가득 차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소 아쉬운 상황)

그런데 내가 보고 싶은 그 선수는 그 많은 곳들을 돌고 돌아 전주로 왔단다.

그렇게 매주 전주를 가는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거리도 나름은 가까웠다고 스스로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본다.




2011년 6월 7일 화요일,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미안한 그 녀석과 데이트가 있던 날,

나는 우리의 마지막 코스인 축구 경기만 종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좋아하는 죽녹원에서도, 그 맛있는 비빔국수를 먹으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저녁에 있을 가나와의 평가전 생각뿐이었던 나, 그리고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걸 알고 어렵사리 예매를 해 둔 착한 녀석,

물론 '전주월드컵경기장'이라는 장소가 주는 설렘이 더 컸다.


당시 가나는 아프리카의 강호였고, 대한민국은 젊은 세대들의 실력이 한창 피어오르던 때였다.

관중으로 가득 찬 전주월드컵경기장 만으로도 이미 분위기는 압도적이었고, 경기는 기대보다 더 흥미진진했으며, 이 날 대한민국은 2:1의 스코어로 승리까지 챙기게 됐다.

(한창 물이 오른 구자철, 지동원 선수가 득점을 했고, 두 선수는 그 해 유럽 진출까지 했었지)


모든 게 만족스러운 하루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A매치(축구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를 할 때면 늘 대형 태극기는 모두가 익숙하게 봤을 터,

그러나 이 날은 응원석의 다른 대형 통천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국가대표의 젖줄 K리그를 사랑합시다'



그렇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열심히 사랑하고 있는 중이다.

월드컵에서 16강은 당연한 일이 아니고, 아니 어쩌면 본선 진출 자체가 쉽지 않은 일.


어쩌다 한 번 보는 국가대표의 경기로 한국 축구 전체를 평가하기 좋아하는 철없는 사람들아,

매주 치열하게 싸워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장에 나서는 그 선수들의 '매일'을

한 번이라도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나는 유럽 축구 보지 K리그는 안 봐"

라는 헛소리는 그만 집어치우시고요.








<사진 출처-'스포탈코리아' 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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