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병민 Jan 09. 2023

깍두기 | 무대뽀를 위한 무대는 없다


추상적인 선을 실현하려고 하지 말고, 

구체적인 악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라.

―칼 포퍼   

  

‘시리어스’한 질문 하나 던지겠습니다. 회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특징이 뭘까요? 자기 발로 알아서 나가는 경우는 여기에서 제외하겠습니다. 대수로운 질문은 아닌데도, 막상 받고나니 의외로 떠오르는 게 별로 없지 않은가요? 심지어는 “뭐, 이런 걸 질문하고 난리야? 이걸 알아야 해? 알 필요가 있냐고.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죽도록 달려도 모자를 판에 말이야.”라고 투덜댈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동안 이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을 테니 ‘쫓겨나는 사람’에 대해 운운하는 게 희한하게 여겨질 법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에게 묻고자 합니다. 쫓겨나는 사람들, 그들은 어째서 쫓겨나는 걸까요?  

   

일을 못해서? 아니면 일을 농땡이 치듯 대충대충 해서? 다시 말해 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부족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앞으로의 발전가능성이나 잠재력이 전혀 안 보여서? 


물론 다 정답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여러분의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혹시 업무와 관련된 자질이나 능력 때문에 해고된 경우를 본 적이 있나요? 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너무나 상식적이고도 당연한 기준인데도, 이런 기준 때문에 당연하게 퇴사당한 사례는 당연하게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당연히 없을 것 같습니다. 집단과 더불어 사람을 중시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계속 살고 있는 한 말이지요. 

     

회사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쫓겨나야 하고, 또 쫓겨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대부분 하나같이 다 ‘깡패’들(깡패 끼를 드러내는 잠재적인 깡패들까지 포함)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오로지 해악을 가하고 피해만 끼치는, 관계에 있어서 철저히 나 살고 너 죽는 제로섬(zero-sum)을 추구하는 악질들이지요. 물론 깡패들 중에는 실력과 재능 다 갖춘 사람들도 많습니다(사실 놀라울 정도로 굉장히 많지요). 사람과 실무능력이 도저히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일을 너무나 깔끔하고 완벽하게 해내다보니 또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력이고 능력이고 재능이고 탤런트고 뭐고 간에 깡패는 그냥 깽판을 치는 깡패일 뿐입니다. 며칠 같이 일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 같이 일했다가는 누구라도 완전히 미쳐 돌아가 버리게 되지요.     

 

그런데 안심해도 되는 것이, 깡패들은 당장은 날고 기는 것 같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업무능력은 물론 조직 내에서의 입지도 시들해진다는 겁니다. ‘성격이 뭣 같아도 이쁘면 다 용서된다’는 말은 회사 안에서는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만약 통한다면 그런 조직에서는 나와도 아쉬워할 거 하나도 업습니다). 예전에 한국경제신문에서 ‘뜨는 조직 지는 조직’이라는 기획연재를 실었던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기사를 보면 취재팀이 기업 관계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성격은 (남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나쁘지만 맡은 일은 잘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지요.   

   

딱 잘라 말해, 나쁜 성격으로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일을 잘 하려면 다른 사람들과 협의를 하고 때로는 설득을 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느냐.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 또라이 옆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옆에 가면 뭔가 상처를 입을 것 같은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      


결론은 일을 잘 할 수 없고, 조직 내에서 성공하기도 어렵다는 것.     


내용을 보면 깡패에 대한 소개가 약간 두루뭉수리하게 나와 있지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대체 깡패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들을 말하는 걸까요? 그동안 여러 가지 표현들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고문관, 또라이 혹은 돌아이, 스포일드 어덜트(spoiled adult), 꼴통, 무대뽀, 싸이코, 악당 등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뜻하는 바는 하나같이 똑같습니다. 이들은 철저히 자기밖에 모르고, 남을 작고 비참하게 만드는데 능수능란하며, 자신의 말과 행동대로 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다 엎어버릴 수 있는 족속들입니다. 독단적이고 마이웨이를 고수하니 팀워크 지수는 물론 제로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톨이를 자처합니다. 그야말로 트러블 메이커의 선두주자이지요.   

   

국내에서 연도별로 진행된 설문조사를 잘 살펴보면 깡패에 대한 정의를 좀 더 제대로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다음의 설문조사를 한 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2006년 11월 트러블 메이커 (연합뉴스, 2006. 11. 1) 

권위적으로 무조건 복종을 원함: 24.2%

자기 주장만을 내세움: 23%

생각 없이 말함: 20.4%

상대방을 무시: 12.3%

항상 부정적인 면만 지적: 10.4% 

    

2007년 6월 또라이 (EBN산업뉴스, 2007. 6. 28)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내 의견만 무조건 옳다고 하는 유아독존형: 46.7%

남 헐뜯는 것을 일삼는 뒷다마형: 21.2%

사사건건 업무마다 남과 비교하며 모멸감을 주는 비아냥형: 13.6%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을 때마다 회사 전체에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나불나불형: 7.8%

자신의 기분에 따라 업무지시가 달라지는 기분파형: 6.4%

욱하는 성격으로 힘들게 조성한 거래처의 관계를 악화시킨 인맥끊기형: 4.2%     

  

2008년 11월 스포일드 어덜트 (주간동아, 2008. 11. 26)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 38.1%

자기주장만 내세움: 24.8%

팀워크와 공동체 의식을 무시함: 24.1%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 22.8%

책임을 회피함: 21%

감정 조절을 못함: 20%     


깡패들이 끼치는 폐해를 얼마나 뼈저리게 절감했으면 구글(Google)이 회사 슬로건을 아예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고 정했을까요? 2006년 포춘지가 선정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서 12위를 차지한 회계법인 플랜트 & 모란도 자사의 목표를 ‘꼴통이 한 명도 없는 일터’로 정했지요.   

   

국내 기업의 경우는 어떨까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대부분 이 문제를 남의 얘기처럼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한때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이 ‘근본적으로 우수한 인재 한명이 수십만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며 천재경영론을 들고 나왔는데,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그에 대한 반박으로서 ‘유능한 CEO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CEO 육성론을 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능력, 물론 중요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봤을 때 과연 다 합쳐 회사의 몇 %도 되지 않는 천재나 CEO가 문제일까요? 그게 정말로 시급한 사안일까요?     


약간 과장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깡패 한 명이 수천 명을 굶긴다’는 것은 허황된 얘기일까요? 여러분의 회사는 이런 얘기와는 전혀 거리가 먼 곳일 것 같나요? ‘깡패 한 명이 몇 명을 굶긴다’로 얘기를 축소시켜 여러분이 소속된 부서에 적용해본다면 결과는 어떨까요? “맞는 얘기인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 혹시 그 한 명의 깡패가 여러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는 아닌가요?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그 문제아가 혹시 여러분 자신은 아닐까요? 물론 불쾌해하며 쌍수를 들고 아니라고 하겠지요. 헌데 한 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자신은 절대로 깡패가 아닌지, 그동안 단 한 번도 깡패였던 적은 없는지 말입니다.   

  

[요리 가이드라인 #1]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허물어지는 데는 단 5분이면 족하다. 이 사실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조금 다르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워런 버핏     


그러고 보면 저야말로 이러한 얘기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모범생 이미지와 신중한 매너로 주변 사람들의 방어막을 허물어놓긴 했지만, 막상 업무라는 본 게임으로 들어가고 나면 인간 자체가 종종 달라지곤 했지요. 그야말로 ‘지킬박사와 하이드’ 회사편의 연출자 겸 주연배우였습니다.      


제일기획을 다닐 때 제가 저지른 ‘역사적인’ 사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마 제일기획 역사상 최초로 일어났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나 때때로 간절히 꿈꾸는 일, 하지만 실제로는 혀 깨물면서 꾹 참고 지나가는 일을 제가 아무 생각 없이 터뜨렸지요. 이것이 얼마나 개념이 없고 이기적이며, 체제 도전적인 행위였는지 당시에는 전혀 감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 사수를 바꿨습니다. 사수가 저를 바꿨다는 것도 아니고, 제가 비슷한 레벨의 동료를 바꿨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제 손으로 저를 담당하는 사수를 바꿨다는 겁니다. 정확히 6개월 만에 저와 성격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팀장님께 냅다 달려가 사수를 교체해줄 것을 거의 반 협박조로 주장했던 거지요.     


고백하건대, 오로지 저만이 중요했습니다. 원만하고 편안한 회사생활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건 가차 없이 바로바로 내쳐버려야 하는데, 사수란 존재는 당연히 1순위에 올라와 있는 존재였지요(마음속으로는 누구나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겁니다). 사수의 의견이나 그와의 협의 따위는 필요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이나 감정은 완전히 배제했던 겁니다. 그가 제 앞에서 제거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는 순조롭고 화목한 방향으로 ‘누이 좋고 매부 좋게’ 해결될 거라고 봤던 거지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누이 혼자서 몰래 다 해먹고 매부까지 좋을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더더군다나 이런 일이 벌어지기 바로 전날 늦은 시각까지 프로덕션에서 함께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한 마디로 사수의 뒤통수를 제대로 날린 겁니다.   

  

욕을 바가지로 먹든 다른 팀으로 쫓겨나든, 안 될 경우 더 윗선으로 항의를 하든 만반의 마음 준비를 하고 있던 제 예상과는 달리 제 ‘사수 교체 프로젝트’는 의외로 며칠 만에 싱겁게 끝났습니다. 팀장님께서는 제 얘기를 들으신 후 그와 관련된 질문을 일체 하지 않았을 뿐더러 저를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고(설득했다면 과연 얘기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요?), 제 생각과 다른 대안이나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사수조차 따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준비하고 있었던 팀장-사수-저 셋 간의 삼자대면도 불필요하게 됐던 거지요. 너무 속전속결로 깔끔하게 일이 처리되는 바람에 오히려 제가 당황했을 정도입니다.  

   

바로 이 당황했던 순간, 그리고 그 후로 제가 뭔가를 깨달았다면 제 직장생활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팀장님께서 침묵으로 제 문제에 대응했던 것은 저를 위한 하나의 반어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요구사항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줌으로써 제 자신이 얼마나 철부지 같은 철없는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뉘우치길 바랐다는 거지요.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평가하는 건 너무나 쉽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현재 갖고 있는 감정을 당장 질러버리는 건 너무나 쉽지만 그것을 잘 다듬고 주물러서 상대방의 감정과 잘 끼워 맞추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는 건 너무나 쉽지만 자기 자신을 차가운 칼날로 베어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자신 있고 강하게 부정적으로 말하는 건 너무나 쉽지만 신중하고 사려 깊게 중립적으로 말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말을 툭툭 내뱉는 건 식은 죽 먹기지만 말을 융통성 있게 정말 필요할 때, 상대방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해서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컨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언제나 너무나 쉽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략적으로 적절히 조화시키기란 너무나 힘들지요. 그렇기 때문에 해냈을 때 그 가치가 몇 십 배로 배가되고, 또 그만큼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못 참겠으면 그만두면 되고/견디다 보면 또 월급날 되고/생각대로 하면 되고’라는 한 CF의 가사처럼, 생각대로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회사생활을, 아니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조직에 몸을 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들 잘 알면서도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이 하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 또한 그 동안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이 당연하고도 소박한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바람에 실컷 고생했지요.      


회사는 ‘동아리’가 아닙니다. 서클도 사모(사적인 모임)도 놀이터도 아니지요. 여러분의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아직도 이런 생각이 남아있다면 오늘부터 깨끗이 지워나가시길 바랍니다. “아니, 가뜩이나 상사의 쪼임과 야근과 빡센 업무량으로 하루하루가 힘들어 죽겠는데 생각의 자유까지 빼앗으시려고?”     

 

제 대답은 간단합니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회사가 동아리가 아니란 말은 단순히 편하고 즐겁고 제약이 없는, 서로 인간적으로 친한 사람들이 가꿔나가는 곳이 아니란 걸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지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사란 곳이 우리가 기분 내키는 대로 ‘설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겁니다. 네,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까놓고 얘기해서 회사는 전혀 편하지도 즐겁지도 않을뿐더러, 제약은 제약대로 넘쳐나고 서로 인간적으로 원래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꿔나가는 곳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배짱 있게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수 있겠는지요?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마음속의 동아리’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쉽게 말해 회사가 만만해보이기 때문입니다. 만만해 보인다는 말에 깔려있는 생각을 좀 더 그럴듯하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① 내 실력이 날고 기는데 어느 누가 감히 나를 건드려?

② 어차피 오래 다닐 것도 아닌데,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게 큰 상관있겠어?

③ 관계는 결국 ‘인간적인 정(情)’에 바탕을 두고 있지.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올려보라고. 내 행동은 충분히 다 용인될 거야.

④ 회사는 대학 동아리의 연장된 버전에 불과해. 

     다 가까운 형(오빠)-동생, 선배-후배 그런 거 아니겠어?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중 하나가 ‘만만해 보인다’는 말의 정체가 아닐까요?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 깡패로 군림 중이거나, 깡패가 될 기질이 다분한 사람들이 갖고 있을 법한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멀쩡하게 아무 탈 없이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안심할 거 없습니다. 회사 안의 모든 사람들(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이 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요리 가이드라인 #2] 등 뒤에서 누군가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작업하라. 나의 메일에 익명의 숨은 참조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작성해 보내라. 내 몸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회의하고 대화하고 말하고 들어라. 세상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위하고 아껴라. ―여준영(프레인글로벌 설립자 겸 대표)   

  

이쯤에서 개인과 조직 간의 관계를 재정의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유컨대 우리는 레알 소속의 ‘선수’이지 호날두가 아닙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현재 소속된 회사의 구성원일 뿐이지 CEO가 아니라는 겁니다(물론 CEO라고 해서 막 나가도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회사를 우리 마음대로 정의하고, 마음대로 휘두를 권리를 준 적이 없습니다.     

 

자그마한 구멍가게 수준의 회사든 세계적인 규모와 인지도를 갖고 있는 회사든 분명한 건 어떤 회사도 막가파 직원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 아무리 잘나고 천재적인 두뇌와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회사나 팀이나 다른 동료는 완전히 젖혀둔 채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만이 옳다고 간주하고 거기에만 올인하는 직원을 달갑게 받아들일 회사는 없다는 거지요.     


몇 년 전 외국계 대기업인 오티스 엘리베이터를 다닐 때 저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을 겪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사내홍보 담당자로 일했었는데, 팀 내에 저와 같은 직종을 맡은 1년 선배가 있었지요. 처음엔 같은 분야고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는데다가 호흡이 척척 잘 맞아, 거의 친형제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끈적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너무 가깝게 지내면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는 법이라고 하던가요? 안타깝게도 서로가 갖고 있던 빈틈을 너무나 쉽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차갑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감정적이고 불같은 성격이었던 저희 둘 사이에는 티격태격하는 일이 점점 늘어났으며, 의견의 불일치를 넘어 쓸데없는 논쟁에 시간을 쏟는 일이 많아졌지요.    

  

그렇게 불안 불안하게 지내던 어느 날 드디어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여느 날처럼 저희는 사내홍보 관련 이슈로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이 맞으니 토 달지 마라, 내 방식대로 한다, 당신은 틀렸다, 그것밖에 안 되냐 등등 갖은 말로 서로를 자극했지요. 처음엔 가벼운 대화였다가 토론으로, 토론에서 논쟁으로, 다시 논쟁에서 말싸움으로, 급기야 삿대질로 불이 붙기 직전의 상황까지 갔습니다.   

   

선배가 잠시 휴전의 몸짓을 보이더니 손가락질을 하면서 밖으로 나오라는 시늉을 하더군요. 그러고선 보통 때처럼 빌딩 옥상으로 가지 않고 계단 통로에서 바로 얘기를 하는 겁니다. “죽고 싶냐? 우리 옥상 가서 남자 대 남자로 한 번 피 터지도록 싸워볼까? 나이 차도 별로 안 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매번 넘어가니까 사람이 장난으로 보여? 가볍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는데, 난 네 1년 선배야. 1년이라도 선배는 선배지. 우리 간단하게 하자고. 네 방식이 틀렸고 내 방식이 맞다고. 그럼 얘기 끝난 거야. 아니야? 할 말 있으면 해봐.”  

   

“미친 거 아냐?”가 딱 어울릴 행동을 저지른 선배와 저의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아무리 머리끝까지 열이 받아도 대화로 풀어나가는 게 기본 상식인데, 주먹으로 해결하자고 했으니 이건 회사원이 아니라 싸움꾼이지요. 평소에는 “계급장 따위는 필요 없다. 우리 형, 아우하면서 편하게 지내자!”고 하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안 되니 계급장 떼고 한 판 붙자고 달려든 것, 건설적인 대립이 아닌 파괴적인 정복으로 일처리를 시도한 것, 남의 감정이나 생각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 등 이 짧은 발언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적지 않습니다.    

  

오티스로 오기 몇 해 전 제가 제일기획에서 저질렀던 행동을 제가 직접 당해보니 그것이 어떤 비중과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회사는 동아리가 아니라고 하는지, 왜 회사 안에서는 아무리 남들과 친해도 적정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하는지, 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주관을 조절하고 말조심을 해야 한다고 하는지, 결국 왜 사회생활이 정말로 ‘만만한’ 게 아니라고 하는지 와 닿더군요. 뭐든지 자신이 직접 당해봐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건 참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시점 이후 ‘가해자’는 더욱 더 떵떵거리며 회사 안을 활보하고 다닌 반면 ‘피해자’는 오히려 주변을 신경 써가며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선배는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더 막무가내가 되었지요. 상대방을 무대뽀적으로 제압하는 게 ‘먹힌다’는 걸 안 그는 심지어는 저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 사수와 팀장님에게까지 적용해보는 과감함을 드러내더군요. 자기만의 개성도 뚜렷하고 능력도 있었던 그가 기를 쓰고 깡패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최소한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 건 둘째 치고 언젠가는 회사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던 거지요. 여담입니다만, 선배는 제가 퇴사하고 나서도 이런 버릇을 고치지 못했는지 그 후 팀장이 된 사수에게 어느 날 죽도록 대들다가 그 날로 다른 팀으로 추방됐다고 합니다. 더 이상 다독이고 키워주는 위치가 아닌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니, 팀장이 된 사수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대응이었다고 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공평한 것 같습니다.  

   

[요리 가이드라인 #3]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신약성서 마태복음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들과 싸울 일이 종종 생깁니다. 토론이나 논쟁 정도로 가볍게 이어지는 싸움도 있고, 거의 치고 박는 난장판이 될 정도로 무겁게 이어지는 싸움도 있지요. 중요한 건 싸움 자체가 아니라 싸움이 지향하는 목적과 목표입니다. 즉,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왜 싸울 수밖에 없는지, 업무라는 대의를 위해 서로 불쾌하더라도 꼭 싸워야만 하는 건지 등을 말하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싸울 때 이 기초적인 사실을 간과합니다. 자신의 자존심과 인격을 지키기 위해 남의 자존심과 인격 자체를 밟아버려도 된다는 정당화 논리를 펴곤 하지요. 그야말로 ‘이쯤 되면 막 나가’겠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업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건설적으로 대립하겠다는 의도 같은 건 없습니다. 그저 남을 무릎 꿇게 만들고 쓰러뜨리겠다는 목적과 목표만 있을 뿐이지요.     

 

여러분도 공감하시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 중 하나는 그들이 ‘자기밖에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에서 살아보거나 외국계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들은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습니다. 개인주의이지 이기주의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회사에서 목격하는 깡패들은 어떻던가요? 자기밖에 모르는 것을 넘어 남에게 피해란 피해는 다 주지 않던가요?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남의 업무를 방해함은 물론, 감정적으로 온갖 좌절감과 긴장감과 불쾌감을 심어놓으며, 심지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퇴사하게까지 만들지요.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습니다.     


동료와 잘 지내야 한다, 남을 항상 배려해야 하고 남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남의 감정과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등은 회사를 다니면서 흔히 듣는 그야말로 뻔하고 ‘추상적인’ 조언들입니다. 당연한 말들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당연한 말들을 참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자기애(自己愛)와 자신감이 넘쳐서인지 혹은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애정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불문율은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깨질 수 있다고 생각(설사 ‘무의식적’이라고 해도 스스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하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들 때가 많습니다. 안 좋은 소식은, 회사는 이 당연한 말들을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고, 또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회사는 동아리가 아닙니다. 혹시라도 여러분이 회사를 주물럭거릴 수 있다는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다면 오늘부터 버리셨으면 합니다. 좀 더 현실감을 갖고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러분은 때를 써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관철시키는 철부지 유치원생이 아닙니다. 이러한 생각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1인 기업을 직접 세우든가 자격증을 따서 전문직 종사자로 살아가든가 아니면 프리랜서로 뛸 것을 적극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분명 여러분 스스로도 마음 편하고 회사로서도 남는 장사니까요. 요컨대 회사는 여러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현재 여러분 곁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도 여러분을 위해 회사에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 두 가지만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명셰프의 30초 요리팁 | 이정숙 대화전문가 겸 에듀테이너그룹 대표

“여러분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경영진에게는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보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 동료 때문에 공연히 감정을 앞세우면 오히려 여러분이 상사에게 찍힐 수도 있지요. 사내에서 큰 소리를 내면 여러분의 생각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투명유리로 여러분을 관찰하는 윗선에서는 원인을 따지지 않고 큰 소리 내는 여러분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닥터쿡, 직장을 요리하다』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