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사이언스로 바라보기
디자인 과학(Design Science)
견과류인 밤은 잘 익은 것이건, 벌레가 먹었건, 썩었던 간에 겉은 항상 윤기가 나고 탱탱함을 유지한다. 밤은 껍질을 까기 전까지 그 속을 짐작한다는 것이 참어렵다. 우리나라 디자인산업도 겉으로 항상 윤기가 나고 탱탱한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 속도 탄탄하게 채워져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당장 대안을 찾을 수 없더라도 그와 같은 문제를 인식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문제인식의 출발이 디자인에 대한 정성적 가치를 보강하는 과학적 접근의 필요성이다.
서양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디자인을 과학적 영역에서 연구하는 분야가 발달하여 왔다. 이에 따라 과학적, 논리적 틀에 근거한 방법론들이 연구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디자인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아직까지 과학의본질적 성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디자인경영, 서비스디자인, 사용자경험 등의 분야에서 디자인에 대한 과학적 접근에 대한 움직임이 있지만,이는 디자인을 하는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지, 근본적인 접근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적용방식에 있어서도 해외 학회나 전문가들이 개발한 고유의 방법론을 차용해서만 쓰고 있다. 이러한차용은 그 방법론을 외부로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그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적용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디자인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답보상태에 빠진 것은 디자인을 예술과 비즈니스의 경계에 두고서 애매한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문제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초기단계인 디자인의 근본적인 과학적 접근이 성장하기 위해서 관련 연구의 과학적․논리적 접근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것은우리 사회의 고유 특성을 반영하는 방법론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디자인 과학(Design Science)이라는 것을 명확한 구분을 짓고, 다양한방법론을 관통하는 원리를 분석한 후, 우리 고유의 디자인 과학화 분야가 개척되어야 한다.
디자인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성향이 강하며, 그런 이유로 정성적 가치를 기반으로한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의 전반적인 과정과 결과물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모호한 부분이 많다. 수 많은 학자들과 디자이너들이 나름의 평가기준을 제시하지만, 그것역시 주관적이고 정성적 가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훌륭한 디자이너는 만들어 지는 것이아닌,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지만 잘할 수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과연타고난 재능이 있어야만 디자인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인가? 평범한 사람들은 디자인을 제대로 할 수없는 걸까? 디자인을 제대로 하기 위해 디자인 공부를 하는 건데, 공부해도디자인적 재능이 꽃을 못 피우는 걸까? 이러한문제의 해법이 체계적이고, 계량화할 수 있는 정량적 방법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
디자인이 가지는 정성적 가치기준의 문제를 보완하고, 디자인산업의 탄탄한 구조와 질적 성장을위해서 과학적 기반으로 해법을 찾으려는 경향을 ‘디자인사이언스’라할 수 있다. 이는 디자인에 대한 정성적 가치기반 중심의 일방적인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보완하는차원이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디자인적인 사고를 하려 한다는 움직임이다.통상적으로 과학이란 일부의 경험과 지식이 실험과 연구 등을 거치면서 일반화하고 누구나 인정하기 쉬운 수치를 통해서 대다수의 동조를얻는 것을 말한다.
‘디자인사이언스’는 디자인산업의 본질 규명과 더불어 수준혁신 및 생산성 증대를 통해 차세대 유망 산업으로 디자인산업을 육성하기위해 모든 디자인을 과학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과학적 접근법을 적용해 디자인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한다.
이러한 ‘디자인사이언스’의 기본 사상은 세상이움직이고 순환하고 작용하는 원리를 누구나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으로 밝혀내는‘사이언스’라는 것에서 출발하여 디자인에 있어서의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체계적으로 관련된 진리를 추구한다. 과학, 경영학, 사회과학, 심리학, 컴퓨터 공학 등 여러 학문을 접목해 디자인산업의 본질을규명하고 디자인 수준의 혁신을 이루려는 것이 목적이다.
‘디자인사이언스’의 시작은 측정(Measurement)과 평가(Evaluation)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조건부터 대다수디자이너들과 대립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의 근본적 목적은 우리나라 디자인산업의 안정과실질적인 성장을 위한 것이기에 이러한 전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른 산업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있어야 상대적으로 우수한 디자인산업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지, 디자인만 다른 잣대로 봐달라고하면 동등한 선상에 놓일 수 없고, 동일한 대우도 받을 수 없다.
디자인의 서비스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정보기술과 프로세스 모듈화 등의 과학적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그러나, 상세한 데이터 부족과 디자인산업의 비(非)과학화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다.
예술성과 산업성의 경계에서 디자인산업의 낮은 생산성과 경제적 개념이 디자인산업 성장의 저해요인이며,이를 개선하기 위하여 지금은 디자인의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다.
‘디자인사이언스’를 디자인을 포장하는 새로운 수단이 아니고 정성적 가치를 과학적 수단-통계에기반한 사회과학적 접근으로 증명하고 분석하여 디자인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디자인의 효율을 향상시키는 전반적 활동으로 인식해야한다.
디자인의 과학적 접근의 시작은 우선은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감각에 의존해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한 연구를 통해 기존 측정보다는 더 정밀한 측정 기구를 만들어 내고, 그러한측정기구를 또다시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판단하는 사람의 감각으로 수정하고, 정제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듯 ‘디자인사이언스’의발전은 기존의 보수적인 가치와 진보적인 가치가 융합될 때 이루어진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디자인에 있어서 이러한 정량적 측정의 개념을 도입하려면 두 가지의선결과제가 있다. 첫째가 계량화이고 둘째가 정확성(정밀화)이다. 이러한 정량적 접근, 즉과학적 접근을 하기 위하여 어떠한 것이 필요한 것인지, 왜 정량적 접근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내용이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최초의 비의 수량을 측정하는 ‘측우기’가존재한다. 그 수준은 지금 본다면 너무나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 비라는 것이 수량화되기 전에는 지역별로, 사람의 나이별로, 종사하는 일에 따라서 같은 양의 비가 오더라도 판단하는 기준이 틀렸고, 국가적인차원의 대책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러나, 다소 미흡한 수준이라도 동일하게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제시됐기에어느 장소, 어떤 환경에서 누가 측정했더라도 동일한 양을 이야기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전국적인 표준이 됐고, 수량화된 척도로 동일하게이야기를 하기에 실생활에도 이득이 있다. 과학철학자 장하석교수가 든 사례인데, 왜 질적 개념에 대해서 양적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고 무작정 정량화된 지표로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량화만 된 디자인이 선택되면 어떻게 될까? 계속 연구하고 보완하여 정확성(정밀성)을 높이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정밀한 온도 측정에 대한 논의가지속되듯이 디자인에 대한 과학적 접근의 노력도 계속되어야 하고 보완되어야 한다.
이러한 디자인의 과학적 접근의 시작은 측정이다. 측정은 우선은 감각이 옳다고 가정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측정기구를 만들어 감각을 수정한다. 그리고 지속적인수정으로 감각을 정밀화해야 한다.
측정의 진보과정을 보면 이미 갖추어진 기준으로 탐구를 시작한다. 완벽한 기준이 나오기까지기다리면 늦고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완벽한 기준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이미 갖추어진 기준으로 탐구를 시작하고 수정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진전한다. 디자인사이언스의 시작은 이미 정해진 기준과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준과의 융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디자인 측정은 과거의 기준을 수정하고 재검토하면서 발전해 나간다.
여기서 장하석 교수의 말을 전한다. “측정은 힘들다. 그러나훌륭히 발달해 왔다”
디자인산업의 근본적 발전을 위한 진보적 시각의 출발은 디자인이 과학적이어야 한다. 여기서중요한 것은 디자인의 단순한 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디자인의 정성적 가치에 대한 충분한 철학적 고려가필요하다.디자인사이언스에 있어서도 '과학철학[1]' 적 고려와 논의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디자인이란 정성적 가치기반의문제는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가설을 새운다는 것에 많은 애로사항을 가져온다. 때문에 처음 가설을새운다는 부분에 있어서 과학철학에서의 ‘정상과학[2]’ 논리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검증해 나가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과학철학은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과학의 내용들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입증됐으며, 과연 모든 사람의 동의를얻어낸 것인지 연구
[2]정상과학은토머스쿤’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주장한 개념,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과 이론들이 가지고 있는 체계 속에서 현재의 패러다임을 지지하기 위해 일궈 나가는 과학의결과물을 지칭