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 금지

4만 명이 가득 찬 경기장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겠죠?

by Honey

가능한 모든 스케줄은 팀의 경기에 맞추기 시작하던 때였다.

맛이 즐거운 곳을 벗어났기에 그나마 시작이라도 할 수 있었던 시절,

그러나 역시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았다.

업종의 특성상 휴일이나 주말에 더 바쁜 날들이 많았고, 400석에 가까운 대형매장에 (지금과는 다른 시국이었던지라) 예약이 넘쳐나던 시기였다.


지금의 K리그1(프로축구 1부 리그) 팀들은 많게는 3개의 일정을 소화하며 한 시즌을 보내게 된다.

가장 많은 경기수로 한 시즌 내내 운영되는 리그,

축구협회에 등록된 모든 팀들로부터 시작되어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FA컵,

그리고 K리그 상위 4개 팀만 참가할 수 있는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



2011년 11월 5일 토요일,


내가 응원하는 팀인 전북현대에겐 너무나 중요한 날이었다.

무려 ACL 결승전이 열리는 날,

당연히 리그나 FA컵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국내 대회가 아닌 아시아를 무대로 한 국제대회기에 그 규모나 상금도 국내 대회보다는 크고 많았으며, 토너먼트 결승전인 만큼 축구팬들의 관심도 넘쳐나고 있었다.

물론 그때 당시 4강전에서 있었던 비매너 난투극(?)으로 인해 다른 K리그 팀이 아쉬운 패배를 하게 됐었고,

지금이야 우리가 공공의 적이 됐지만 그때만 해도 리그의 모든 팬들이 똘똘 뭉쳐, 중동의 그 비매너 팀에게 우리 팀이 가혹한 응징을 해주길 기대하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을 해주고 있던 터였다.

클럽팀의 경기에 4만 명이 넘는 관중이 모여 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일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인지만 봐도 그 관심의 정도를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 스케줄을 뺄 수 없는 날이었다.

예약은 빼곡했고, 대기자까지 넘쳐나던 그야말로 말도 안 되게 바쁜 날이었던 것이다.

몸은 노동을 하고 있지만 정신은 전주월드컵경기장에 가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만 커져갔다.

정말이지 안 되겠다 싶어 사무실에 중계화면을 틀어 놓고(그래도 책임자라고 이 정도 일탈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무전기로는 매장 상황을 살피며 온몸에 긴장만 가득 짊어지고 있었던 그날.


우주의 모든 기운이 우리 팀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에 객관적인 전력이나 전문가들의 예측도 당연히 우리 팀이 앞서고 있었고, 경기장에 있는 4만 명과 나처럼 애가 타게 함께 한 모두가 한 목소리로 힘까지 실어주고 있었다.

선제골을 넣으며 시작은 너무나 좋았다.

하지만 이후에 자책골, 그리고 후반에 역전골까지 내주며 경기는 어렵게 흘러가고 있었고,

그러던 중 종료 직전 추가시간에 정말이지 극적인 동점골이 터지면서 경기는 연장까지 진행됐다.

이때 나는 근무 중인 사실도 망각한 채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찔끔했더랬지..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아쉬운 승부차기 패..

경기장에 모인 4만 명과 마음으로 함께 한 모두가 울었다. 물론 나도.

지금도 축구에서 가장 보기 힘든 게 승부차기다.

이후에 더 많은 아픔들로 지금의 나는 현장에서 승부차기까지 경기가 가게 되면 도저히 볼 자신이 없어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차마 경기장을 벗어날 순 없으니..

(2005년 12월 이후부터 2021년 9월까지 그 많은 토너먼트에서 단 한 번도 승부차기를 이기지 못한 게 바로 우리 팀이다)

대체 누가 생각한 걸까, 이 잔인한 승부의 방식을......


나는 대부분의 우리 팀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본다.

사실은 거의 모든 경기였는데 코로나 덕분에 원정을 한동안 못 갔으니 이제는 대부분이라고 해야겠다.

그러고 나면 다시 보기로 현장의 느낌과 또 다른 중계 화면으로서의 경기를 찾아보곤 했었는데..

하지만 절대 '다시 보기'를 할 수 없게 된 첫 번째 경기인 우리의 2011년 ACL 결승전,

(이후에 몇 경기가 더 추가됐다는 슬픈 소식과 함께..)

물론 우리 팀은 5년 뒤인 2016년에 ACL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중동의 그 현장엔 당연히 나도 함께 있었다.


지금은 지긋지긋한 코로나로 ACL의 운영방식이 많이 바뀌면서 직접 대회를 보기조차 쉽지 않아 졌고,

경기도 짧은 기간을 정해 몰아서 치르다 보니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올해도 베트남에서의 그 덥고 험난했던 조별 경기를 무사히 마친 우리 팀은 8월에 있을 16강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 같은 K리그의 팀을 만난 건 서로가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지만..

더군다나 올핸 카타르월드컵의 영향으로 모든 일정이 매우 빡빡한 가운데 리그와 FA컵, ACL까지 모두 치러야 하는 선수단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듯싶다.

그래도 차츰 리그부터 정상적인 유관중 경기가 됐고, 육성응원까지 풀리면서 팬들의 응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선수들에게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선수들도 팬들의 목소리가 많이 그리웠을 테니..

그리고 ACL도 그날처럼 결승전이 열릴 때쯤이면 비행기 타고 해외 원정 응원도 갈 수 있겠지, 물론 그때까지 팀이 살아남아 있어야겠지만,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 초록이들아,


(일단 오늘부터 좀...... 제발, 연장만 가지 말자, 제발..)








<사진 출처-'풋볼리스트' 기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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