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어들을 보면서 혹시 자기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았나요? 예전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한 CF송의 제목입니다. 책을 준비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도 어딜 가든, 뭘 하든 이걸 거의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집필 노이로제(글을 쓰다 집중이 안 될 때마다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지는 증상)에 걸리고 나서부터는 이것이 ‘생각대로 하면 안 되고’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생각대로 하면 밥통 되고’를 거쳐 ‘생각대로 하면 해고되고’로 변하더군요. 노래를 중얼거리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마음은 차분하고 침착해지더군요. 햇수로 7년 가까이 되는 제 회사생활을 한 번 진지하게 돌아봤습니다. 안타깝게도 회사를 다니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입니다. ‘나는 어떤 회사원이었나? 나는 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나는 왜 회사생활에 기복이 심했었나? 회사는 나에게서 무엇을 원했던 걸까?’ 이런 기초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지요. 회사생활을 완전히 정리한 지금에서야 자신에게 완전히 솔직해질 수 있겠더군요. 대답들은 하나같이 지극히 ‘상식적’이었습니다. 기초적인 질문들에 걸맞는 기초적인 대답들이 나오더라 이겁니다.
생각대로 해도 되나?
저는 회사를 다니면서 항상 생각대로 하면 된다, 생각대로 해도 어떻게든 통과된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남이 뭐라고 하든 말든 제 마음 가는 대로, 제 기분 내키는 대로 하면 만사 오케이라고 여겼던 거지요. 참으로 불행(자신에게나 회사에게나)한 건, 이러한 생각에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망각했다는 데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남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상실한다는 것,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는 것, 남을 무시하고 짓밟아도 얼마든지 용납될 수 있다고 보는 것 등 그 항목들은 실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완전한 불량직원의 표본인 셈이지요.
스탠퍼드대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교수가 얘기한 ‘일반적인 또라이 행동양식’ 중 몇 가지는 제가 벌인 행동들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여러분도 다음의 리스트를 잘 살펴보면서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혹시 이런 또라이 같은 짓을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ㆍ 인신공격
ㆍ 개인 공간 침범하기
ㆍ 함부로 신체 접촉하기
ㆍ 말 혹은 몸짓, 행동으로 위협하고 협박하기
ㆍ 모욕을 주려는 의도가 깔린 냉소적인 우스개와 약 올리기
ㆍ 기분 나쁜 이메일 보내기
ㆍ 사회적인 신분 모욕하기
ㆍ 공개적으로 망신주기 또는 지위를 격하시키는 행동하기
ㆍ 무례하게 끼어들기
ㆍ 앞에서는 아닌 척하면서 뒤로 공격하기(이중인격 쓰기)
ㆍ 경멸하는 표정 짓기
ㆍ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기
고백하건대 저는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을 저만의 독창성이나 창의성을 발휘하는 걸로 여겼고, 업무능률과 관계를 개선하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제 마음이 동료의 마음이자 팀의 마음이자 회사의 마음이라고 과대 해석하고 포장해 저만의 환상 속에 살았던 거지요. 이유 불문하고 그게 전체를 위하는 길이라고 확신했던 겁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참 지독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었지요.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거나 혹은 상대로부터 이런 걸 당한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서튼 교수가 만든 ‘또라이 테스트’에서 1번으로 나오는 ‘또라이라고 생각되는 사람과 이야기하고 나면 우울해지고 비참해지고 기운 빠지고 초라해진 느낌이 드나요?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나요?’라는 질문들을 저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회사를 다니는 내내 주변의 많은 동료들이 정서적으로 긍정적이거나 흔쾌히 받아들이는 식의 피드백을 줬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을 저처럼 감정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대놓고 강하게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대부분 간접적이면서도 유연한 스타일의 우회적인 방법들을 구사했지요. 여기에서 저는 다른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개선하려고 기를 쓰는 대신 저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았어야 합니다.
많은 또라이들이 주변에서 자신의 행동을 봐주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때마다 이런 기회를 자기계발의 자양분으로 삼아 반성하려 하거나 팀과 회사를 위해 지혜로운 쪽으로 활용하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권력과 무대뽀성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더 악착같이 이용하려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악당이 거만하게 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그렇게 내버려두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애써 무시함으로써 실제로 그들의 거침없는 행동을 조장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 서튼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관점에서 그의 책 『또라이 제로 조직』(이실MBA)을 보면 미국의 스포츠와 비즈니스, 의약, 학계에는 암묵적인 기준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당신이 더 자주 옳을수록, 당신이 더 자주 이길수록, 당신은 더욱 큰 꼴통이 될 수 있다’는 거지요.
회사 밖에서는 또라이의 모습을 전략적으로 감췄기에 그야말로 바람직한 바른생활 직장인처럼 보였지만, 저는 적어도 회사 안에서만큼은 항상 옳았고, 항상 이겼고, 항상 제 의도와 의지와 기분대로 일을 해왔습니다. 저를 제외한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은 ‘전지전능한’ 저를 위한 신하들이자 부속품이었던 거지요. 제가 모든 걸 쥐어 삼키고 휘둘러댔으니 팀 안에는 팀워크 대신 원맨 워크(one-man work)만이 판을 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철석같이 믿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강하고 잘난 건 다 옳다’라는 미신입니다. 물론 목소리 큰 사람이 회사에서는 거의 항상 ‘짱’으로 군림하지만, 둘은 동의어가 아니지요. 아니, 회사 안에서는 강하고 잘난 게 옳기는커녕 오히려 언제나 틀렸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기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나가는 게 아니라면, 오래 붙어있을 각오를 하고 회사에 몸담고 있는 거라면 자신의 ‘완전무결함’을 지워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무섭고 센 사람이 언제나 판을 장악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판에서 교체가 되거나 제거가 되더군요. 인지상정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갖고 주의 깊게 관찰해왔을 테니 결과는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또라이 끼가 있거나 이미 또라이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회사라는 그럴 듯한 명분과 명목을 내세워 사실은 자기만족을 위한 공격적인 대결을 펼치는 대신, 정말로 회사를 위한 건전하고도 건설적인 대립으로 방향을 전환해보는 건 어떨까요? 제 버릇 남 주기가 너무나 힘들겠지만, 그 버릇은 언젠가는 회사의 보복과 응징이 담긴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니까 하는 말입니다. 회사는 그만큼 현실적이고 냉정하고 딱 부러진 ‘엣지(edge)'를 갖고 있는 곳이란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각을 세우면 자신이 손해인 이유가 좀 더 그럴 듯해지지요?
서튼 교수의 첨언으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회사에서 지금 위태위태한 분들은 귀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순리에 맞게, 기본으로 돌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진심으로 모두가 윈-윈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말입니다. “‘또라이 금지 규칙’을 수호하고 실천하려는 좋은 경영철학과 방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바로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마주하고 있는 상대방을, 성심을 다해 올바로 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