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의 시작을,
2011년의 전북현대는 그야말로 거칠게 없는 팀이었다.
'닥공'이라는 이름의 무서운 공격축구로 시즌 내 경기당 2.3골을 몰아넣었으며, 리그에서는 일찌감치 정규리그 1위를 확정 지어 놓은 채, 한 달 뒤에 있을 플레이오프 챔피언결정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ACL까지 우승했더라면 그야말로 완벽한 한 해가 됐었을 텐데......)
챔피언결정전(플레이오프)은 그 해가 마지막이었다.
이듬해부터는 정규리그 이후에 상위 8개 팀과 하위 8개 팀으로 나눠지는 '스플릿라운드'로 바뀌었고,
상위 8개 팀은 우승과 ACL 진출권을 놓고 경쟁했으며, 하위 8개 팀은 피 말리는 강등 전쟁을 시작했다.
강등 전쟁에는 승강을 위한 플레이오프가 아직 남아있으니 방식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라고 해야겠다.
이마저도 2019년에 명칭이 '파이널라운드'로 바뀌게 된다.
리그의 운영방식을 놓고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시즌 막판의 몇 경기로 팀의 운명을 가르는 플레이오프 제도가 없어진 건 나로서도 잘됐다고 생각하는 입장.
오랜 기간의 노력을 놓고 봤을 때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위그룹과 하위그룹을 나누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고, 혹은 프리미어리그처럼 아예 정규리그 방식으로만 시즌을 운영하자는 의견도 있다.
물론 프리미어리그에도 승격 플레이오프는 존재한다.
챔피언결정전에 오기까지는 3위~6위의 6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플레이오프, 그다음이 챔피언결정전이었다.
우린 정규리그 1위였기에 한 달이라는 기간을 여유 있게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동국이형을 본다고 전지훈련장인 목포까지 가서...... (아니다, 이건 다른 얘기)
챔피언결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정규리그 6위였던 '울산현대'가 플레이오프에서의 상승세를 타고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와 있던 바였고, 1차전은 2011년 11월 30일로 어웨이, 2차전은 2011년 12월 4일 홈이었다.
ACL 결승전도 현장에서 못 본 나였기에 이건 꼭 보고 싶었다. 모든 스포츠는 직관이 제맛인지라,
1차전은 다행히 수요일, 2차전은 바쁜 일요일이었지만 미리미리 스케줄을 뺐다.
12월이 성수기이긴 하나 아직은 월초였고, 내가 대장이니까(?)
평일의 당일치기 울산행은 너무나 빡셌다.
대전에서 전주, 전주에서 울산(가는 길은 원정버스 동행), 울산에서 다시 대전까지.
두 시간여의 축구를 보자고 이동시간에만 종일이 걸렸다.
1차전은 다행히 우리의 승리,
경기가 끝나고 나니 다소 늦어진 시간에 다시 대전까지 오는 길이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울산역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기에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찰나, 마침 지인의 도움으로 울산역까지 아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울산에서 대전으로 오는 기차도 무사히 탈 수 있었다.
대전역에 도착한 뒤 동네로 오는 지하철을 탔고, 그 지하철 안에서 진짜 신기하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우리 팀을 응원하러 울산에 다녀오던 길인 사람을 우연히 보게 됐으며, 무슨 호기심에서인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까지 했던 나란 사람, (그때 그냥 내렸어야 했나......)
알고 보니 정말 초면이었던 그 사람은 대전에 사는 우리 팀의 오랜 팬이었고,
나와 동갑내기였으며, 당시에 이미 나와 다르게 서포터스 활동도 하고 있는 친구였다.
(그때의 나는 나름 본부석 쪽에서 얌전하게(?) 축구를 보던 시절)
여차여차 나흘 뒤 우린 홈에서 열리는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 함께 가게 됐고,
그날 우리 팀은 통산 두 번째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된다.
그날 이후 홈이든, 원정이든 우리 팀의 경기날이면 가능한 빠지지 않으며, 더군다나 두 시간 내내 제자리 뛰기를 하느라 성할 날이 없는 팔다리를 보면서,
내가 그날, 그 지하철에서 우리 팀의 유니폼을 보고도 그냥 내렸더라면,
아님 이후에 그 친구를 따라 N석(응원석)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그래도 조금은 더 조신하게 축구를 보고 있었을까......?
그래서 말인데, 아무리 코로나라고 해도 너무 은둔생활을 하는 것 같지 않니, 초딩아,
<사진 출처-'스포츠 조선' 기사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