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들이 ‘1인자가 되려면 2인자부터 되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인자가 되든 안 되든 2인자가 되라’고 하고 싶습니다. 1인자가 되면 물론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사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2인자의 마음을 갖고 계속 걸어가라는 거지요.
칼을 신나게 갈다가 조금 빛나니까 “아, 이제 됐구만”하고 내려놓으면, 그것은 분명 녹슬기 마련입니다. 이런 성급한 자신감이나 자만심이 2인자들이 계속 2인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설사 자신이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1인자라고 하더라도 2인자로 살아간다면 1인자라는 자리에서 내려올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처음에 언급해드린 문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인자로서의 마음자세가 1인자를 만든다.
1인자들의 마인드는 ‘2인자가 1인자’로 시작해 ‘2인자가 1인자’로 끝납니다.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이제 좀 쉬면서 ‘1인자가 (진정한) 1인자’라는 타이틀을 누려도 될 법한데도 그들은 다시 ‘1인자는 2인자’라는 새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 기본은 똑같은 명제를 머릿속에 심어 넣음으로써 흐트러질 수 있는 마음을 다잡지요. 지독해도 이렇게 지독한 인간들은 처음 봅니다.
[Jordan's Tip #1] 성공은 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그러면 아마도 성공은 당신이 거의 기대하지도 않았을 무렵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회사를 어느 정도 다니다보면 자신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 옵니다. 자기 자신이 참 잘났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들 잘났던 거지요. 회사 안에서 나름 1인자라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과 맞닥뜨리게 되는 아주 불편한 순간입니다. 자기만이 1인자가 아니었다는 것, 다시 말해 ‘의외로’ 날고 기는 인간들이 득실대고 있었다는 것, 팀장이나 사수, 몇 년 위의 선배들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다 1인자들이었다는 것, 심지어는 일취월장 중인 동료나 후배들까지 숨은 1인자들이었다는 것 등 식은땀이 날만한 사실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지요. 이 불편한 진실을 빨리 깨닫느냐 늦게 깨닫느냐가 바로 회사 안에서 자신이 발전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판가름하지 않나 싶습니다.
1인자들을 이기고 싶다면, 진정 자타가 공인하는 1인자가 되고 싶다면 자세를 낮춰 1인자들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공부하는 등 2인자의 길에 철저히 익숙해지고 길들여져야 합니다. 여기에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얘기한 ‘1만 시간 법칙’을 적용하면 더 든든하겠지요. ‘정신 나갔다’고 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들여 겸허하고도 겸손한 노력을 투자해야 1인자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자신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 남에게서 보고 배울 게 한도 끝도 없다는 것, 결국 자기 이외의 사람들이 다 자신의 스승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지요. 이러한 과정을 요약․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은 등식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공(1인자) = 인정 + 노력
이 등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뭘까요? 바로 ‘인정’입니다. 모든 것은 인정에서 시작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수준을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오겠습니까? 그건 말이 안 되지요. 대부분 그럴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다고 생각할 겁니다. 자신의 수준을 솔직하고 냉정하게 인정하면 노력도 자연스레 나오게 되고, 그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성공에도 자연스레 이르게 됩니다. 요컨대 ‘나는 2인자’라는 생각이 결국 자신을 지탱시켜주는 힘입니다.
[Jordan's Tip #2] 나는 9000번도 넘게 슛을 성공 시키지 못했다. 나는 300번에 가까운 패배를 경험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믿었을 때 26번이나 위닝샷을 실패했다. 나는 살아오면서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성공한 이유다.
마이클 조던. 이 두 단어를 보면서 머릿속에 무엇이 떠오르는지요? 농구 황제, 농구의 신, 에어 조던(Air Jordan), 농구천재, 농구 대통령 등 농구의 1인자와 관련된 표현들이 떠오를 겁니다. 물론 그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농구선수였던 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단순히 농구의 1인자로 기억하고 있다면, 억울해할 건 아마도 은퇴한 마이클 조던 본인일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마이클 조던의 위대함이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의 천재적인 실력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스스로 천재적인 실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천재적인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그의 의지와 자세, 노력에 있다고 봅니다. 이와 관련하여 농구 쪽으로 얘기를 풀어 가면 아마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수긍하지 않으려(‘조던=농구천재’라는 등식이 완전히 각인되어 있을 테니) 할 게 불 보듯 뻔하니, 야구 쪽으로 얘기를 풀어가 볼까 합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조던은 1993년 말에 농구계에서 은퇴(총 세 번의 은퇴 중 첫 번째 은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바로 다음 해 2월에 프로야구팀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마이너 리그 더블 A팀인 버밍햄에 입단하면서 야구선수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그가 들어간 곳이 메이저 리그가 아니라 마이너 리그였다는 겁니다. “분야 자체가 다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할 분들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지요. 언제나 예외 없이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던 대가(大家)가 학교에 다시 입학해 학생들과 나란히 수업을 듣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보는 사람이야 신기해하면서 즐거워하겠지만, 하는 사람은 단단한 용기와 마음가짐이 필요할 겁니다.
조던이 고교시절 야구선수로 활약했다고는 하지만 고교야구와 프로야구는 엄연히 급이 틀리지요. 그의 야구실력은 야구계에서 보기에 분명 수준 이하였고, 그는 마이너 리그 안에서조차도 강등되는 굴욕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온갖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면서도 그는 사람들의 비웃음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수들(이들이 조던의 눈에는 1인자였을 겁니다)이 연습장으로 나오는 시간이 오전 9시면, 그는 묵묵히 매일매일 아침 7시부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2인자였기에, 그는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기만의 노력을 기울였던 거지요. 한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보면 2인자로서 그가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타고난 재능만 너무 믿고 야구를 시작한 것 아닌가?” (기자의 질문)
“나는 34온스짜리(약 1 킬로그램) 야구방망이를 들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최소한 300내지 400번 스윙연습을 했다. 아침 여섯시마다 타격코치와 개인 타격연습을 두 시간씩 했다. 그리고 팀 훈련에 참가했고 훈련이 끝나면 다시 타격코치와 저녁 타격연습을 했다. 장갑을 꼈지만 온 손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사람들은 내가 재미삼아 한번 야구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던 피와 새벽연습을 보았다면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야(농구와 야구)는 비록 다르긴 합니다만 1인자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죽기 살기로 2인자로서의 자세와 행동에 올인할 정도면, 범인(凡人)인 우리가 왜 반드시 2인자가 되어야 하는지가 어느 정도 설명이 되지 않나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지 않다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실력을 쌓으면 됩니다. 그들이 보내는 썩소와 조롱을 2배로 돌려줄 정도의 노력을 쌓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미소와 유머로 보답하면 게임 끝입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2인자’의 모습 아닐까요?
마이클 조던이라는 세계적인 인물을 예로 드니 오히려 ‘감’이 떨어진다고 말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현재의 자신과 너무 차이가 나는 사람이라 오히려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분들을 위해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겸 2008년에 프레인글로벌의 여준영 대표로부터 받은 편지를 공개할까 합니다. 당시에 저는 LG생활건강으로의 이직이 확정되었는데, 문제는 회사에서 경력을 제대로 쳐주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여준영 대표에게 조언을 구했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답변을 받았지요.
꼼꼼히 읽어나가다 보면 이것이 결국 경력이나 이직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2인자로서 회사생활을 어떤 태도와 자세로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2인자로서 자신이 어떠한 마음과 생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궁금증이 남아있는 분이라면, 이 글에서 그에 대한 약간의 방향성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허병민씨.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야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입단한 곳이 메이저 리그가 아니라 마이너 리그였을 겁니다. 국내 최대 PR회사 오너인 저는 지난해 한 광고회사에서 인턴십을 쌓겠다고 자원했었습니다(몇 가지 개인사정으로 미뤄졌지만). 조던과 여준영이 농구단과 PR회사로 옮기면 경력사원이지만 야구단과 광고회사에서는 신입이 아닐 이유가 없기 때문이죠.
회사가 “우리는 당신이 다른 영역에서 쌓은 경력이 우리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것을 발휘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입사자가 “나는 다른 경력을 쌓았지만 그걸 당신이 다 인정해 줘야겠소.”라고 말하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질문을 나눠보면 명확합니다. 자신의 경력을 살려 경력사원으로 입사하고 싶으신가요, 새로운 분야인 PR을 하고 싶으신가요. 둘 중 하나를 하시면 됩니다. “PR을 하되 경력사원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조합을 만드는 건 다분히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병민씨가 두산동아와 같은 영역의 회사에 입사한다고 치면 경력을 인정받는 경력사원이 되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 말은 곧 다른 업종에 입사할 때는 그 경력을 인정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당신은 다른 경력이 있으나 PR은 아니니 경력을 다 쳐줄 수는 없소. 반만 인정합시다.”라고 합리적으로 제안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니 저도 아쉽군요.
참고로 저희 회사에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방송국 PD를 하다 신입으로 오신 분도 있고 마케팅 매니저를 하다 신입으로 오신 분도 있고, 건축사무소 중견 설계사를 하다 신입으로 오신 분도 있고. 그러고 보니 모두 다 신입으로 들어오셨군요. 그런데 지켜보니 그런 분들이 1년 정도 일하고 나면 입사할 때 손해 봤던 그 경력을 서서히 보상받기 시작하더군요. 몇 년 뒤엔 대부분 다 역전해서 원래 자신의 ‘연차’에 맞는 일을 합디다. 회사의 제도와 배려 때문이냐고요? 천만에요. 회사가 인정해주지 않은 그 경력이 진짜 쓸모 있다면 늘 발휘되기 마련이고 아무 경력 없는 신입들은 그들의 경쟁 상대가 안 되기 마련이지요. 결국 그 사람들은 손해 본 경력을 회사의 배려가 아닌 자기 손으로 다 찾아간 셈입니다.
누군가에게 내 경력을 인정해 달라는 건 아주 나이브한 발상입니다. 그 경력이 진짜 인정받을 만한 것이라면 나중에 저절로 다 해결됩니다. 즉 경력은 누가 인정해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사후에 증명해야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내 연차가 얼마인데” 하면서 자신의 ‘업종 종사 기간’을 늘 내세우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는 저희 회사보다 한참 못한 PR회사의 부장 정도 할 ‘연차’요 ‘경력’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밸런타인이나 조니 워커처럼 17년산 다음 12년산 그렇게 흘러가던가요. 뚜껑 따서 마실 때 그 맛을 제대로 보여주시면 됩니다. 자신 있으면 신입으로 들어가서 그동안의 경력이 PR에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증명하고 뒤집으시면 됩니다. 만일 그게 잘 안되고 해보니 다른 신입과 다를 바 없다면, 회사 입장에선 그 경력을 인정 안 해주길 잘한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